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후기
한국에서 베이비페어를 갔을 때입니다. 우리나라의 (작아져가지만) 거대한 육아사업에 큰 기대를 품고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 좋은 페어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을 득템 할 생각에 부풀었었죠. 그래서 한국 가기 전부터 벼르다, 준비 땡! 하는 기분으로 입성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가본 베이비 페어는 기대와 조금 달랐습니다.
특별히 크지도 않고, 물건이 기똥차거나 (?) 다양하지 않아서였어요. 큰 자리를 차지한 카시트와 유모차 전시장이 대부분 유럽 용품이라서 좀 놀라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유럽에서는 한국물품이 더 좋은 것 같았는데 말이죠. 몸에 맞는 임산부용 옷을 구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조금 아쉬움이 남았었습니다.
아기에게 배겨 불편할까 봐 옷의 라벨을 안에다 붙이지 않고 밖에다 붙이고, 심을 밖으로 뒤집는 정성스러운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싶은데, 요새는 유럽 용품이 더 인기인가 싶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친환경이나 안전성에 있어서 유럽이라는 이름이 신뢰를 주기 때문일까요? 한 번은 아기 옷을 사려고 폭풍검색을 하는데, 어떤 네덜란드 아기옷 웹사이트에는 "코리안" 의류 카테고리가 있더군요. 아무것도 없이 비어져 있는 카테고리였지만, 우리나라 아기 옷도 적절한 브랜딩을 통해 수출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우리나라 백화점에 가보면 유럽을 내세운 아기옷들이 많지요? 모두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나 봐요.
오늘은 제가 여태까지 써본 육아용품 중 만족스러운 네덜란드 브랜드를 정리해 봅니다. 적다 보니 창의적이고 디자인에 뛰어난 네덜란드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고 역시 기술에 능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과성 문제 풀기 국민성이 보이는 것도 같고 그러네요.
Maxicosi 막시코지
'대일밴드'처럼 브랜드 명이 제품명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죠? 카시트 브랜드인 막시코지가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막시코지가 카시트를 일컫는 단어가 되었어요. 육아책에서도, 병원 관계자도, 막시코지를 준비하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국민카시트입니다.
카시트에 대해 검색 안 해보는 부모는 없겠죠. 저도 아무리 대명사가 된 막시코지라고 해도, 우리 차에 맞는 건 뭔지, 더 안전하고 아기한테 편하고 편리한 것은 무엇인지 검색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고른 게 막시코지 360도 회전 가능한 모델들입니다. 다른 제품은 써보지 않아서 비교가 어렵지만 믿고 쓰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막시코지는 카시트뿐 아니라 유모차나 아기용 간이침대도 만들어요. 이 브랜드의 간이침대도 사서 잘 썼습니다. 안전하고, 수납이 잘 되고, 조립이 쉽고, 튼튼하고, 디자인이 깔끔합니다. 네덜란드 제품들이 그런 것 같아요. 실용적이고 사용자를 고려한 디자인이면서 외관이 심플하죠. 제 취향에는 딱입니다.
Joolz 줄즈
부가부나 줄즈는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네덜란드 유모차브랜드입니다. 막시코지 제품처럼 네덜란드 그 특유의 디자인 언어가 느껴집니다. 북유럽 제품도 비슷해요. 장식은 최소화, 기술력으로 조잡한 부품없이 심플하게 성능을 높이는 노력이 보입니다. 그리고 튼튼하고요.
유모차가 알고 보니 만들기 쉽지 않은 제품이더군요. 사용자가 아기와 보호자들에 안전, 편의, 무게, 수납, 승차감, 사용감 등 따질게 많습니다. 제가 예전 같이 일했던 네덜란드 제품 엔지니어들과 제품 디자이너들이 떠올랐어요.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시킵니다. 아기가 너무 보채고 잠을 안 자면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가는 부모도 있고요. 그만큼 육아에 있어 유모차의 중요성이 크죠. 많은 네덜란드 회사들이 제품을 왜 쓰는지부터 여러 가지 니즈와 문제들을 꼼꼼히 해소하는 인간중심 디자인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단점은 튼튼하지만 무겁다는 점입니다. 체형이 큰 이 곳 부모들에게 더 적합할 것 같아요.
Philips Avent 필립스 아벤트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필립스 브랜드가 네덜란드 회사입니다. 유축기, 베이비모니터, 젖병 소독기, 쪽쪽이를 필립스 아벤트 제품으로 구입했습니다.
전자제품들은 정말 전원만 꽂으면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심플하고 간편해서 좋았어요. 야광 쪽쪽이는 너무 유용한데 왜 다른 회사에서는 만들지 않을까 싶었고요. 그리고 디자인도 아기 제품답게 둥글둥글하고 예쁘고 손에 잘 감깁니다.
미스반하우트 동화책 Mies van Hout
색색 크레파스로 예쁘게 흰 도화지를 채우고 검은색 크레파스로 모든 면을 덧칠을 한 후, 이쑤시개로 긁으면 검은색 안에 숨겨진 색이 나와 특별한 그림을 그릴 수 있던 거... 기억나시나요? 온통 검은 동화책이 제게는 생소하지만 여러 책 중 미스반하우트 동화책을 띡~ 고르는 아기를 보면 아기들 눈에 띄긴 하나보다 싶습니다.
검은 바탕에 삐죽빼죽 낙서한 것 같은 물고기나 정체불명의 괴물이 그려진 게 네덜란드 일러스트레이터미스반하우트의 책입니다. ‘친구들’ (Vriendjes, 브롄졔스), '즐거워' (Vrolijk, 브롤륵)라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귀엽고 예쁜 동화 속 묘사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좀 얼기설기하다고 보일 수 도 있겠고, 온통 검은색이 무섭다고 느낄 수 도 있겠지만, 물고기나 몬스터들의 표정과 바디랭귀지로 이뤄진 이 특이한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감정이 무엇이고 그 감정을 어떻게 일컫는지 알려주는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읽어주는 저도 덩달아 감장표현을 연습하게 되는 신선한 책이에요.
잎 앤 야네케 동화책 Jipp en Janneke
검은색의 사용이 특별한 동화책에는 잎 앤 야네케도 있습니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의 얼굴이 온통 검은색이라 그런데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핍 웨스튼도프 (Fiep Westendoep)와 작가 아니 슈미트 (Annie M. G. Schmidt) 작품입니다.
온통 검고 눈동자만 하야니 마치 그림자 같기도 하고요. 왜 검은색이 되었을까요? 신문에 인쇄할 때 항상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도 읽었고요. 추상화시켜 자세한 표정을 숨겨 오히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기 대입이 쉽게 하도록 한다고도 읽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손그림자를 이용한 이야기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죠. 손으로 만든 새와 늑대가 신기할 뿐 털이 없거나 색이 없다고 이상하지 않았잖아요.
1950년대에 시작된 이 동화책 시리즈는 너무나 인기가 좋아 모든 네덜란드 사람들의 유년시절 기억에 한 부분을 차지한답니다. 아이들에게 하듯이 쉽게 설명하라는 말을 "잎 앤 야네케 말로" 하라고 표현한다고 할 정도라네요.
헤마 Hema
몇 번 입히지도 못하는 아기 옷이 엄마 옷보다 더 비싸다는 게 눈이 휘둥그레 해졌을 때가 있었죠. 이제는 그 높은 가격에 무감각해진 편이지만 그래도 섣불리 옷을 사기 좀 그렇습니다. 겨울 스웨터가 할인해서 30유로면(한 5만 원?) 아무래도 여러 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더 찾게 되는 게 네덜란드의 생필품 전문샵 헤마입니다. 다이소 같으면서도 음식도 팔고 와인도 팔고 사진인화도 할 수 있고 문방구 같기도 한 가게 브랜드가 헤마입니다. 제가 한 번 영국 살던 시절 남편에게 품질 좋고 가격 좋은 헤마가 그립다고 하니까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했었어요. 그만큼 (짠돌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입니다. 여기서 아기옷 사기 참 좋습니다.
품질 좋은 아기옷을 반의 반 값도 안되게 살 수 있거든요. 오가닉 코튼 제품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백화점부터 베이비페어에 할인코너까지 샅샅이 뒤져도 찾기 힘들었던 신생아 제품도 세트로 묶어놔 손쉽게 살 수 있더랍니다 (우리나라는 모두 온라인으로 파나 봐요... 신생아 사이즈 제품은 일반 매장에서 찾기 힘들더라고요).
미피 (나인쳬 Nijntje)
토끼를 뜻하는 네덜란드말 코나인쳬를 귀엽게 부른 나인쳬가 미피의 원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이 토끼는 인형이나 책으로 자주 보이는데요. 일러스트가 또렷하고 색감이 깨끗해 어린 아기에게도 선물로 자주 주나 봅니다. 처음으로 선물 받은 인생 첫 책이 "나인쳬가 날아요" 책이었어요.
리틀더치 Little Dutch
목욕용 천, 원목으로 된 장난감을 사기에 좋습니다. 베이비짐하고 모빌도 좋고요. 인형만 따로 떼어서 여러모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푸카베이비 Puckababy
많은 집들이 50년도 더 되었고 난방을 잘 안 떼서 그런지 여기는 아기 체온 조절에 진심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TOG 점수를 따져 입힙니다. 온도마다 적합한 TOG 를 계산해 입히는데요. 덥다 춥다 말을 못하는 아기를 위한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기가 자기 방에서 자다 보니 침구 용품 규칙도 까다롭고요. 돌연사 가능성이 있는 이불과 베개보다 이런 입는 이불을 선호합니다. 그 중에서도 푸카베이비 시리즈가 꼼꼼히 잘 디자인 되었어요. 신생아용은 속싸개 기능도 합니다. 지퍼가 달려 있어 편한 면도 있어요.
아느 마리 프티트 Anne Marie Petit
집집마다 창고 세일을 하는 킹스데이 때 눈에 띈 뜨개앵무새 인형을 1유로를 주고 샀었는데요. 어쩐지 색깔이 화려해 아기가 좋아할 것 같았어요. 안에 딸랑이 방울도 있고요. 이제 와 찾아보니 네덜란드의 저명한 디자이너 브랜드네요. 그녀의 이름이 아느 마리 프티트이고요. 득템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를 떠나 아기가 백일 전후 지칠 줄 모르고 울 때 이 새를 귀에 대고 딸랑이면 조용해졌었거든요. 수개월이 지난 아직도 새 부리나 날개나 꼬리를 물고 노는 걸 좋아합니다.
초보엄마는 육아용품은 살 수록 배우는 게 많아지네요. 앞으로도 살 것도 더 많고 배울 것도 많아지겠죠. 네덜란드 육아용품뿐 아니라 덴마크의 아기/어린이용 의자 브랜드로 유명한 스토크(Stokke)와 기저귀 패드 (Leander)도 아주 만족스러운 제품들이에요. 비슷한 이유로 마음에 듭니다. 기술력이 좋고 디자인에 있어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있어서 그런지 두고두고 쓰기 좋습니다.
네덜란드처럼 저명한 디자인 스쿨이 있고 디자이너가 이름으로 알려진다는 게 참 좋은 일 같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의 제품 디자인은 8-90년대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 “더치 디자인”이라는 스타일도 명칭화 되었어요. 위키피디아를 보니 군더더기 없고 혁신적인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육아용품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좋은 디자인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력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빈번했던 범람과 싸우고 물을 개척해 땅으로 만들어야 했던 선조들의 ‘문제 많았던’ 삶이 이 나라의 디자인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치니,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사게 됩니다. 특히 육아초보엄마는 그렇지요! 그리고 아기도 자랄 때부터 멋진 디자인을 접하면 발달에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