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매드랜드>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2021)>를 봤다. 평단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여, 무엇이 그리 특별한 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평단에서 호평을 받는 재미없는 영화가 가끔 취향에 맞을 때가 있기에 과감하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집에서는 재미없는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영화관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 취향에 아주 맞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 것 못지 않게, 장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왜 평단의 호평을 받는 지 이해가 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꽤 참신하다는 것이다(내가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다루는 소재부터가 몹시 참신하다. 세계에서 가장 문명화된 국가의 영토 안에 존재하지만, 사회에는 편입되지 못한 채 경계에 존재하는 현대의 유목민들이라니.
이 영화가 다루는 이들은 자연인이 아니라 유목민이라는 점은 착각해서는 안 되겠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이 영화를 접했던 나는 생각보다 문명과 가까이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외곽"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경계"에 존재한다. 나도 모르게 이들이 외곽에 존재한다는 표현을 썼다가, 경계로 고치면서 문득 생각하게 됐다. 이들은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외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을.
이들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문명사회에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문명사회에서 일을 하고 번 돈을 가지고, 문명사회의 이기인 밴에서 산다. 하지만 문명사회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고정된 거처인 집 대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밴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집을 갖고, 그 집을 중심으로 한 삶에 얽매이게 된다. 일자리, 가족, 인간관계 등등에도 함께 예속된다. 반면 이 영화가 다루는 유목민들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다. 언제든 필요없는 소유물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중간중간 나온 플리마켓, 그리고 청년과 주고받는 라이터 등등이 이러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일하는 곳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 언제든 바뀐다.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자유롭게 유목민 캠프를 방문하고 떠나며,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생명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이들에게는 죽음 또한 수 많은 헤어짐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인연이 닿는다면 지금은 헤어지지만 나중에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
영화는 유목민들에 대해 묘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태도가 가장 신선했다. 문명화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유목민들을 추켜세우는 것도, 반대로 문명화된 사회가 가하는 폭력의 피해자로서 유목민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상투적인 시선들이다. 이 영화는 단지 그들이 왜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풀어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극으로서의 성격이 포함은 되어 있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인다. 형식 또한 이다지도 참신하다니.
영화의 거의 유일한 극적 가미(유목민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실제 유목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존재는 유목민들을 더 인간적인 존재로 느끼게 한다. 만약 주인공이 강인하고, 단단하기만 한 사람으로 그려졌다면 유목민들이 굉장히 평면적이고 밋밋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반면 어디서든 성실히 일자리를 구하는 모습, 완전히 엔진이 죽어버린 밴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모습, 데이비드의 농장에서 정착하지 못하고(정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나는 모습들은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유목민의 삶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번민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데이비드가 깨버린 그릇, 앨범과 옛 사진, 엠파이어 지역과 남편에 관한 이야기들 등등, 주인공이 과거에 얽매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재는 그 외에도 꽤 많았던 듯 하다. 그리고 결말은 주인공이 과거라는 예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유목민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런 주인공의 존재로 인하여 나는 이 영화가 유목민의 삶을 상투적으로 예찬하고만 있는 건 아니라고 받아들였던 듯 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들이 별로이더라도, 이 영화는 최소한 Ludovico Einaudi의 우아한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자연 다큐멘터리라고만 생각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미국 서부의 황량한 풍경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서 관람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중반부, 죽음에 관한 스왱키의 말에 불현듯 인생의 유한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숨을 죄어오다가, 마지막에 "see you down the road"라는 대사를 들을 때 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린 것이 인상적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