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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May 31. 2024

세시 반이 아니고 네 시 삼십 분 전

네덜란드의 복잡한 시간 보기

요새 열심히 네덜란드어 공부를 하고 있다. “인버허링 (inburgering)”이라는 거주권을

위한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인뷔르흐링이라고 한글화하나 본데 현지 발음하고 너무 다르다. 인버허링은 “시민통합”(Civic integration)이라고 번역한다. 이민자와 난민이 많아지고 이로 인한 사회문제가 벌써부터 골치인지, 이 시험 기준이 높아져서 내 초보 네덜란드어 수준으로는 대충 패스하기 어려워졌다. 옆나라 독일이 A1 수준의 언어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를 테스트한다면 여기는 두 단계를 건너뛴 B1 수준을 요구한다. 회사 정책을 적어 놓은 서류를 읽고 답하는 수준이다.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 사람처럼 살라는 목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기/듣기/읽기/쓰기 언어 시험 외에도 네덜란드 사회에 대한 이해에 대한 시험, 네덜란드 가치에 대한 수업 6시간 수료, 네덜란드의 구직 및 직무 세계에 대한 강의도 들어야 한다.

여태까지는 항상 회사의 워킹 퍼밋으로 살아 인버허링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는데

배우자 비자로 바꾸자마자 이민국에서 인버허링 하라고 편지가 날아왔다. 주어진 시간은 3년. 이제 그 반이 지났다. 그 안에 통과 못하면 이 나라를 뜨라니 없는 시간 쪼개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네덜란드어를 (또) 배우면서 느끼는 언어에 스며든 네덜란드의 문화가 재밌다. 공부가 그저 힘들지만은 않는데 그런 이유도 있다. 오늘은 그중 영원히 미스터리일 것 같은 시간보기 이야기를 할까 싶다. 요새는 핸드폰이나 스마트워치로 몇 분을 한 자리 수로 쪼개 말하는 것이나 대충 그쯤 되었다고 말하는 게 당연하다.


“몇 시야?” “세시 이십삼 분“

“다음 약속으로 월요일 오전 열 시 십오 분 괜찮으세요? “


이런 식으로 쪼개진 시간 말이다. 여기

살면서도 영어를 써서 그런지 난 그런 방식이 아니면 몇 시 몇 분을 말하는지 너무 헷갈린다. 숫자세기나 계산, 전화번호도 한국에서 자라며 배운 방법이 아니면 그만큼 자연스럽거나 빠르지 않은 이유는 뭘까? 언어는 외국어가 편해져도 숫자는 모국어가 기본값인 데에 이유가 있을까? 그나마 영어식 표현은 우리식 표현과 비슷하다. 그래서 중요한 병원 약속 같은 거면 네덜란드어로 말을 해보다가도 영어로 바꾸어 시간을 확인한다.


네덜란드의 시간보기가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우선 삼십 분을 기준으로 그 전이면 그때 시각을 쓰고 그 후면 그 후 시각을 쓴다. 무슨 말이냐면, 시간이 3시와 4시 사이일 때 분침이 시계의 6시 표식 전에 있으면 3시 대 (?)인 것이고 6시 표식 후에 있으면 4시 대이다. 3:30은 세시 반이 아니고 네시 반 전 것이다! 반이 넘었으면 사사오입처럼 반올림해 쳐주는 거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이유를 여러 번 생각해 보니 혹시 항상 계획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건 아닌가 싶다. 반이 넘으면 벌써 다음 미래를 생각하는 거다. 아침 먹으면서 점심은 뭐 먹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까?

또 다른 차이는 더 고약하다. 15분을 기준으로 또 표현이 달라진다. 30분을 기준으로 그전과 후의 시간 대를 달리 말하는 건 그대로인데 거기에 난이도 하나를 더 해, 분침이 3시 혹은 9시 앞에 있거나 뒤에 있으면 사용하는 전치가가 달라진다.

출처: Contact 네덜란드어 교재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 영어로 몇 시 몇 분이라고 말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숫자도 많은 유럽국가들처럼 뒷자리를 먼저 읽어 가뜩이나 헷갈리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위

사진의 바이븐엔비어텋 (vijfenveertig)는 45를 의미하는데, vijf는 5이고 veertig는 40이다. En 은 ‘그리고’라는 뜻이다. 5 그리고 40. 뒤집어진 순서다.

시간을 돈처럼 여기는 이 나라는 “더치 옥션”이라는 것을 발명했는데, 이 때도 거꾸로 간다는 인상을 준다. 빨리 팔려야 하는 꽃 같은 제품을 높은 가격부터 불러 가장 낮은 가격에 파는 게 더치 옥션이다. 정말 해보지 않는 이상 “잉?” 소리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내 기준에서 거꾸로 숫자를 읽고, 시간을 보고 (?), 경매를 하는 것이 합리주의자들의 나라에서 이뤄지는 일들이라니, 내가 혹시 보지 못한 숨겨진 합리성이 있나 싶다.

새삼 이 복잡한 말을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내가 대견할 지경이다. 동사를 찢어 쓰는 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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