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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eok Jun 23. 2021

프롤로그 - 꿈이 곧 직업이고, 직업이 곧 일일까?

꿈과 직업과 일에 대해 고민하던 열여덟과 열아홉 사이

꿈, 직업, 일


이 세 단어는 다른 단어일까? 누군가에게 꿈은 곧 어떤 직업일 테고, 일이 곧 직업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이 온전히 직업으로 설명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신의 꿈이 일이나 직업이 아닌 형태일 수도 있다. 요즈음에는 꿈을 묻는 질문에 '행복하고 싶다'와 같은 답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일과 직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종종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꿈으로 내세우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꿈은 곧 일이고, 일은 곧 직업인가? 지금 우리는 이 셋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꿈, 직업, 일은 모두 같다


세 단어가 모두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새 학년이 되면 본인과 학부모 각각이 생각하는 장래희망을 쓰는 종이를 받곤 했다. 특별히 개성이 넘치는 아이가 아니었던 나는, 장래희망란에 교사나 한의사 같은 부모님이 선호하는 직업을 적었다. 책을 아주 좋아했던 시기를 지나, 비로소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후로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직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중앙일보를 열심히 읽었는데 당시 신문에는 '소프트웨어'나 'IT'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자주 접하게 되니 자연스레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의 장래희망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IT관련업'과 같은 '직업'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꿈과 일은 같을 수 있지만, 일과 직업은 같지 않다


19살 봄, 고3이 되던 해에 중앙일보에서 진행하는 학과탐방을 갔다. 서강대학교의 아트 앤 테크놀로지학과를 탐방했는데, 지금도 그때의 두근거리던 순간이 생생하다.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직업'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곧 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전까지는 막연하게 컴퓨터 공학과에 가서 삼성에 취업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아트 앤 테크놀로지 학과에서 교수님이 보여준 영상을 보며, 그동안 내가 했던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월든'을 기반으로 한 3D 영상을 보면서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일을 하면서 살면, 꼭 삼성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직업'이 아닌 나만의 '꿈'이 생긴 셈이다. 그때부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당시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은 중상위권 수준이었다. 서강대학교는 수시로도 정시로도 꿈도 못 꾸는 학교였다. 그런데도 무슨 확신이 있었는지, 담임 선생님한테 말도 없이 5개월 동안 혼자서 아텍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내신 성적이 반영되는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 수능 공부시간을 확 줄이고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여름방학 내내 만든 포트폴리오를 들고 담임 선생님께 서강대 아트 앤 테크놀로지학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니 성적에 무슨 서강대야"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웬걸 선생님은 서강대는 물론이고 당시 내 성적보다 훨씬 상위권인 학교들을 수시로 쓰자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내 포트폴리오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았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지금은 훨씬 더 많아졌지만, 그때는 고3 담임 선생님이 유일했다. 담임 선생님이 보여주신 나에 대한 믿음은 그 이후로도 많은 선택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너라면 뭐든 잘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던 선생님 덕에 입시에 대한 불안함에 휘말리지 않고 꿋꿋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서강대 아트 앤 테크놀로지 학과는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쓰라린 실패의 기억이지만 그때 만든 포트폴리오로 수능을 보지 않고도 다른 학교를 합격했으니 결과만 보면 성공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의 고3 입시는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달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지나며 '꿈'은 곧 일일 수 있고, 그 꿈과 일은 딱 정해진 '직업'으로 환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정말 큰 행운이었다.


꿈과 일에 대한 새로운 고민들


테크놀로지 아티스트의 꿈을 품고 대학에 왔고 꿈인지 일인지 모를 수많은 경계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그중 꿈과 가장 맞닿아 있던 것은 '시프리' 프로젝트였다. 음원 저작권 정책이 아티스트에 불리하다고 주장하는 Stop Dumping Music 캠페인에 동의했고, 이에 기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CD를 더 많이 들으면 좋지 않을까? 구입한 CD를 핸드폰으로도 들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CD를 사는 것의 장점과 모바일의 편리함을 결합할 수는 없을까?'와 같은 생각을 모바일 CD 플레이어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구현했다.


처음 의도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과 동기들과 함께한 덕에 프로덕트를 완성했고, 성공적으로 발표회를 마쳤다. 프로젝트의 발표회가 끝나고 나서 유달리 우울해졌던 시간이 떠오른다. 몇 년간 꿔왔던 꿈을 작게나마 이뤄낸 후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가 생각했던 게 이게 맞나? 싶은 당혹감까지 밀려들어 꽤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기, 내 삶은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던 책모임과 매주 모여서 기타를 배우고, 쳐보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는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침 꿈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마음이 헛헛하던 때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에게 큰 자극이 되어주었고, 5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마음의 일부가 되었다.


그때 처음 하게 된 '꿈'에 대한 생각은 이랬다. '꿈이 곧 직업인가? 꿈이 곧 단어인가?' 이런 질문들에 마을 공동체에서 만난 언니는 '꿈은 직업이 아니라 문장이다'라고 말했다. 무엇이 되고 싶다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라는 것. 꿈은 나의 종착지가 아니라 내가 되어가는 모습이라는 것. 한 번도 들어보지도 접해보지도 못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책모임에서는 여덟 번째 방(김미월)을 함께 읽으며 독립과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 꿈이라 말한 사람, 내 미래를 생각하며 가슴이 뛸 수 있는 것이 꿈이라 말한 사람,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꿈이라 말한 사람 등 다양한 꿈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고, 이 또한 나에겐 새로운 자극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꿈과 일, 일과 직업, 꿈과 직업을 따로 떼어내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꿈과, 일, 직업에 대한 끝없는 고민 속에 나를 완전히 내던져버리고 말았다.



(헤더 이미지 출처 : http://dream.eduasan.org/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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