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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앤온리 Apr 02. 2023

치과 스케일링 받다가 고해성사를 보다.

 - 끊임없이 죄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단상

치과를 다녀왔다. 치과 의자에 누워서 스케일링을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고해성사를 앞 둔 시간과 같다. 성당에서는 고해성사를 앞두고 조용히 앉아 나의 지나간 시간을 가만히 반추해본다. 그동안 저지른 잘못들은 무엇이 있는지, 반성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래야 고해성사를 보면서 나의 잘못을  빠짐없이 고할 수 있다.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기다리며 같은 시간을 갖는다. 나의 치아에게 저질러온 일들 반성하는 것이다. 식사 마친 뒤 한참 뒤에야 양치한 일, 이에 안좋은 달달한 디저트들을 만끽한 일, 착색이 심하게 되는 커피와 홍차를 마구 마셔왔던 일 등등.. 숱한 과오를 돌아보며 도대체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드디서 스케일링이 시작된다. 두툼하고 차가운 면소재의 커버가 얼굴에 씌워진다. 성당에서는 머리에 하얀 사포를 쓰며 절대자인 신 앞에서 겸손해진다. 치과에서는 얼굴에 커버를 쓰며 심판자인 치과선생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뿜어져나올 침을 뽑아낼 석션 기계를 입에 문다. (제 침 한방울 조차 스스로 컨트롤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여.) 이제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이다. 이윽고 차가운 촉감으로 귀를 찌를 듯한 비명을 지르는 스케일링 기계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매년 몇 번씩 해도 결코 편안해지지 않고 끝날 때 까지영겁의 시간같이 느껴지는 스케일링이 시작된 것이다.


스케일링을 받는 동안은 발가벗겨진 듯 부끄러워진다. 치과 선생님은 스케일링 작업을 하면서 지나온 시간동안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치아 관리 해왔는지 꿰뚫어 볼 것이다. 그동안 고된 노동을 묵묵히 수행해온 치아들이 이때다 싶어 치과 선생님께 일러바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딱딱하고 끈적이는 것을 부수라고 던져놓고는 저희가 힘들게 일을 끝냈는데도 바로 닦아주지 않았어요!’라고 말이다. 스케일링 작업동안 겪게되는 고통들은 그간 치아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은 잘못에 대한 댓가다. 따라서 아무리 이가 시리고 아파와도 아무말 없이 참아야 한다. (물론 스케일링 중엔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지만.) 치아에 씌워진 나의 죄를 벗겨내는 숭고한 손길을 느끼며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마치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번엔 치과에서 반성을 열심히 하다가 응답을 받았다.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한 것이다. 작업하는 치과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분명 나는 들었다. 커피나 차를 마시면 바로 양치까지는 못해도 물로 입을 헹구기라도 하라고 지난번에 그렇게도 당부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군요!‘라는 소리다. 기도 응답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치과 응답은 오히려 불편다. 심해진 착색을 제거하느라 스케일링 작업이 평소보다 길어질 수록 더욱 불편해진다. 소홀 다룬 치아에 대한 미안함에서 치과 선생님에 대한 죄송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이번 스케일링을 끝내면 다시는 커피나 차를 마시지 않으리라 속으로 외쳐본다.


드디어 스케일링이 끝나고 얼굴을 덮었던 면사포가 걷혀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께 인사를 한다. “선생님, 착색이 심해서 고생 많이 하셨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말하지않은 나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대답한다. “커피나 차를 아예 마시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드시고 싶으시면 드셔야지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위로하는 그녀의 머리에 자비의 후광이 비치는 듯 하다.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마치면 ‘보속(補贖)’이라는 것을 내준다.  지은 죄를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치러야 하는 댓가이다.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는 불소도포가 꼭 그 보속같다. 치아에 끈적한 젤 같은 불소를 바르면 일정시간 동안 침을 삼킬 수가 없다. (불소는 삼키면 안되는 화학물질이다.) 당연히 그 시간 동안은 물을 비롯해 어떤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을 질질 흘리거나 뱉어내면서 함부로 다룬 치아에게 사죄하고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보속을 한다.


드디어 모든 단계를 마치고 치과를 나서는 순간은 참으로 마음이 홀가분하다. 조금 과장하면 새 사람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든다. 사실 달라진 것은 뽀득뽀득하게 깨끗해진 치아들 뿐이다. 그러나 단지 치아의 새로 태어남을 떠나서 그간 (치아에게) 지어온 죄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도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이다. 발걸음마저 가벼워진다. 새로 태어나 광명을 찾은 기념으로 제일 먼저 발길이 향하는 곳은 치과 건물에 자리잡은 유명한 카페이다. 그렇다. 또 그놈의 커피. 4개월 뒤에 다시 치과 의자에 누워 처절하게 반성하게 될 이 어리석은 인간이여!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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