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4번째로 누군가와 육아 후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일을 쉬어본 적 없이 계속 커리어를 쌓은 게 벌써 15년. 커리어를 위해 대륙을 횡단한 적도 있었고 꿈의 직장을 갖기 위해 눈물을 흘려본 적도 많았죠. 그리고 궤도에서 벗어나 사업에 도전해보기도 했고요. 일은 그만큼 저의 정체성에 큰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산휴와 육아휴직으로 올해 1월부터 회사를 쉬기 시작한 게, 어느덧 5개월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노동인 육아와 가사라는 '직장'도 전혀 녹록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자는 30분 동안 커피를 홀짝 거리며 타이핑을 할 수 있다면 그날은 성공한 거죠. (오늘은 성공입니다.)
애를 돌보는 게 익숙해지며 회사 복귀는 언제 할지 결정하고 나니 이제는 그 뒷 날에 대한 생각이 차 오더랍니다. 직장은 어떻게 하고 어린이집에는 얼마나 자주 보내고 등등이요. 아직 결정할 시간이 남았지만 또 시간은 항상 빨리 가니까요.
이런 고민의 과정은 - 우리 가족은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은지, 나는 어떤 엄마이자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짚어보는 꽤 중요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에요. 그리고 다른 곳이 아닌 네덜란드에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게 참 운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선택여지가 있고 다양한 본보기들이 있어서요. 직장이냐, 육아냐,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흑백의 선택지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가족마다, 상황마다 가치관에 따라 너무나 다를 결정이지만, 제 생각도 정리할 겸 제게 다른 여성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네덜란드의 아이들이 행복한 이유에는 엄마가 행복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9월부터 일주일에 하루 회사에 복귀합니다. 그러고 나면 아이가 8살 때까지 나누어 쓸 수 있는 육아휴가가 거의 다 소진되고요. 그래서 더 이 다음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올해가 지나도 아기는 1돌도 안 지나니까요. 네덜란드의 출산 및 육아 복지는 우리나라보다 덜 좋아요. 산전 1달, 산휴 3달이 산휴이고, 육아휴직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육아휴직은 시간제입니다. 여기서 파트타임 고용자를 고려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26 x 1주일간 일하는 시간. 일주일 40시간 근무라면, 총 1040시간을 아이가 8살이 되기 전에 쓸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한다면 만약 일반 회사에서 풀타임 근무하는 보통의 경우에는 26주의 휴직이 가능합니다. 1년이 52주이니까, 그 반인거죠. 6개월의 육아휴직을 8년 간 나누어 쓰라는 겁니다.
유급휴가: 첫 9주 간 나라에서 정한 최대보조금의 70%를 받습니다. 아이가 1살이 되기 전에 써야합니다. 짜죠.
한 가지 좋은 점은 직원이 원하는대로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도 일주일에 한 번 회사에 가고 나머지는 육아휴직으로 쓰겠다는 파격 (?) 제안을 했죠. 매니저나 인사과는 수용하는 게 대부분 관례입니다.
우리나라의 육아휴직은 1년이고 처음 3개월은 80%, 다음 9개월은 50%의 유급이라는 점에 비하면 정책상으로는 네덜란드가 결코 더 좋지 않죠. 그러나 아이는 평균적으로 2-3명 낳는 게 이곳입니다. 옆집은 마흔이 훌쩍 넘은 부부인데 얼마전 무려 네째를 임신했어요! 부인은 파트타임 정신과 상담의사에 애 넷이라니 대단합니다.
육아휴직이 끝나면, 3살까지 회사를 떠나 육아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내 자리를 맡아줄 직장도 없을뿐더러 직장에서 그만큼 멀어지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돈도 못 벌고 나의 큰 부분이 없어지는 것도 같지만, 모순적으로 육아에만 전념한다는 것이 달콤하게 들리고요. 커리어를 잠시 쉰 적이 없어서 그런지 쉽게 떠나기가 어색하기도 하고요.
내가 낳은 아기를 바로 옆에서 기르는 보람은 참 크네요. 아직 4개월 아기라도 몸짓과 표정이나 옹알이를 들어보며 아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배우는 것도 재밌어요. 인간이 어떻게 자라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참 신기하고 배울 점이 많고요. 아기를 위해 뭐가 필요한지 공부하고 (예를 들어 요새는 이유식 준비 중입니다) 아기에게 필요한 좋은 엄마가 되는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행복한 일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예를 들어 배고플 때 엄마엄마 찾는다든지, 잘 때 내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잠이 든다든지, 내 다리를 발판 삼아 뒤집을 때 등 엄마를 믿고 기댄다는 느낌이 오면 이 작고 소중한 존재에게 항상 그렇게 있어주고 싶어요.
분명히 커리어가 중요했는데, '나'의 일부로서 의미를 지닐 정도로 중요했는데 이제는 아기와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면 승진이 무슨 소용이고 타이틀이 무엇인가 싶어 집니다. 임신 전에는 매니저한테 승진을 요구했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남들이 말했듯 인생과 직장에서의 우선순위가 바뀌는구나, 싶어요.
전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경청하는 게 좋습니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게 우리 세상인만큼 영감도 얻고 충고도 들어보고 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자양분이 되거든요. 그래서 몇몇 엄마선배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커리어와 아이를 기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어떤 결정을 해왔는지 궁금했어요.
회사 파트타임으로 복직 후 친환경 컨설팅 사업 시작 - 네덜란드 남자와 결혼한 독일인
미숙아 쌍둥이를 낳고도 기본적인 산휴 6개월 후 바로 직장에 복귀했대요.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흔한 주 4일 근무를 했다는군요. 1일은 아기들을 돌보고 4일은 일을 하는데, 남편도 4일 근무라 아기들은 어린이집에 3일만 가는 거죠. 하지만 주 4일 근무를 하고 1일은 집에 있어도, 회사에서 원하는 양의 기대치와 노동은 특별히 줄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고단했던 회사생활에 더 큰 회의를 느꼈대요. 하지만 항상 커리어와 자아실현을 중요하게 여긴 지라, 회사를 그만두고 경영대에서 1년짜리 코스를 수료한 후 자신의 사업을 꾸렸어요. 남편이 큰 조력자였다고 하더군요. 지금 아이들은 10살이라니, 이제 3년 된 사업을 더 키울 단계래요.
출산 후 4년 휴직 후 회사 풀타임으로 복직 - 네덜란드 남자와 결혼한 영국인
이 분은 4년 동안 아이 둘을 낳고 기르는 데만 집중했어요. 그리고 예전에 다니던 글로벌 회사의 다른 로케이션에 재취업을 했어요. 그 후 이직도 하고 승진도 하고 계속 커리어를 쌓고 있고요. 그 이는 아이를 기르는 것이 즐거웠지만 아이가 좀 자라고 나니까 어디 바래다주고 지켜보는 역할이 더 많아지는데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쓰고 싶지 않더래요. 그래서 4년 후 재취업을 했다네요. 아이들 학교에서 보드멤버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어요. 우리 가족한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리스트를 만들어 정리해보고 그에 따른 결정을 하라고 조언하더군요.
회사 파트타임 복직 후 헤드헌팅 프리랜서로 - 네덜란드인
헤드헌터이다 보니, 다른 여성들의 경험을 저한테 이야기해 주더라고요. 어떤 여성리더는 무조건 1년은 쉬라고 한다고 하고, 5년을 쉬라고 한 경우도 있지만, 우선 가족전략을 세우라고 하더군요. 미래에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다음에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싶은지 등) 그 전략에 맞추어 계획을 짜라는 조언을 해주었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좋지만, 사람들이 프리랜서니까 무조건 시간을 맞춰주기를 기대하고, n연차가 되니 다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 작은 회사에 파트너로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주 4일 복직 후 퇴직, 사진가/마케팅 프리랜서로 전향 -
네덜란드 사람과 결혼한 브라질 사람
첫 아이를 낳고 극심한 업무강도에 집에 오면 저녁 8시에 딸아이는 자고 있더랍니다. 딸하고 같이 있을 시간도 없으면 왜 아이를 낳았을까 하는 회의감에, 회사에 구조조정을 시켜달라고 이야기해 퇴직한 경우예요. 마침 진행 중이단 구조조정에 끼게 되었으니 퇴직금 잘 받고 나간 거죠. 그러고 평생 취미였던 사진에 진지해져보고 싶었대요. 그래서 아이가 1살 반일 때 스위스에 가서 1달 사진가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근사한 가족 전문 사진가예요. 백일 사진을 이 친구한테 맡겼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일을 시키던 악덕보스는 프리랜서가 된 그를 채용해 더 동등한 관계로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하고요. CMO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 한 때는 그것이 그의 꿈이었지만 - 지금의 커리어가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하더군요. 주말에는 결혼식 촬영으로 바쁘지만 사진이 열정인지라 힘들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고요. 그냥 가사는 항상 반복적이고 끝이 없어서 그 만족감이 덜 하다고 하고요. 자신의 회사 선배가, 커리어는 10년 단위로 계획하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이 자라고 자신만의 삶이 올 1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 하는 일을 더 키우고 싶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른 이들의 경험을 들어보니, 모두 가족이라는 우선순위에 자아실현의 욕구가 절충되는 방법을, 시간을 두고, 결정한 것 같네요. 그 모든 과정에 남편의 든든한 지원과 도움이 있었던 것도 느껴졌어요. 그리고 파트타임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이 쉽고 보편적인 네덜란드라 가능한 것도 있다고 생각했고요. 새로운 도전을 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기와 함께 인생이 바뀌었듯, 과거의 공식이나 경험으로만 자신의 성향과 한계를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구나, 곱씹어 봅니다.
이러면서 제 생각의 변화를 감지해 봅니다.
임신 초기에는 직장이 없이 이 집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된다는 게 문뜩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외국인인 저에게는 직장이 정체성이자 사회적 소통망의 역할을 했나봐요. 그리고 워낙 여행하고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얼마나 자유를 느낄까 엄두가 나지 않았죠. 하지만 애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새로운 나’, 엄마로 희생하는 내가 아니라 엄마임을 기뻐하는 내가 있더라고요.
두어 달 전쯤에는 만약 회사에서 주 2일 근무를 수용하되 디모션(직급을 내리는 것)을 주면 어떻겠냐는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았어요.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친구들은 승진할 텐데. 내가 쌓아온 것인데.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까, 예전에 직급을 낮추어 직장에 복귀한 엄마선배들도 생각나고, 우리 가족과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타이틀과 봉급이 아니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회사를 1-2년 쉬는 것도 상관없다는 초연함이 제게 왔고요.
이렇게 생각이 변화하고 성숙해 가니 이만큼만 고민하고 이제는 현재를 즐기려고요. 9월에 복직을 하면 또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지금과는 다른 마음이 들지도 모를 테지요. 당장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지만, 일이나 '나의 세상'을 그리워할 미래의 나를 위해 한가닥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육아에 할애하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태껏 사회생활을 통해 돈을 벌고 친구를 사귀고 한 내가 영원히 일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지 않거든요. 하지만 커리어와의 한가닥 끈이 주 2회 일하는 파트타임 계약서일지, 프리랜서 전향일지, 일을 몇 년 정도 쉬는 것인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리고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회사생활에 대한 나의 회의 (M세대의 팔자일까요?)도 주의 깊게 관찰해 보고 다시 한번 새로운 직업을 찾아볼지도 모르겠고요.
엄마에게 이런 고민을 하게 해 준 아기가 정말 고맙다는 건 이상할까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인간으로 성숙해지는 지금 이 시기가 행복합니다.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