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부재자 투표를 하기까지 (+ 목사의 시선 30%)
1. 2024년 12월 3일부터 대통령 선기일인 2025년 6월 3일까지는 정확하게 반년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과 마음 그리고 이성과 논리에도 충분히 깊은 생채기를 낼 만큼 긴 시간이다. 이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6개월이 아니라 6년 혹은 6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자는 그게 무슨 그리 큰 상처냐고 할 수 있겠냐만, 원래 지구 밖에서 보면 히말라야도 마리아나해구도 그저 부드러운 곡선의 일부분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공감이 닿지 못하는 먼 영역에서 이 사태를 보고 있는 것일 테다. 그래도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들보다는 왼쪽 진영이든 오른쪽 진영이든 이 곪아터진 상처를 보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에 내려진 축복이다.
2. 주변 지인 중에서 "우리나라가 탄핵이 너무 쉬운 나라가 되어버렸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탄핵이 쉬운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가 탄핵이 쉬워 보였다면, 그것은 법치주의가 살아있고 시민들이 시간과 노력을 정치에 쏟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 우리나라가 탄핵이 쉬워 보였다면, 자신이 지지하는 민주주의 리더가 탄핵되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애초에 잘 뽑던지, 옆에서 쓴소리를 하던지, 귀가 막혔으면 시민의 권리로 규탄하 던 지 해서라도 선출된 일꾼이 주인 말 잘 듣도록 다스렸어야 했을 것이다. 물론, 난 우리나라가 탄핵이 쉬운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발투수를 믿고 마운드에 올렸는데, 3이닝 만에 강판당할 만큼 실점을 많이 하고도 투수코치나 감독이 가만히 있는다면 이건 직무유기다. 아, 그 실점이 선발투수의 자책점인지 비자책점인지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하겠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부득이하게 투수교체를 자주 감행하는 것을 두고 투수교체를 너무 쉽게 한다느니 남발한다느니라는 것은 혹시 위닝스피릿이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탄핵이 쉽다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 선발투수가 꼭 우완투수라서 강판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좌완투수도 크게 실점하면 내려야지.
3. 애석하게도 많은 종교인들, 특히 내 선배 격이라 할 수 있는 목사님들이 이번 사태에 많이 참여하셨다. 제법 큰 목소리들을 내셨다.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목소리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떠나서 그리고 그들이 옹호하는 정치세력을 떠나서), 제발 십자가를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정치적으로 무기삼지 말아달란 것이다. 그 정치적으로 무기화된 십자가는 자신의 욕망의 표출이다. 만약 대형교회 담임 목사님이 성도들의 압박으로 인해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고 해도, 이는 다분히 성도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행위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또한 탐욕의 한 갈래이다. 성도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그 어떤 멘트도 이런 탐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께서는 황제는 물론이거니와 분봉왕이었던 헤롯과 총독 빌라도에 대해서도 그분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신 적이 없다. 그분은 철저하게 소외된 자, 벌거벗은 자, 천대받는 자에게 그 마음을 두셨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스피커로써 대중들의 증오를 증폭시키신 적이 없다. 대중의 환호를 듣고자 설교하신 것도 아니다. 그가 만약 증오를 품고 이 땅에 오셨다면, 그 목사님들이나 나나 구원을 받았을 리가 없다. 인기를 위해서 오셨다면, 구유에서 이 땅의 첫 순간을 맞이하셨을 리 없다. 예수는 그저 '어떻게 기독교인이 진보일 수 있냐?'라고 말하는 이들이나, '어떻게 기독교인이 친일일 수 있냐?'라고 말하는 이들 모두를 사랑하신다 (아마 안타까워하고 계실지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4. "민주주의에서 부정선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라고 몇몇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주일 설교 강단에서) 외치시는 것을 보았다. 당연히 부정선거는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걸 말이라고. 부정선거론의 온당함이나 또는 그 반론을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세습과 온갖 정치적 연루로 시끌벅적한 대형교회들의 화려하고도 웅장한 성전 안에서, 마치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같이 거룩함을 상징하는 (주로 십자가가 수 놓인) 하얀 가운을 입고, 자신들이 튼실하게 쌓아놓은 아성에 화답하는 아멘 소리를 들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대언되어야 한다고 일컬어지는 강대상에서, 수많은 교인들을 내려다보며 그런 발언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그 행위가, 머리 둘 곳 하나 없이 이 땅에 오셔서, 평생 옷 몇 벌 없이 광야와 마을을 누비시며, 어디서든 낮은 이들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당시 종교 기득권층의 온갖 힐난을 들으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파하셨던 예수와 비교되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5. 교회에 가보면, (이젠 진영을 떠나서) "그래도 기독교인 대통령이 좋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는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기독교인 대통령을 뽑아놓고서 막상 그 행정력이 개차반인 것보다는 그 직책의 무게감에 맡게 주어진 일을 유능하고 현명하고 합리적이고 그러면서도 선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랍시고 교인들로부터 많은 표를 가져가놓고선, 온갖 더러운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이들을 정치계에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런 공인들이 기독교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하다못해 집의 고장 난 부분을 고쳐주는 사람을 부를 때도 경험 많은 전문가를 부르고 싶어 하거늘 (당연히 그 전문가의 종교도 안 중요하다), 하물며 대통령이 되보겠다는 이에게 단순히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표를 준다는 건 올바른 리더 선택과정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는 건, 그가 기독교인이라서가 아니라 축구를 잘해서다. '일을 잘하는 대통령이 기독교인이기도 한 것'과 '기독교인이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비슷하게 들려도 엄연히 다른 말이다. 이와 같은 논리가 타 종교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 또한 자명하다.
6. 혐오의 시대가 되었다. 누가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을 혐오한다. 비판이기보다는 혐오가 앞선다. 그 혐오는 새로운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혐오 안에서 생성된 새로운 정보들이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편은 갈라지고, 포용은 드물다. 인의는 사라지고, 이해는 좁다. 편과 편을 나누는 도랑을 더 넓고 깊게 파기 위해, 왜곡 및 과장된 정보가 넘친다. 그래서, 누가 되든 아우름의 미덕을 가진 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제발 잘했으면 한다. 너무 과한 기대인 것은 알지만,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국제 외교 안보 모두 다 제발 좀 잘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억지스럽다고? 오천만 인구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잠깐의 영화를 목적으로 두지 말고, 모든 시간과 노력을 쪼개어 일할 각오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모든 부분에서 더 잘하면 있던 혐오도 사라질 것이다. 결국, 인정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 누가 되든 제발 좀 잘하길. 내가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된다 할지라도 주어진 일을 잘하고, 하고자 하는 정책이 납득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서, 제발 나의 반대가 무색해질 수 있길 바란다.
7. 그래서 투표를 해야겠더라. 반드시.
8. 해외에서 산지 약 14년, 그 간 대통령 선거 때마다 나 한 사람의 의견이 대세에 미치는 영향을 스스로 괄시해 왔다. 국외부재자 선거와 선거공보물들이 이메일로 왔지만, 심도 있게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나 살기 바빴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포장하자면 할 수 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게 좀 힘들었다. 나라의 어지러움이 이역만리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삶과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건 정말 큰 일 아닌가. 그래서 이번 국외부재자 선거는 그냥 지나칠 수없었다. 사전등록을 하고 반드시 투표해야지 하며 다짐을 했다. 아내와 결의를 다졌다.
9. 오늘 사전투표 당일,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함께 애틀랜타 한인회관을 찾았다. 덕분에 가는 길에 아이들에게도 민주시민의 특권과 의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브리핑해 주었다. 오래되어 낙후된 한인회관 건물 앞에 도착하니, (총영사관 직원들인지 또는 선관위 관계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공무원들이 우리를 환하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여권으로 신분을 확인하고, 투표지를 받고 투표하는 데 까지 걸린 시간은 약 3분 남짓. 되려 끝나고 밖에 나와서 사진 찍는데 시간을 더 쓴 거 같다. 아내는 벌써 인스타그램에 인증을 올린 모양이다. 아이들이 누굴 찍었냐고 묻는데, 비밀선거의 원칙을 이야기해 주며 입술을 막았다.
10. 온 국민이 정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요즘, 대한민국은 되려 더 선진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정치적 지식을 습득하게 될 때야 말로, 목회자들이 말조심을 해야 할 때이다. 정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선별하고 추려서 간단하게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목사가 개인적인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 그와 다른 의견을 갖는 많은 이들을 배제하게 된다. 이는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섰던, 선한 목자이셨던 예수께서 하실 일이 아닌 것이다. 설교가 나빠서도 아니고, 목사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 교회를 떠난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예수께서 과연 어떻게 여기실지 잠깐만 생각해 봐도 두려운 일이다. 예수 닮길 원하다는 목회자가 해서는 안될 일이다. 다만 조용히 가서 투표하고 오길.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모습만으로도 목사가 성도들 앞에서 정치에 대해 할 일은 다한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근 15년 만에 처음 투표한 사람치고 너무 시건방진 잔소리가 지나친 듯하다. 자중해야겠다. 그래서인지 이런 비평적인 생각은 꼭 이렇게 끝나는 거 같더라.
나부터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