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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이 공감컴퍼니 Mar 16. 2022

[상담사의 일기]5_네이밍`

상담실을 오픈하고 해마다 서울시 마을 공동체 사업에 지원해서 보조금을 받았다. 

그 보조금으로 유투브/팟캐스트 공개방송을 했고, 청년 집단상담과 독서모임을 꾸렸다.


청년 공개방송은 [돈 없는 청년들의 자산관리]와 [주택 마련]이라는 주제로 진행해 왔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 중에는 대기업을 다니거나 부모님의 자산이 많은 청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들도 있다. 책이나 강의는 어떤 대상을 특정해야 하기 떄문에 청년, 특히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돈이 잘 모이지 않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왔다. 가끔 강사분들이 어떤 주식을 지금 바로 사라고 팁도 주시기 때문에 단 몇 주라도 사서, 강사님 말씀 그대로 실행한 사람은 재미를 봤겠지만, 대부분 그때 그걸 샀었어야 하는데... 하면서 땅을 친다. 웃자고 하는 후회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쌓여가면서 듣는 풍월도 늘고, 청약통장을 만들기 시작한 청년들도 꽤 된다. 


 청년 집단상담은 4주로 기간을 제한했기 때문에 7주 정도의 수련을 필요로하는 상담수련생이 아닌 일반 청년을 위한 집단상담으로 꾸릴 수 있었다. 집단상담이 뭔지에 대한 지식이 없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신의 개인상담 선생님이나 지인의 소개로 얼떨결에 첫회기를 맞는다. 순식간에 4회기가 지나가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하면서 아쉬운 종결회기를 맞는다. 한참동안 함께 했던 집단원들 생각이 나곤 한다. 


 청년 독서클럽은 또다른 재미다. 작년에는 단테의 신곡을 읽었는데, 다들 천국을 읽으면서는 도리어 지옥으로 내려가는 기분을 경험했다. 단테는 훌륭하지만 참 힘든 사람이었다. 우리에게는 ^^


 이런 즐겁고 보람찬, 그리고 좋은 청년들과 연대할 수 있는 마을사업을 2022년 올해에는 지원했으나 심사장에 가지 않았다. 올해의 사업은 포기하게 되었다. 사업제안자 3인 청년들이 다 심사일정날 시간이 안되었고, 사업참여자분들도 시간이 안맞았다.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참여자 분은 2시간 중 1시간 30분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였고, 포기 직전 마지막 심사 참여자 분이 자원을 해주셨다. 

 그런데 그 사이 나는 급히 수술일정을 잡아야만 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번이 아니라 두번의 수술. '올해 계획한 일이 많은데, 일단 이 일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상담은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대학원 강의는? 이 마을 사업은 어떻게 해야할까........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넓은 상담실이 생기면 좋겠다 생각하며 이런 저런 구상도 했었는데.....

 그래서 마지막 심사 자원자 분께 심사 전날 저녁  '올해는 잠시 사업을 접어야할 것 같아요. 자원해 주셔서 정말 고마와요.'라고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심사 당일 아침  마지막 자원자께 카톡이 왔다. 


 '아침에 코로나 양성판정 받았어요. 민폐를 끼칠 뻔 했어요ㅜㅜ...'


 올해는  마을 사업이 우리 '평범한 상담소'엔 오지 않을 운명이었나 보다. ㅎㅎ


 수술도 수술이지만 나는 새로운 병명을 얻었다. 의사 선생님께 진단명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두려움과 슬픔이 엄습했다. 수술하면 되고 관리를 잘 하면서 지내면 된다고 마음 먹으면서도 슬퍼졌다. 그 순간 나의 내담자 분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래서 제가 조울증인가요?' '경계선 성격장애가 뭔가요?' '우울증이 심한건가요?' '저 조현병이라고 하는데.....' 이런 질문을 하고 또 하셨던 분들도, 나도 아프니 나의 엄마나 아빠도 같이 상담실을 다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적극적인 분들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픔의 원인이나 명칭을 알게 된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 슬프고 그 자체로만도 아픈 일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갑자기 확 나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정말 아픈 사람이 된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힘내세요' '하실 수 있어요' '응원합니다' 였었다. 마음의 짐을 지고 오는 분들, 혹은 새로운 삶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분들과 만나는 일이 나의 일이므로 그렇다. 그 말은 입버릇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리고 진심이고, 그말이 진심의 현재진행형이 되도록 나는 나의 나 중심적인 많은 생각과 욕심들과 겨룬다. 정리도 하고, 쳐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내가 뱉어온 무수한 그 말들이 끝까지 진심으로 남겨지도록 나도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할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믿을 용기를 내야 한다. 


 각자 볼일을 보러 나간 식구들이 없는 조용한 집에 앉아 있는 휴일 동안 나의 귀는 새로운 주파수에 맞춰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한 이야기, 특히 내담자 분들이 하셨던 말들이 조금 다른 톤으로 스쳐지나갔다. 친구들의 말도, 가족들의 말도. 내 딴에는 말한 분들과 주파수를 딱! 잘 맞추며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좀 더 미세한 튜닝이 필요했던 경우도 있었고, 음색의 다양함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이 확 전해왔다. 

  

 아픔은 찾아오는 것이어서

내가 막을 수도, 나만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인생은 없다. 마음의 아픔도 그렇고, 몸의 아픔도 그런 거 같다. 

아프기 전에는 아프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아픔이 찾아온 뒤에는 최선을 다해 나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아픔과 병 자체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너는 멈춰야돼!!!' 

    '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돼!!!' 

    '쉬어봐~' 

    '너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야...돈이 아니야...' 등등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할 대상은 '사랑' 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두려움과 절망과 슬픔, 누군가의 미움이나 따돌림에 함부로 무릎꿇지 말기를. 포기하지 말기를....

나에게 온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기도해달라고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달라고 하자. 


내일 병원을 또 가는데 나의 병명을 아는 지인 몇명이 응원의 카톡을 보낸다. 병원을 혼자간다고 같이 가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병원 가서 일단 연락을 달라나...

 

 나의 내담자분들께, 

 상담사가 되고자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나도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남은 시간들을 쓰고 싶다. 

그만큼의 건강과 마음의 사랑이 한동안 잘 있어주길 기도하며, 나의 하나님께 지혜와 사랑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떠오르는 한분 한분의 이름을 부르며 잠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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