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버터가 주식인 나라
네덜란드 살이 후 이제는 땅콩버터 없이는 못 살 지경이다. 심심할 때 땅콩버터 뚜껑을 열어 한 숟갈씩 퍼먹고 있는 나한테, '제발 그만하자~' 말해도 또 퍼먹고 있으니, 도대체 땅콩버터에 뭘 섞었나 싶다. 하지만 100% 땅콩인 것이 왜 그렇게 맛있는 거지.
나와 남편이 1kg 짜리 땅콩버터를 3주 정도면 다 먹어버리니, 도대체 땅콩으로 치면 몇 개를 주워먹는 걸까. 30g이 얼추 40개 땅콩이라니 하루 63개의 땅콩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래도 되나 싶게 많은 양이다. 땅콩을 하나하나 껍질 까면서 먹으면 10개 먹기도 힘든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땅콩버터를 엄청 먹는다. 세계에서 땅콩버터 소비량이 손에 꼽는 수준이라니 땅콩이 자라기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 나라에서 참 대단할 지경이다. 보통 빵에 발라먹는 용도이고 요새는 100% 땅콩버터를 많이 먹는 추세이지만 땅콩버터에 설탕과 섞은 것, 초콜릿 맛, 시나몬 맛, 뭐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스타일 땅콩버터 & 잼은 드물다.
땅콩버터에 대해 알게 된 건 운동을 하고 몸매를 만들면서였다. 땅콩을 계속 갈면 만들어지는 게 땅콩버터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몸에 좋은 지방성분이 많다니 초콜릿바나 과자를 먹느니 땅콩버터를 얹은 빵을 먹거나 오트밀에 올려 먹으면 포만감이 크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수납장 한 켠에 자리한 땅콩버터가 이제는 할인할 때 사재기할 지경이라니, 이 것도 중독성이 있다보다.
80년대 부터 광고를 통해 땅콩버터가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데 네덜란드 말로 땅콩버터는 핀다카스 (Pindakass), 땅콩치즈다. 낙농업 종사자들이 버터라는 명칭을 진짜 버터에만 쓰게 하려는 로비가 먹혀 마가린도 버터라고 할 수 없듯 땅콩버터도 버터라고 불릴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땅콩버터가 지금같지 않게 땅콩을 잘게 부수어 뭉친 형태라 그걸 빵에 올려먹는 게 마치 치즈를 빵에 올려먹는 것과 비슷해 땅콩치즈라는 이름을 붙였나 싶다. 빵에 올리는 소비형태니, 말이 된다.
오랜 시간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음식과 소스는 네덜란드 음식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사테같이, 닭꼬치에 땅콩버터와 간장을 섞어 만든 소스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렇게 짭짜름한 음식에도 같이 먹을 수 있는 땅콩버터인지라 얼마전 땅콩버터 테이스터 세트를 샀을 때는 온 갖 이상한 레시피가 많았다. 스트롭와플이나 대추야자를 섞은 것, 혹은 캬라멜과 바다소금을 섞은 것 클래식하다. 상상할 수 있는 달콤 짭짤한 맛. 그런데 땅콩버터, 레몬그라스, 고추가루 혹은 땅콩버터와 계란도 있다. 약간 혐오스럽기도 하지만 한숟갈 먹어보니 맛있더라. 아직도 모르겠다. 왜 그게 맛있지?
거기에 땅콩버터 오이 샌드위치며 땅콩버터에 피클까지 얹어 먹는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상초월 레시피에 영감을 받아 땅콩버터, 고추장, 간장, 미린을 섞어 설탕없이 특제 소스를 만들어봤다. 칼로리 폭탄이지만, 감칠맛에 자꾸 먹게되는 맛있는 소스다. 이렇게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한국 퓨전 소스가 만들어졌다.
요새 유아들에게 땅콩 알러지가 많아 아기들도 처음부터 작은 양의 땅콩버터를 주어 점점 그 양을 늘려가며 땅콩에 대한 면역 체계를 만든다. 그래서 땅콩버터를 4개월 부터 먹는 우리 아기는 그 맛을 정말 싫어했는데 요새는 숟가락에 떠주면 낼름낼름 잘 핥아 먹는다. 이러다 세 가족이 위니더푸의 꿀통처럼 땅콩버터통을 끼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