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글을 쓸 수 없는 것인가. 정확히는 글을 쓰려 책상에 앉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 것인가.
흔히 말하길, 글쓰기를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는 훌륭한 글을 쓰고자 하는 욕심과, 허접한 완성물을 만들어 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라 하였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아 멘토로 삼고 있는, 그러나 본인은 나의 멘토임을 모르고 있는 서은희 작가에 의하면 그냥 무조건 쓰라했다. 쓰레기를 쓴다는 심정으로 시작부터 하라 했다. 그러나 나는 왜 시작도 못하고 밍기적대는 것인가.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술 발전의 속도이고 다른 하나는 맹자 때문이다. 첫 번째로 기술 발전의 속도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냐고? 천만의 말씀. 기술은 인류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발전하였으나, 내가 기대한 것보다는 턱없이 느리게 발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고 있는 지금쯤이면 그릇을 씻어 식기세척기에 넣어주고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를 접어서 서랍에 넣어주는 로봇이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이것을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니, 두뇌를 써야 하는 Human Being인 나의 글쓰기 시간을 빼앗는 것은 다름 아닌 끝없는 가사일들이다. 도대체 현대기술은 언제쯤이면 나에게 자유를 주어 마음껏 글쓰기를 할 수 있게 해 줄 것인가!
두 번째는 맹자 때문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녀도 맹자가 아랑곳 않고 글을 멀리하며 흙바닥에서 돌이나 던지고 놀았더라면 어머니의 교육이 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크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엄마의 노력만큼 똑똑하게 자란 맹자 덕에 나 또한 아들 교육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글쓰기 하려고 맘먹고 앉을라치면 바로 조용히 게임기를 들고 사라지는 아들을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니 아들이 하루종일 게임만 하면서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안 하는 꼴을 볼 수 없어 시시때때로 아들과 놀아주어야 하는 나는 언제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 글쓰기 시작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참을 수 없는 나태의 무거움이었으니.. 나의 나태의 무게는 졸릴 때 눈꺼풀의 무게보다도 더 무거워서 내가 책상에 앉을 수 없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었다. 필라테스 수업에서 한 발 들고 서있기를 몇 초도 버티지 못하는 실낱같은 코어근육을 가진 내가 버티기엔 나의 나태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겁다.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하신 나의 글쓰기 스승님께서 부디 이 글을 보지 못하시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드러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