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그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날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과 가나의 조 예선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거실에 모여 숨죽이며 경기를 보기 시작한 그 시각, 나는 서재에 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한국팀의 승리를 바라는 가족들의 응원 소리를 먼발치서 들으며 브런치 작가라는 새로운 도전의 문을 열었다.
사실 브런치에 도전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십여 년 전인가 브런치 서비스가 막 시작된 해에 그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워킹맘으로서 치열한 삶을 살던 시절, 내 안에 폭발하는 무엇인가를 분출할 출구가 필요했다.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살고, 내가 사는 이 도시에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던 터라 내 안에 쌓인 무언가를 풀어놓을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친구를 못 사귄 것은 단지 바빴을 내 인간성 탓은 아니리라고 애써 위안해 본다) 그러던 차에 브런치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오롯이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했었다. 앞선 글에서도 썼듯이 약간 배출의 욕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여하튼 그때의 브런치 작가 도전은 당연히 실패였다. 그때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글을 많이 써보지도 않았을 때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뒤로 한참 동안은 글을 쓰고 싶어 했던 내 모습도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작년 갑작스레 글쓰기 모임에 나가게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글쓰기 모임을 시작할 때는 글쓰기 모임인 줄도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글쓰기 숙제를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난 몇 년 간 가물에 콩 나듯, 혹은 우리 집 택배가 남의 집으로 잘못 배송되는 정도의 빈도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려면 책에 담을만한 나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할 텐데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직장생활하고 평범하게 가족을 이루고 평범하게 육아를 하고 있을 뿐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또라이 같은 나 자신을 ‘평범’하다고 착각했다는 게 어이없다.) 그래서 생각만 했을 뿐 어떠한 행동으로도 이어지지 않았고 이내 생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몇 년 간 잊고 살았던 브런치에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변 지인들의 권유였다. 우선 글쓰기 모임의 동기 중 한 명이 강하게 권유했다. ‘무직’ 타이틀을 벗고 ‘작가’라고 쓰여있는 명함을 파고 싶다고 말했더니, 빨리 작가가 되고 싶으면 브런치에 도전하라고 권한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책 출간을 준비했고 5천 명 이상의 이웃을 가진 액티브 블로거인 그녀도 브런치 ‘등단’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 저렇게 훌륭하신 고수도 안되었는데 글쓰기 시작한지 고작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내가 될까 싶어서 도전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만나 몇 년간 알고 지내던 지인도 갑자기 브런치에 같이 도전하자고 제안해 왔다. 몇 년간 알고 지내면서도 그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나의 고백을 듣고 그가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본인도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작가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각자 22년 12월 말까지 브런치 작가선정에 도전해 보자고 권해왔다. 브런치 도전을 권해준 그 두 분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인사를 전한다.
여하튼, 그 두 명의 권유와 격려에도 쉽게 도전할 마음이 나진 않았다. 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남들에게 나의 은밀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 앞에 벌거벗긴 채 서있게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글솜씨가 없으니, 꼴랑 이 정도 수준의 글을 가지고 ‘작가’라고 말하냐는 비아냥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더 나아가 내가 아는 사람들, 특히 내 아이들에게 나의 글을 보여주는 것이 두려웠다. 엄마가 이렇게 부족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기 싫었으니까. 그래서 좀 더 많이 트레이닝하고 나서 자신감도 생기고 용기도 나면 도전해야겠다며 미뤄두었던 터였다.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도전했냐고? 글쎄. 굳이 말하자면 날갯죽지의 통증 때문이라고나 할까. 월드컵 경기 전날 저녁부터 오른쪽 날갯죽지 부근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그 부위가 쑤셔서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뒤척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브런치 작가 도전이라는 토픽(?)이 떠올랐다.
나란 사람은 원래는 망설이지 않고 어떤 일이든 저지르고 보는 사람인데 이건 왜 이리 망설이나 싶었다. 당장 내일 도전하든, 연말에 도전하든, 내년에 도전하든 어차피 첫 도전에서는 작가 선정에 탈락할게 뻔한데 뭘 그리 겁내나 싶었다. 그러니 더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도전했다. 그리고 지원한 지 이틀 만에 합격 소식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
자, 길고 길었던 과정들은 차치하고 작가 선정이 되니 기분이 어떠냐고? 처음 합격 이메일을 읽고 나서 한 2분간은 정말 기뻤다. 그 다음에는 덜컥 겁이 났다. 이제는 진짜 빼도 박도 못하고 글쓰기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매일같이 글을 쓰자는 다짐을 가뿐히 뭉게버렸던 각종 핑계들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새로운 회사에 취업이 됨으로써, 백수일 때 누리던 게으름 및 나태함과는 이별하게 된 듯한 기분이랄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막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지인들에게 자랑했다가는 브런치에서 내 글을 찾아볼텐데 괜찮겠어?’ 하는 마음이 충돌했다. 그래서 정작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나의 브런치 주소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ㅎㅎ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 글쎄. 그건 일단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로 명함부터 파고 나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해보기 전엔 잘 할지 못 할지 알 수 없으니 그까짓 거 일단 한번 부딪쳐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