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어제오늘 첫눈이 왔다. 눈이라기에는 비처럼 내리고 얼음같이 쌓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파란 하늘이 보였다 먹구름이 껴서 걸어가려고 나섰다가 차를 타는 게
일상이다. 네덜란드의 겨울은 축축하다. 비가 매일같이 오고 바람이 세서, 해가 나지만 영하 20도인 겨울과는 또 다른 의미로 몸이 시리다.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살려면 동굴은 무조건 말라있어야 할 거 같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축축한 동굴에서 해도 못 보고 젖어드는 추위에 으슬으슬 할 걸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11월이면 절기 상 가을이지만 중순을 넘어선 지금은 겨울느낌이다. 겨울이 하도 길게 느껴져 올해에는 11월이면 나뭇잎도 조금 붙어있어 아직도 가을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만.
남편이 아이에게 네덜란드어로 된 동화책을 읽어줄 때 가만히 옆에서 보자니 이건 정말 네덜란드의 겨울 이야기구나 싶을 때가 있다.
낙엽이 떨어진 가을, 비가 오는 날 비옷과 장화, 우산을 챙겨 놀이터로 간 원숭이 ‘애비’(Ebbie)는 버섯하고 거미를 구경하고 물웅덩이에서 첨벙거린다. 미끄럼틀은 젖어서 안 타고 뺑뺑이를 탄다.
이 맘 때 사람들 마음을 밝히는 건 네덜란드의 명절이다. 아이들이 랜턴을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면 초콜릿바나 귤을 받는 신트마틴 (Sint Maarten, 11월 11일)이 그 시작이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아이에게 신터클라스 (Sinterklaas) 이야기도 해주고 있다.
신터클라스는 네덜란드식 산타클로스인데 스페인에 살고 피트라는 도우미 남자아이들과 함께 선물을 배에 가득 싣고 네덜란드로 온다. 한 작가는 멋진 일러스트 책으로 네덜란드 아이들의 환상을 현실화했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 꽉 들어찬 집이 신터클라스의 집이다. 과자 만드는 곳에서 요리 피트들은 열심히 과자를 굽고, 선물 피트들은 선물 진열대에서 바쁘게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고 있다.
드디어 네덜란드로 가는 날, 커다란
배의 지하는 선물 보자기로 가득 차있다. (큰 배는 네덜란드의 서사에서 빠질 수가
없다)
배가 네덜란드의 구석구석을 지나며 신터클라스와 피트는 행진을 한다. 과자를 뿌려주면서 말이다!
신터클라스가 피트와 방방곡곡 행진을 한 후 12월 5일은 선물을 받고 열어보는 날로,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12월 25일과 26일에 다른 나라에
비해 조촐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간다.
요란한 12월 31일 귀청을 때리는 요란한 폭죽놀이 뒤로 다가오는 겨울은 딱 아래의 그림 같다.
그리고 바다 위 작은 돌에 표류한 코끼리 같기도 하다.
온통 먹구름인 회색 하늘 검은 바다에 작은 돌 위에 서있는 코끼리 마음을 네덜란드 아이들은 알아야 할까? (다행히도 코끼리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이 돌섬을 멋진 명소로 만든다)
그래도 네덜란드만의 겨울 낭만이 있다. 얕은 호수나 개천이 얼면 (정말 추우면 네덜란드를 잇는 운하가 얼기도 한다) 거기서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는 거다.
이렇게 비가 오고 추우면 네덜란드에서는 아이들과는 뭘 할까? 마땅한 (깨끗하고 넓은) 키즈카페가 없다시피 하니, 원숭이 Ebbie처럼 옷을 챙겨 입고 놀이터에 가거나, 동물들을 구경하러 근처 농장에 가거나 (동물 응아는 주의해야 하지만 환경과 동물들 상태가 좋다), 도서관, 박물관에 다닌다. 아니면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우리, 이 번 겨울도 잘 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