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희소식?
아기가 7개월이 된 후 일주일에 한 번 네덜란드의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랜만에 남편과 암스테르담 데이트를 하고 보니, 이곳의 어린이집에 대해 쓰고 싶어 지네요.
아직까지 저는 네덜란드 어린이집에 만족입니다. 선생님들도, 기관의
방식도요. 한 살도 안 된 아기를 기관에
맡기는 게 감정적으로 어려웠지만 바로 너무 잘 노는 아기를 보니 섭섭하면서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젖병거부가 있어서 처음에는 더 조바심도 나고 먹기도 덜 먹었지만 이제는 마음 놓고 보낼 수 있습니다.
제가 보내는 곳은 기업형 어린이집 Koningskinderen (코닝스킨더런, 왕의 아이들이라는 너무 힘준 이름입니다 ㅎㅎ)의 Sneeuwkoningin (스네우코닝인, 이건 또 눈의 여왕이라는 뜻입니다ㅎㅎ테마 확실하네요)이라는 지점입니다. 이곳저곳 조사해 보고, 사전 방문해 보고, 물어보고, 대기를 넣은 지 약 1년 후에 자리가 났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전역에 선생님들이 부족해서 대기가 길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오래된 맨션이 많아 으리으리한 건물을 어린이집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방이 여러 개라 어린이집에 가는 나이인 0세부터 4세까지의 반을 나누어 쓰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장실, 부엌, 리셉션 등을 따로 두기도 좋고요. 부모 입장에서는 멋진 곳에 아기를 맡긴다는 기분에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감내해야 했던 문화차이가 있는데요.
- 아기들이 기어 다니는 곳을 바깥에서도 시는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사전방문할 때에 넌지시 물어보니, 비 오는 날 등에는 실내화를 신기도 하지만 적당한 더러움은 아이들한테 좋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처음에는 그게 싫었는데 모든 어린이집이 다 그러니 제가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룻바닥이 별로 더럽다는 느낌을 받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어요.
- 높은 계단! 부모들이 아기를 안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기를
안고 안전문을 여닫고 계단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어색했는데 집에도 설치한 후로 이제 자연스러워졌어요
- 장난감, 안 닦는 것 같아요. 빨고 무는 장난감이 침범벅이 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연건조 (?)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기가 문 쪽쪽이를 다른 아기가 빼 자기 입에 넣자, 선생님이 “그건 00이 쪽쪽이야” 하며 입에서 빼 다시 우리 아기 입에 바로 넣어주었습니다. 안에서 신발 신는 것처럼 좀 더러워야 건강하다는 건지 ㅠㅠ 왜 어린이집이 감기의 온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 감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질병에 상관없이 등원할 수 있습니다. 내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누가 어떤 질병이 있는데도 등원한다는 걸 사전에 알 수 있겠냐고 물으니 그런 건 없답니다. 이곳은 수두 백신이 의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수두에 걸려야 사회전체에 이익이라고 하니, 수두 걸리라고 되려 수두 걸린 아이가 등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 하루 종일 업데이트는 딱 두 번입니다. 사진 한 장에서 많게는 한 번에 찍은 서너 장 업데이트가 그중 하나. 그리고 하원할 때
일과표 한 번. 남편과 데이트하고 아기를 데리러 갈 때까지 일과표도 없고 사진도 딱 한 장 받았더랍니다. 처음 적응기간에는
한시도 핸드폰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제나 저제나 사진을 기다렸고 혹시 보채서
데려가라고 전화가 올까 불안했어요. 중간중간 앱으로 선생님한테 문자도 했고요. 지금은 이 뜨문뜨문 없다시피 한 업데이트가 익숙해졌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 그럭저럭 잘 있겠지, 믿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나름 육아에서 휴식을 갖게 되고요.
제가 보내는 곳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우선 기본적인 것에 신뢰가 가서였어요. 누가 어린이집의 역할은 우선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라 한 말이 종종 떠오릅니다. 아기를 직접 보지 않으면 거 나처럼 봐달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겠죠. 안전하면 그 외는 덤인 것도 같습니다. 이 어린이집을 계약을 할 때 읽어야 할 서류가 집 계약할 때만큼 많았습니다. 그만큼 철두철미해 보이고 기업형이니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는 기업형 어린이집이 대부분입니다. 아마 다른 형태는 없을 거예요. 시터나, 오페어, 아니면 개인이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다른 방식의 위탁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인 선생님들도 다정합니다. 예뻐해 줘서 뽀뽀도 해주는데 좋으면서 이상한 기분은 부모만 알겠죠. ㅎㅎ 또 아기들 반은 일과 없이 아기들 스케줄에 맞춰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선생님 당 최대 3명의 아기를 보는데 아기들마다 맞춰주는 노하우가 있나 봐요. 어떤 곳은 아기들도 어린이집 일과표 따라 밥 주고 재운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한지?
또 여긴 자신들의 교육 철학도 있어 장난감도 둥글고 나무로 된 것을 주로 고르고요. 채광과 환기 상태가 좋고 좀 더 크면 밖에서 뛰어놀 공간도 있고, 따뜻한 점심을 줍니다. 일반적인 네덜란드 어린이집에서는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주는데 비하면 전 더 좋죠.
생각했던 것보다 네덜란드의 어린이집, 나쁘지 않네요. 모쪼록 계속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가능한 만큼 행복하게 지내고, 그 시간 저를 비롯한 부모들은 필요한 에너지를 재충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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