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앤온리 Jan 21. 2023

장례식장에 다녀오다


밤 12시 25분에 도착한 메시지였다.

“우리 아빠가 어제 하늘나라로 가셨어.”라고.


고등학교 시절 가족만큼이나 친하게 지냈던 단짝 친구의 메시지였다. 학창 시절 내내 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 다니며 친구의 부모님과 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그래서 아버님의 생전 모습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너무나 허망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가 나오질 않았다. 그저,  “어떡하니. 속상해서 어떡해.”라는 메시지만 보내놓고 망연자실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왕복 6시간이 걸리는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그 친구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딸 넷 중 첫째였다. 생각이 깊고 책임감도 강하며 항상 어른스러웠다. 책을 좋아해서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던 친구였다. 어려울 때 격려해주고 나태할 때 꾸짖어주며 건설적인 비판도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는 의젓한 친구였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면서도 박사과정에 도전하여 시간을 쪼개어 자기 계발에 힘쓰던 강한 친구였다.


그렇게 강하던 친구가 빈소에서 나 마주하자마자 두 팔 벌려 다가오더니 온몸으로 끌어안고 울었다. 눈물이 없던, 혹은 늘 눈물을 참던 친구였는데 말이다. 아버님의 영정사진 앞에 인사도 채 드리기 전에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울었다.


진정이 된 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는 곳이 멀고 바쁘다는 핑계로 6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지만 며칠 전 만난 것 같이 편안했다.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이제는 대학생이 된 친구의 딸과도 인사했다. 친구가 다른 문상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친구의 딸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늘 그 친구를 자랑스러워하고 내심 존경해 왔기에 그의 딸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희 엄마 참 대단한 사람이야. 알고 있니?” 그러자 딸이 대답한다. “네! 알고 있어요. 저희 엄마가 저의 롤모델이에요!”라고 말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놀랐다.  딸에게 롤모델이 된 친구가 대단해 보이는 동시에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과연 나의 딸도 이렇게 망설임 없이 엄마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부족한 내 모습에 마냥 부끄러워다.  훌륭한 내 친구에게 나는 참 부족한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복이 많아서 이 친구처럼 오랜 기간 소중한 관계를 이어온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모두 각자의 집안에서 첫째 딸들이다. 처음엔 그것을 우연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철없고 부족한 나를 자기 동생 돌보듯 받아줄 여유가 있는, 언니 같은 이들이었기에 좋은 관계가 유지된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이 관계들에서 나의 노력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하듯, 친구들도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근태 작가님의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보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몰릴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태까지는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닌데도 운 좋게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어왔다. 이제는 그들에게 어울릴만한 좋은 사람이 되도록 내가 노력할 차례다.


문상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눈물을 보여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때 같이 부둥켜안고 울어주었으니 나도 아주 나쁜 친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같이 나를 돌봐주는 나의 좋은 친구들 보다 실은 내 생일이 제일 빠른다는 창피한 사실은 애써 잊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림 출처 : Unspla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