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마음 이리 놔뒀다간 이내 썩어버릴까봐 <2020.05.10>
그리하여 나는 여길 왔어
나를 떠난 내 마음 따라
낯설지만 꽤 익숙해서
나는 어려져
바닷바람 괜히 안주 삼아
입을 벌려 들이켜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아
혀로 세운 기둥
내가 단단한 사람이 되면
파도는 날 좋아할까
육지에서 난 춤을 춰보네
노래를 부르네
더운 마음 이리 놔뒀다간
이내 썩어버릴까 봐
괄괄해진 나
몸을 던지네
소금물 속으로
그 다음 깨진 거품 조각 따라
몰래 발을 저을까
당신은 어때
함께 할래요
그랬음 좋겠다
마른 곳 하나 찾을 수 없는
미련하고 무모한
나와 함께 해줘요
그랬음 좋겠다
연약한 난
이제 두려움 없이
행복할 수 있어
꿈에 당신이 나올까
새벽에 달리면 4시간 반인 이곳에,
무료하고 공허하기만 한 우리 집에 당신이 가득합니다
잠을 자면 선명해질까
산책을 나갔다 오면 그마저 흐려져있을까 두렵습니다
당신은 어때
나를 맞이했던 부산 단편들 속에 지금 내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난리를 칩니다
참 많이 추웠던 기차역의 새벽에
검은 등받이 의자에 걸터앉아 우리 주말을 되뇌일 때
나는 두려움 없이 행복했습니다
봄이 오기도 전에 가을을 맞이했던 겨울밤에
나눠 먹었던 하얀 빵과
코에 닿았던 모든 숨에 귀여움이 붙었던 것과
마냥 아름답기만 했던 당신을
나는 지금 내 앞에 나열합니다
내 이 더운 마음을 썩기 전에 당신에게 주어서 참 다행입니다
바다 같은 당신에게
뭍에 끝자락에 선 내가
조금이라도 사랑스럽기만을 바라는 오늘입니다
느린 우리 행간에 짜증보다는 설렘이 앞서는 내가 우습지만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 없이 행복해서
당신을 닮을 자신이 자라나는 모양입니다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었던 당신 두 눈이 떠오릅니다
보고 싶다, 내가 보고 싶을 수 있을 만큼 보다 더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지만
그게 유쾌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려구요
알다시피 당신을 내가 참 많이 좋아하나 봅니다
웬걸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쯤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