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족이란?
글쓰기 동기들이 매달 같은 주제로 글을 써 오고 있다. 이번 달 주제는 '나에게 가족이란'이다.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다가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세탁소 문 닫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내가 운전하고 남편은 조수석에 탔는데, 남편이 세탁소 위치를 내비게이션에 찍으라고 했다. 그래서 내비에 주소를 찍고 있는데, 미처 다 입력하기도 전에 남편이 말한다.
"빨리 출발 안 하고 뭐 해! 늦었다니까."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났다. 본인이 주소 찍으라고 해서 그 말대로 하고 있는데, 안 가고 뭐 하냐고 나무라니까 말이다. 성질이 나서 쏘아대려다가 꾹 참고 한마디 했다.
"우리 남편이 퇴근해서 온 줄 알았는데, 남편은 안 오고 상무님만 오셨네요. 상무님,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지시하세요."
그러자 남편이 뜨끔했는지 멋쩍은 듯이 웃는다. "아, 내가 그랬나?" 그러더니 그 다음부터는 내 눈치를 보면서 기분을 풀어 주려 애썼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 어제의 일을 떠올리니 웃음이 절로 났다. 남편이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처음부터 남편이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결혼은 상대방 덕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덕 주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결혼 초에는 남편 덕만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도 내 덕만 보고 살려고 하니 정말 많이 싸웠다. 헤어질 생각도 할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며 바닥까지 내려간 어느 날, 도대체 왜 이런 짝을 나에게 보냈냐고 원망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이런 기도 응답을 받았다.
"네 남편은 너 아니면 받아 줄 사람이 없다."
그때 내 안에 무언가가 크게 바뀌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남편 덕 보려는 마음을 버리고 덕을 나누고 살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만큼만 똑같이 해 준다는 마음을 버리고 더 잘해 주려 노력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부부 사이가 서서히 달라졌다. 어느새 남편도 나에게 덕 주는 남편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도 남편 복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가족을 떠올리면 친정 부모님도 생각이 난다.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가난해서, 유치원도 학원도 다니지 못했다. 7살 때 남들 집 우편함에 다 꽂혀 있는 '시험지'가 너무 하고 싶어서, 땅바닥에 버려진 시험지를 주워다가 풀었던 기억이 있다. 피아노 학원에 너무 가고 싶어서 매일같이 학원 유리창 앞에 붙어서 구경만 하니, 불쌍하게 생각한 원장님이 몇 번 공짜로 가르쳐 주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친정 살림은 나아지질 않아서 결혼 비용도 내가 마련하고, 유학 비용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가난해도 화목한 부모님이었으면 상관없었을 텐데, 우리 집은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집이었다. 부모님이 싸울 때 너무 싫어서, 한밤 중에도 집 밖에 나가 싸움이 끝날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저렇게 싸울 거면 그냥 이혼을 하지 왜 같이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남편 생각을 하다가, 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모 덕을 보려고만 했지, 덕이 되어 주려 하진 않았다는 생각. 부모님 덕 보고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생각을 고쳐먹으려 한다. 왜 꼭 자녀만 부모 덕을 봐야 하는가. 부모도 자녀 덕을 볼 수 있지. 앞으로는 덕을 베푸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더 잘해 드려야겠다. 그러면 언젠가는 남편 복뿐만 아니라 부모 복도 있다고 말할 날이 오지 않을까.
나에게 가족이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해 주어야 하는 존재다. 내가 덕을 베풀어야 하는 존재,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해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 그게 나의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