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사원으로 반도체부품구매팀에 배치를 받고 처음 맡은 일은 말도 안되게 단순했다.
자동차 한 대에는 무려 3만 개 가까운 부품이 들어간다. 그 부품들의 생산 계획이 나오면 일정에 맞게 하나라도 빠짐없이 모든 부품들이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차질없이 생산된다.
내 업무는 그 생산 일정을 체크해서 부품을 발주하고, 발주서를 ERP에서 다운받아 업체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이후엔 부품이 일정대로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생산 계획이 바뀌면 일정을 당기거나 미루는 일을 했다.
내가 담당했던 부품만 1,000여개가 넘었다. 전 세계 공장에서 오는 수 천개의 부품 생산 일정을 ERP 시스템에서 매일 확인하고, 수백 통의 메일을 보냈다.
일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다. 하지만 오래 걸렸다.
열심히 노력해서 입사했고, 나름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의 핵심 부서로 들어왔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단순할 수 있는건가.
선배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을 때, 그들도 동의했다.
모든 일이 ERP, Excel, 이메일로 이루어지고,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해야하는 비효율적인 구조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미 그 환경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클릭, 복사, 붙여넣기, 시스템 열고 확인, 클릭, 복사, 붙여넣기'
초반에는 그저 배운대로 했다. 프로세스를 따라가기 바쁘고, 처음 배우는 것들도 많아서 익숙해지기에도 여유가 없었으니까.
한 달, 두 달이 지나니 반복되는 업무에 정신이 지쳐갔다. 아무런 창의성도, 생각도 필요 없고 그저 손가락만 빨라지는 일만 하다 몇 년이 가버리면 진짜 기계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너무 재미없었다. 못 견디게 지루했다.
'손가락이 빨라지면 일을 잘하는 건가?'
회사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예를 들어 부품 하나의 원가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있다. 보통 3일이 걸린다. 그 원가를 결정하는 기준은 전부 정해져있다. 부품을 이루는 요소의 모든 인자값을 그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하나하나 확인하고 계산하면 된다. 느꼈겠지만 그 일의 모든 과정은 전부 단순 반복으로 이루어져있다. 3일이 걸려서 '이 부품의 원가는 천 원입니다' 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이 일만 한 달에 30개씩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계산기만 죽도록 두들겨서 30개 분석 보고서를 만들고, 연봉 1억원을 넘게 받는다.
'내 미래도 이렇게 될까, 이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내 안에 올라왔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 저 원가 분석 일을 내가 하게 됐다)
나는 항상 새롭고, 재밌고,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내가 이 안에서 어떤 가치라도 만들려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자동화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