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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석 May 05. 2023

19살, 나의 첫 자해

아홉수를 조심해

까마득했던 19살을 지나, 29살이 되었다.

언제나 어릴 거라고, 언제나 20대 일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느낌이다. 이러다 눈 뜨면 앞자리가 3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뭔가 낯익기도 하다. 내가? 벌써 서른 살? 전 몸만 큰 아직 응애인데요?


25살을 넘기고 26살 때부터는 뭔가 내 나이를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나보다 나이가 많던, 적던, 동갑이던 항상 내 나이를 후려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벌써 그렇게나 됐어? 마냥 어리지는 않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이레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하니 패스하고, 동갑인 친구들은 '이제 우리도 다 늙었어.. 좋은 시절 다 갔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발언들을 들을 때마다, 무슨 소리냐고 버럭 하며 아직 어리다고 대답하는 것도 한두 번.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점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져서 점점 주눅 들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29살. 스쳐 지나가는 말로 지인이 '아홉수 조심해 원석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었다. 언제 적 아홉수? 삼재 같은 것도 다 거짓말이라는데, 웬 아홉수?라고 하며 가볍게 대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박혔나 보다. 자꾸만 '아홉수'라는 단어를 반추하게 되었으니. 왜냐고? 마침 그 얘기를 듣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거의 일주일에 5일은 밤마다 울고 있는 상태가 되었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산정특례를 받는 일도 생겼다.


더불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19살 때도 꽤나 힘들었고, 29살도 호락호락하게만 넘어가지는 않는데 39살은 어떨까? 19살은 학생 때만 겪는 투쟁을 했었고, 29살은 20대의 마지막에서 청춘을 보내는 느낌이라면 39살은 어떤 느낌이려나.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싱숭생숭해할지, 혼자만 앓고 있는 열병을 해결하지 못한 채 끙끙거리고 있을지.


사람은 언제나 喜喜 상태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플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고, 화내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내 상태는 몸통 한가운데가 뻥 뚫린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요 한 달간은 자꾸 칼이나 화살로 찔리는 정신 나간 상상을 하루 종일 하며, 멈출 수가 없다.


나 지금 제정신이 아니구나!!! 살려면 정신과를 가야겠다!!!


라고까지 현재 결론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또 극쫄보라 정신과를 가기까지는 한참이 걸리겠지만.


여하튼 이 모든 건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왜 아홉수일 때만 이렇게 생체기를 하는지. 아직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고 천진난만했던 9살은 예외로 치고, 벌써 10년이나 된 19살의 기억 약간과 지금 29살의 감정을 하나씩 꺼내 내 우울일지를 기록해보려 한다.


자해의 첫 시작, 19살


내 손목에는 흰색 줄이 여러 개 있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로 내 첫 자해의 시작은 19살, 학교 독서실이었다. 처음에는 그을 생각이 아니었는데, 의외로 용기를 준 건 중학교 3학년때인가 짝꿍이 했던 말이었다.


"손목 안쪽은 동맥이 있어서 그으면 아프고 위험하대. 그런데 손목 바깥쪽은 그어도 그렇게 안 아파. 위험할 일도 전혀 없고!"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며 가위로 시늉을 내는 게 아닌가. 얼핏 본 거라 진짜로 그 애가 그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희미하지만 그 대화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다시 19살로 돌아와, 어느 평범한 고등학생들처럼 수능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공부는 한다고 하는데 왜 이리 성적이 오르지 않는 건지, 돈만 축만 내고 있는 식충이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몸도 한 말썽을 피웠다. 먼지가 쌓여있는 어둡고 컴컴한 학교 독서실만 가면 눈이 어찌나 그렇게 가렵던지. 눈은 간지러워서 미친 듯이 눈물이 나고 간지럽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사마귀까지 손등에 올라왔다. 울퉁불퉁한 게 싫어서 긁고 뜯으면 피가 난다. 상처만 생기면 다행이지만, 피를 통해 번지는 습성이 있어 처음에는 좁쌀만 했던 2~3개의 사마귀가 마지막에는 왼쪽 손등에는 5개 정도, 오른쪽 손등에는 얼핏 봐도 10개가 넘을 정도로 늘어나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피부과에 가 바르는 약을 처방받았다. 독한 약이라 그런가, 생체기에 바르면 계란프라이가 프라이팬에 오를 때처럼 타악~하는 소리를 내며 피부 안에 파고드는데 그게 또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또 약을 잘못 바르면 사마귀를 태우는 범위가 넓어져 사마귀를 해결하려다 흉터만 더 커지는 격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도 자꾸만 눈이 가는 손등 때문에 짜증이 많이 났던 기억이 난다.


또 장시간 오래 앉아 있느라 아픈 허리와 계속해서 저린 다리, 너무 아파서 밤에 토를 했던 기억들. 왜 이렇게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안 아픈 곳이 없는지. 공부에 집중하고 싶은데 아프니 짜증이 나면서도, 동시에 아픈 걸 통해 공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런 상황이었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으니 몸으로 증상들이 올라오고, 아파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때를 기억해 보자면, 왜 뭐 때문에 그렇게 슬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복합적으로 모든 요인들이 섞여서 그랬겠구나- 라고 추론만 해볼 뿐이다. 마침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없었고, 나는 이 슬픔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매우 미성숙했다. 엎드려 눈물을 계속 흘리다, 마치 유레카! 를 외치듯 이 슬픔을 환기할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마침 나의 필통에는 칼이 있었다. 난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손목 안쪽은 싫다. 다만 지금 이 슬픔을 잠시나마 잠재웠으면 하니, 손목 바깥쪽이 괜찮을 거야.


처음에는 주저하며 살짝 그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칼날이 뜨거워진 내 몸을 식혀주는 기분이었다. 빨간 줄이 3갠가 생겼던 것 같다. 피를 더 내고 싶어서 상처 난 부분 주변을 꾹 누르니 피가 몽글몽글 맺혔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냥 멍하니 바라봤다. 좀 환기가 되는 것 같다고 느꼈던 건 1분 남짓, 이후에는 그저 멍한 내 모습과 빨간 줄 3~4개가 박혀있는 손목만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다음에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멍하니 손목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친구가 나를 불러 손목을 황급히 가리며 대답을 했던 것만 같다. 친구가 어디서부터 내 모습을 봤는지는 알 수 없다. 정작 내가 너무 당황해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고, 횡설수설 얘기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친구를 제대로 보기 힘들어 마냥 피했다.


이게 내 자해의 첫 기억이다. 위에도 썼지만, 우연하게도 이 시작이 19살이었다. 뭐가 이리 서글프고, 아프고, 우울했는지 할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19살의 나에게 묻고 싶다. 아마도 이런 질문에 나는 뿌엥-하고 울면서 한이 맺혔던 걸 다 풀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때는 이유가 있었는데, 지금 29살의 나는 이유 없이 막연히 슬프다. 그때처럼 에너지 있게 말할 힘이 남아 있지 않고, 그저 입을 막고 밤마다 숨죽여 울 뿐이다. 남들이 보기에도 괜찮게 잘 다니는 직장, 혼자서도 싹싹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 적당히 괜찮은 대인관계들. 나를 괴롭힐 건 하나도 없다. 다만 나 스스로 나를 괴롭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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