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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석 Apr 02. 2024

30대,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이유

내가 좀스러워서 그래, 다른 이유는 없어

블로그, 브런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SNS를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줄어들어 언젠가부터 발걸음을 뚝 끊었고, 트위터는 여전히 나에게는 어려운 던전에 초보자용 칼만 쥔 채로 입성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난이도도 높고 무법지대 같다는 얘기다. 10년도 훨씬 넘은 시절, 언젠간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이라는 SNS가 유행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좋아요#맞팔#fff와 같은 해시태그가 난무하기도 훨씬 전이었다. 그저 싸이월드보다는 좀 덜 난잡스럽고 페이스북보다는 좀 더 기능이 깔끔해서 가입하고 게시글 몇 개만 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때 재미를 붙였다면 좀 더 나았을까? 그 사이에 인스타스토리라는 기능이 생겨, 엄청난 사용자를 모으기에 이른다. 영구적으로 남아 껄끄러운 게시글 말고, 그저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스토리. 게시글로 올리기에는 너무 사소하지만, 스토리에는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된다. 일상 카톡, 보정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사진들과 영상까지. 관심받고 싶지만, 관종까지는 힘든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매혹적인 기능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갈 때마다 스토리 테러가 잦아졌고, 하루에 하나씩은 아니더라도 2~3일에 하나씩은 스토리를 올리려고 했다. 그 와중에 아닌 척 누가 내 스토리를 봤는지 체크도 하고, 답장이라도 한 번 오는 날에는 뭔가 성공했다는 이상한 안도감도 들었던 것 같다. 정작 문제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모두들 이렇게 느끼는 것에 있었다.


처음 고비는 취준생활이었다. 나는 취준 생활을 하면서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그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건너 건너 알게 된 지인이라든가, 친구들의 인스타는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나도 몇 달 전, 몇 년 전 똑같이 다녀왔던 곳이지만 현재의 나와 비교하고 있었다. 쟤는 지난번에도 해외 나가더니 또 나가네? 쟤는 무슨 협찬을 저렇게 많이 받는 거야. 데이트 코스 좋은 곳 다녀왔네 등등등


뭔가 말할 수 없는 박탈감이 들어 당시 인스타그램을 멀리했다. 그리고 최종 합격 소식을 들고 인스타스토리에 화려하게 알렸다. 짠! 나 이제 다시 인스타 열심히 할 거야. 아, 그동안 바쁘기도 했었고.. 그런데 너 요새 어떻게 살아? 나 이제 여유도 있으니까 우리 한 번 만나자!


인스타는 곧 자연스럽게 떠먹여 주는 친구들의 일상 엿보기가 되어 있었다. 비단 안부 카톡을 보내지 않아도, 좋건 나쁘건 그들은 인스타스토리에 그들의 일상 흔적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태계에서 빠지는 순간, 나는 외톨이가 된다. 친구들이 요새 어떻게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고, 친구들 역시 내가 뭘 하는지 관심이 점점 떨어진다. 그래, 그렇게 외톨이가 된다.


취업도 했겠다, 돈도 벌겠다, 안정감이 들고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을 할 때마다 내 안의 어딘가가 비뚤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나날로 쌓여갔다. 질투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거리가 멀다. 내 일상은 이렇고 A의 일상은 저렇다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질투가 미치도록 나서 심상이 배배 꼬일 정 도는 아니란 얘기다. 열등감일까? 어쩌면 그럴 수 있겠다. B의 인스타에는 언제나 새롭고 멋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데 내가 올리는 건 그저 소소하기 짝이 없는 휑한 사진뿐 들이니.


이런 식으로 남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도, 나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나쁘지 않지만, 남들의 하이라이트만 좇고 있으니 내가 한없이 작아 보였다. 어쩌면 친구들의 스토리는 저렇게 올릴 콘텐츠가 끊이지 않을까. 아무리 사소한 걸 올리는 기능이더라도, 나의 사소함과 너의 사소함은 꽤나 큰 격차가 있어 보였다.


특히나 우울 지수 높은 새벽에라도 인스타를 들어간 날이면, 이후 나의 우울함은 말을 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화풀이할 수 없고, 내가 나 자신에게 내는 우울함이라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것이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자해와 다름없었다.



언젠간 테일러 스위프트가 한 말을 본 적이 있다.

남의 하이라이트를 당신의 비하인드와 비교하지 마세요


맞는 말이다. 구태여 비교해 스스로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빠질 이유는 없다. 알지만, 못하는 게 바로 SNS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삭제해 버렸다. 비활성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언젠간 다시 내면의 여유를 찾으면 다시금 찾게 될까 봐. 계정을 삭제하지 않은 건, 구차하지만 n년간 쌓아 올렸던 나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그 자리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고, 단순히 어플만 삭제한 건 나의 구질구질함이 반영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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