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탄산수만 먹다가 집에 가

술이 맛이 없어질 때

by 이나앨

짝이 없는 30대 초반이 그런 걸까. 놀고 싶은데. 취해서 히히 웃으면서 깨고 싶은데, 도저히 흥이 나지 않았다. 20대 때의 풋풋함은 사그라들고 어른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게 조금 우울하고 불만스러운 것. 아니면 당시 외노자로 오래 살고 있던 네덜란드의 개인주의가, 매일 오는 가랑비처럼 천천히 나를 외롭게 만드는 거였을까.


아무것도 나를 즐겁게 하지 못했다. 술조차 말이다. 친구들과 동네 술집에 가서 한 잔해도, 회사가 끝나고 친구이자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며 한 잔해도, 술이 맛이 없어졌다. 맛도 없고, 취하지도 않고 (난 취하는 데 오래 걸린다), 술 때문에 살찌는 생각까지 되어서 난 자연스레 술을 안 먹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와인이며 맥주를 시킬 때 어느새 나는 탄산수만 시키고 있었다.

새벽 2시까지 탄산수만 마시면서 춤을 춰 본 적 있는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을 보면서 '진짜 재미없다'라는 생각을 한 적 있는지.

클럽에 가는 대신 요가를 하고 집에 가서 일찍 자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tempImagel4WMeA.heic 네덜란드의 클럽에는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간다 출처: Unsplash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건강 트렌드와 함께 2018년 유럽 전역은 0% 맥주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스타트업이 개발한 와인이나 증류주 브랜드도 대기업 투자로 우후죽순 시장에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커리어를 런던으로 옮겨야 할 시점에, 30대 초반의 나는 다니던 회사의 런던 지사를 택하기보다 과감한 도전을 했다.


런던에서 무알콜 사업을 시작하기로.

나처럼 술에 대해 시무룩해진 젊은 영혼을 위해.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생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술 대신 내 삶을 지펴 줄 연료를 찾았다.






*Seedlip 시드립 같은 무알콜 증류주가 대표적이다.

아직 무알콜 시장이 생소하다면 간단한 검색을 추천한다.

회식자리가 싫어지는 MZ는 물론 건강을 생각하는 50대 이상도 이제 술을 덜 마신다. 내가 런던에서 사업을 시작한 7년이 지난 2025년에도 세계주류 소비는 1% 감소하는 반면 무알콜 맥주시장은 9% 증가했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