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택 사이로 들어선 동네 놀이터를 처음 보았을 때 실망스러웠다. 나무 기둥 몇 개가 전부인 놀이터라니, 아이들이 뭘 하고 놀까 싶었다. 그리고 집 앞 초등학교가 놀이터 공사를 했는데 또 나무 기둥과 잡초가 많은 디자인을 택했다.
동네 놀이터에도 잡초를 모아둔 미니어처 숲 같은 게 있었는데 말이다. 두 살배기랑 놀 것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이게 네덜란드식 놀이터이고, 의외로 여기서 아이들이 놀고 경험하며 즐겁게 배울 게 정말 많다는 걸 말이다.
네덜란드의 놀이터는 열심히 걸어야 나온다. 드문드문하고 썰렁한 편이다. 한 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 놀이터 모래를 다시 깨끗이 하는 작업을 하는 걸 봤는데 그런 건 여기 없다. 모래 속에 유리도 있고 날카로운 조개 부스러기도 있고 담배꽁초도 있다.
코너마다 다르게 바다 테마, 정글 테마, 커다란 미끄럼틀, 컬러풀한 계단이나 다리가 있는 우리나라 놀이터에 비하면 시각적으로도 삭막하다. 스테인리스 스틸에 페인트 칠도 안 해 녹음이 지는 여름이 아니면 조금 공사장 느낌도 든다.
그런데 그 휑한 놀이터들도 알고 보니 콘셉트인 것이다. 종종 나무나 물 웅덩이 같이 자연을 사용하고 도르래 따위의 간단한 장치를 두어 모래놀이나 물놀이를 할 수 있게 한다. 자연주의 놀이터다. 자연주의 놀이터라는 이름은 내가 붙이는 것이지만, 딱인 것 같다. 숲의 나무를 오르듯 미끄럼틀을 오르고, 진짜 모래를 푸고 물을 나르는 등 상상하며 노는 것이다. 시소나 그네 같이 정해진 용도에 맞는 대로 노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할지는 상상에 따라 다르다.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라 물과 싸워 와 그런지 물 관련 힌트도 많다. 물을 퍼내는 굴착기 기술이 뛰어난 네덜란드라는데 진짜 굴착기 (굴착기의 뼈대) 같은 것에 앉아 모래를 팔 수도 있다. 나도 해보지만 은근히 어렵다. 수도꼭지에 진짜 수도가 연결되어 어떻게 키는지 안다면 파이프나 물레방아를 타고 물이 흐르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문제 풀듯 노는 놀이터라 조금 큰 아이들이 하는 걸 보는 더 어린아이들도 있고, 함께 물을 기르고 버리며 노는 상황도 있다. 시각적으로 썰렁해도 놀다 보면 어느새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놀고 재미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가 열리는 걸까.
카페에 딸린 놀이터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모래를 푸고 물을 긷고 물을 켜고 만지고 젖어가며 노는 아이들 뒤로 엄마아빠들은 이야기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다. 그래서 비올 때나 입을 법한 장옷을 입고 고무장화를 신고 노는 아이들도 많다. 자신들의 세계에서 탐험하는 아이를 위해 조금씩 뒤로 물러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