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대기업에서 구매 담당자는 감사팀의 연락을 자주 받는다. 한 명이 1년에 책임지는 금액이 수백, 수천 억 원에 달하다 보니, 사소한 실수도 곧바로 회사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수도 있지만 개인의 치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직무를 주기적으로 바꾸게 한다.
정기든 비정기든 실수나 의심 사례가 포착되면 감사팀은 즉시 연락을 취한다.
대부분의 구매팀 직원은 감사팀의 연락을 두려워하고, 대응을 위한 ‘소명’ 준비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가 없을 때는 하루정도면 소명이 되어 끝나지만, 실제로 명확한 잘못이 있을 경우 일주일 이상 감사 대응 인터뷰만으로도 진이 빠진다고들 한다.
나 역시 몇 차례 감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단순 확인 정도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또다시 감사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직접 발주한 건이 아니었지만, 외자 조달의 모든 발주가 자동화된 후, 총괄자가 내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내게 연락이 온 것이다.
요청한 문서를 확인해보니 잘못한 건 없었고 충분히 소명 가능한 것들이었다.
나는 소명 자료를 전달하면서 설명했다.
"이게 어떤 연유로 발생했고 이렇게 처리가 됐는데, 시스템에서는 프로세스상 문제 때문에 이런식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사실 이건 제 담당이 아닌데, 외자 발주 업무가 자동화된 후 최종 담당자로 제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저를 담당자로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팀 담당자가 말했다.
"오, 이게 자동 프로세스로 되나 보네요?"
나는 신나서 자동화 프로세스에 대해 A부터 Z까지 설명했다. 감사팀을 만나면서 그렇게 신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감사팀은 프로세스를 명확히 하는 사람들이고 프로세스의 무결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나 역시 자동화를 다루면서 깊이 공감하고 있던 부분이라 그 부분에서 잘 통했다. 이후 그 감사팀 담당자와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겼고, 당시 내가 설명한 실무 프로세스가 큰 도움이 됐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이 왔다.
감사팀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기존의 감사 방식이 이미 사건이 발생한 후 사후 조치하는 방식이다보니 예방에 취약했다.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방지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프로세스 과정 중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경고해주는 일종의 휴먼에러 방지 시스템 같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현업에 적용하려면 먼저 프로세스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실무자의 조언이 필요했고, 그 때 얘기를 나눴던 감사팀 담당자분이 외자 조달 프로세스와 자동화 모두를 잘 알고 있는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팀장님께 보고 후 오프라인 미팅에 참석했다. 일명 <예방 탐지 프로그램(가명)>이었는데,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딱 RPA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워낙 재밌어하던 일이라 나는 또 신이나서 업무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고, 표준 매뉴얼과 실제 운영되는 흐름, 예외 케이스, 병목 구간, 사전 감지 가능한 포인트까지 상세하게 짚어주었다.
나중에는 보안이 철저한 감사팀 사무실까지 출입하며 실질적인 탐지 사례까지 제안했다.
"영업팀에서 수요 예측을 할 때 제품 코드가 고객사와 다르면 정합성 검토가 되지 않아 수요 오류가 발생하고, 그로인해 재고가 과도하게 쌓이게 되거든요. 또 해외 공장의 생산량 업로드가 시스템간 실시간으로 연동되지 않으면 발주 리드타임 때문에 불필요한 재고가 발생합니다. 이런 지점을 사전에 잘 디텍팅하면 연간 수십억 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자동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탐지 기능 자체보다는 애초에 시스템이 잘 굴러가서 탐지될 게 없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애초에 시스템이 실시간 연동이 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중간에 실수만 잘 탐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들은 내 현장 경험이 반영된 의견을 담아서 전달했다.
감사팀은 내부 개발 역량이 있어, 보안이나 민감한 정보를 직접 다루며 시스템을 유연하게 개선해나가고 있었다. 반면 우리 실은 외주 개발에 의존하다 보니, 민감한 정보는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도 자체 개발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프로젝트를 추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