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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Jan 25. 2023

슬램덩크 정우성의 그릇

대기만성 (大器晩成)  
[명사]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얼마 전 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는 고교생 농구 스타인 ‘정우성’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였다. 그는 자신이 속한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농구대회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한다.


 “저는 이미 (실력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루었으니, 그저 저에게 필요한 경험만 주십시오.”라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출전한 경기에서 최강 우승 후보인 그의 팀은 뜻밖의 패배를 당한다. 그는 패배 직후 덤덤한 척하다가 자신의 기도를 떠올리고는 오열하며 슬퍼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대기만성’이라는 단어를 보며 참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왕이면 나중보다는 일찍,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좋을텐데 왜 굳이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일까 싶어 의아했다. 심지어 이 말은 단지 남보다 뒤처지고 느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남보다 뒤처지는 사람이 된 것은 대학 입시에서부터였다. 수학능력시험을 망친 탓에 원하는 대학에 똑 떨어졌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입시에 도전하여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그 때 생각했다. ‘남보다 늦긴 했지만 결국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으니, 대기만성이란 말이 이럴 때 적용되는 말이구나.’라고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이제 내 인생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이루어질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일 년에 몇 개월씩 해외출장을 다니며 소위 ‘잘 나가는’ 직장생활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잦은 해외출장은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회사를 관두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러 사정상 전업주부로 집에 있으면서,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들에게 오히려 뒤처지게 되었다는 좌절을 맛보았다. 그렇게 첫 번째 경력단절을 겪고 난 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받고서 대기만성이 이제서야 진짜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착각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에도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과 재취업을 몇 차례 반복했다. 재취업을 할 때마다 이제는 진짜 내 ‘그릇’이 완성되는 때인가 기대했지만 결국 매번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게 20여 년을 보지금에서야 ‘대기만성’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20대  명문대 입학 후 나의 ‘그릇’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던 때는, 그릇은 그릇인데 큰 그릇이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그 때는 그냥 아주 작은 간장종지를 완성한 것 뿐이었다. 그 이후 겪은 여러 번의 좌절과 재성공(?)은 그저 간장종지 보다 조금 큰 반찬 그릇, 그보다 조금 큰 밥그릇으로 크기를 넓혀가는 일련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대기만성’의 진짜 뜻은 어린 나이에 찾아온 성공 완성된 성공이 아니며, 합당한 시간과 노력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큰 그릇이 완성되어 진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대기만성이란 큰 대(大)가 아닌 기다릴 대(待)를 써서, 그릇이 뒤늦게 완성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슬램덩크의 정우성 역시 고등학생 때 이룬 그의 실력은 간장종지에 불과했으리라. 그의 패배 경험은 그의 그릇을 큰 그릇으로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의 진정한 성공, 즉 그의 큰 그릇이 완성되 시기는 아마 한참 뒤에 찾아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여러분도 우리 자신의 큰 그릇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겪어온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은 모두 우리를 큰 그릇으로 빚어가는데 필요한 재료였을 것이다. 앞으로 자만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 언젠가는 나 자신의 진짜  그릇 완성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림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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