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로 시작한 오디션

- 북클럽 진행자의 옷을 입다

by 북멘토 임작가


누군가에게 저를 북클럽 진행자라고 소개하면, 전에 이런 비슷한 일을 했었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북클럽 진행이라는 일은 오디션을 보던 그날 처음으로 해 본 일이었어요.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서, 스승님께서 진행하는 북클럽에 참관하러 다녀왔어요.


스승님이 진행하는 것을 보니 역시 진행 솜씨가 엄청 매끄럽고 뛰어났어요. 스승님의 북클럽을 참관하며 북클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스승님의 방식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었어요. 북클럽 참석자들의 발표를 들으며 그때마다 조언해 주고 배경 지식을 설명해 주는 스승님의 연륜과 능력을 저는 결코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와서 스승님보다 연륜도 짧고 역량도 부족한 저로서 어떻게 북클럽을 진행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우선 책에서 답을 찾자는 마음으로 책도 참고서 파 보듯이 여러 번에 걸쳐 읽었어요. 해당 책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도 사서 읽으며 참고했어요. 저에게 없는 역량을 단기간에 채우려면 책의 내용을 되도록 넓고 깊게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디션 당일 진행할 책의 내용을 요약한 출력물도 만들고, 논의할 주제들도 몇 가지로 정리했어요. 그리고 당일 진행할 내용을 시나리오처럼 만들어서 혼자서 몇 번에 걸쳐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어요. 그렇게 준비한 끝에 드디어 오디션 날이 되었어요.


당일 오디션을 위해 저는 ‘부캐’를 입었어요. 원래 성격은 덜렁대고 시끄럽고 까불까불해요. 하지만 북클럽 진행자라면 차분하고 우아하고 지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성격을 설정하고 당일 진행을 시작했어요. 준비한 대로 책의 내용을 요약해 주고 거기서 논의할 주제를 참석자들에게 던졌어요. 그리고는 그들이 이야기하게 했지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와 관련된 부속질문도 했어요. 가족들과 집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에 대해서요.


그러자 한 참석자가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말투로 말했어요.


“저는 집에 가면 아내와 별로 할 얘기가 없어요.”

“그러시군요.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면 아내분과 대화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를 바라지는 않으세요?”

“얘기를 하고 싶어도 아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요.”

“아내분이 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제가 아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듣기 싫어하는 말을 더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몇 번 질문을 던지자 그 참석자는 갑자기 아내와의 대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책의 내용을 적용해서 바꿔 봐야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때 알았어요. 저는 스승님만큼의 역량은 없지만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해 주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을요. 참석자들이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집중해서 그의 말을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았어요. 참석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다른 생각들이 솟아났어요. 다음 질문은 무엇으로 할지, 다른 사람으로 언제 발언권을 넘길지,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른 참석자들은 지루해하지 않는지 등등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해주고 싶은 말들도 머릿속에 분수처럼 쏟아졌어요.


하지만 마침 그날 진행했던 책인 ‘말센스’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상대의 얘기가 옳든 그르든, 재미있든 없든, 내 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자. (중략) 대화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려면 당신은 생각이 마음속을 그냥 통과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그래서 책의 내용대로 최대한 머리를 집중해서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어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 들은 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마무리 코멘트를 하고 끝냈어요.


그렇게 오디션을 끝내자, 그날의 참석자들이었던 북클럽 담당 부서의 임원과 팀원들이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어요. 다행히도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도 좋았고, 책의 내용을 짚어 준 것도 좋았다고 했어요. 다만 한 가지 개선점은 저의 에너지 레벨, 즉 텐션이 좀 낮으니 더 높여 달라는 것이었어요. 제 목소리가 너무 작고 나긋했다면서요.


그 피드백을 듣고는 깜짝 놀랐어요. 목소리가 작고 나긋하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거든요. 원래 저는 체구에 비해 목소리가 엄청 커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 다닐 때 동료들 사이에서도 목소리 좀 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심지어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제 옆에 앉은 사람은 제 큰 목소리 때문에 정신없다며 옆자리에 앉기를 거부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피드백을 들었다는 얘기는 제가 설정한 ‘부캐’가 잘 작동했다는 이야기 같아서 슬쩍 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물론 이 '부캐'는 금세 탄로 나서 지금은 저의 본모습으로 북클럽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날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나와요.


그렇게 오디션을 끝내고 저는 조건부로 합격했어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6:1 정도로 저에 대한 찬반 의견이 갈렸다고 해요. 다행히 찬성 의견이 많아서 조건부 합격을 할 수 있었어요. ‘조건부’라는 이야기는 앞으로 세 번의 북클럽을 진행해 보고 성공적으로 잘 마치면 최종 합격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아직 정식으로 진행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오디션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잘 넘긴 것 같아 기뻤어요. ‘부캐’의 성공적인 데뷔도 기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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