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ren Mar 03. 2016

불새

 그럼에도 불구하고님에게 바칩니다.

  영학이(남자친구)와 함께 산 지 2년이 가까워간다. 

  오피스텔 작은 원룸에서 산다. 요리는 영학이가 한다.  외 모든 잡일들(음식물 쓰레기 비우기, 분리수거, 방닦기, 머리카락 주워담기, 페브리즈 뿌리기 등등)은 부당하게도 내가 담당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나름의 규칙으로 함께 살고 있다. 어찌됐건 아직은, 서로를 사랑하니까.


 그와 처음으로 동거를 시작한 곳은 호주 멜번이였다.

  우리는 캠핑카를 타고 호주 동부 해안을 여행했다. 그 사이 마음이 맞았던 건지, 몸이 뜨거웠던 건지(지금까지도 의문 가득하지만) 서로에게 던진 추파에 이끌려 눈과 몸과 시간을 부볐다. 

 그리고 정착한 곳이 멜번(Melbourne)이였다. 멜번은 젊고 낭만적인 도시였다.  영학이와 나는 청소 일을 시작했다. 3개월을 매일 같이 헬스장을 쓸고 닦았고, 경기가 있고 난 후면 스타디움에 나가 쓰레기를 주웠다. 더러운 것을 만지는 일이였지만, 영학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좋았다. 젊고 낭만적인 멜번같은 것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이미 내게 김영학은 공간이 되어버렸고 나는 그 속에서만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외로웠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었지만, 나는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다는 듯이 뻔뻔하고 서툴렀다.


뉴질랜드 남섬을 한 바퀴 돌 때에도 내 옆에는 영학이가 있었고, 퍼스(Perth)라는 곳으로 가 다시 워홀 생활을 시작할 때도 우리는 함께였다.  여기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들에 항상 그가 내 옆에 있었다.


 

 퍼스에서 우리는 각자의 일을 찾았다.

 영학이가 펍에서 키친핸드 일을 할 때에는 새벽 12시가 넘어 집에 오는 날이 허다했다. 김영학 몸에서 나는 땀냄새와 음식냄새와 담배냄새의 조합이란 것이 얼마나 고약했던지를 기억한다. 그래도 나는 영학이가 자꾸 기다려져 11시 반쯤부터는 바깥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거나  집주인이 현관 불을 끌 때마다 다시 불을 켜놓으면서 영학이를 기다렸다. 냄새 따위야.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영학이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가 얼른 씻고 와서 나를 안아주면 한 뼘 더 기분이 좋아다. 그런 밤날마다 나는 영학이를 꼭 안고 잠들었다. 

 물론 영학이가 미운 날엔, 다신 보고 싶지 않을만큼 밉고 미웠다. 그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불공평함을 견딜 수가 없을 때마다 나는 영학이를 괴롭혔다.  하지 않아야할 뾰족한 말들을 수시로 끄집어내어 영학이의 아무 곳(상처만 제대로 입힐 수 있다면)을 사정없이 갈겼다. 습관처럼 헤어지자, 말했다. 언젠가는 헤어질 남자라고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쉬웠다. 사람을 신뢰하는 일이 얼마나 더딜 수 있는지 혹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돈을 벌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히 해도 좋을 일이 된 후로, 영학이와 나는 다시 떠났다.

네팔을, 태국을 함께 갔다. 안나푸르나를 함께 올랐고 따오섬의 수심 30m를 함께 유영했다. 그와 함께본 것들이 참 많다.



 야간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중에 스패니쉬 댄서라는 수중 생물을 본 적 있다. 춤추는 댄서의 치마자락처럼 너풀 나풀 바닷 속에서 빨간 춤을 추는 생물이다. 나는 스패니쉬 댄서의 빨간 춤을 보면서 공기를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어두컴컴한 바다 속에서 붉은, 얇고 길쭉한 것이 팔다리도 없이 열심히 춤을 추는데, 외계인을 본 듯이 흥분됐다. 돌집을 지어 사는 니모 가족을 볼 때도, 노랗게 생겨 곧 터질 듯한 얼굴의 복어를 볼 때도 얼마나 신기해서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땅 위의 세상만이 세상이 아니였다. 바닷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무수하고 다양한 생물들을 목격하면 그런 마음이 든다. '헤엄이나 치며 살아야지.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데.' 

 김영학은 과연 크고 푸른 바다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혼자서 헤엄치는 건 재미도 덜 하고 힘도 더 들어서, 나는 가만히 생각하길, 영학이도 나랑 같이 헤엄치며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매일이 고행이였다. 나는 여러 번 울었고 영학이는 매일 감동했다.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그을린 피부의 영학이는 정말 산사람처럼 산을 탔다. 영학이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걸 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 쏘롱페디에서 하이캠프, 다시 하이캠프에서 쏘롱라를 지날 때였다. 2015년 11월 12일, 그 날의 일기에 따르면  '경사가 50도쯤은 되어보이는 가파른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극적인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문장이 '... 곧 추락할 듯한 낭떠러지 외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한 순간 패닉이 왔다.'라고 한다. 지금에서야 일기를 비웃으며 읽을 수 있지만, 그 날의 나는 세상만사가 두려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나약한 겁쟁이였고,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겁쟁이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만 울라며 화를 내던 영학이는, 그래도 울기만 하던 내가 안됐던지 내 눈물이며 콧물을 닦아주며 나를 기다렸다. 

 내 못난 모습들을 영학이는 많이도 봐야했다. 그리고 참았을 것이다. 트레킹 중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였다. 영학이의 사소한 말 한 마디, 몸짓 하나에 나는 곧 미칠 듯 예민하게 반응했다. 토라짐없이 평화롭게 지나갔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럴 바엔 각자의 길을 가자며 나는 내일 하산하겠다며 김영학을 위협하기도 했고, 그것이 효력을 다 했을 때는 이 산만 넘고 나면 나는 너랑 그만 만날거라고 한국에 가서는 한동안 연락하지 말자며 독오른 복어처럼 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함께 정상에 올랐고 나는 한국에와서도 그에게 쉬지 않고 연락했다.) 

   


  오빠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좋지는 않았다. 단지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 그와 함께 보고 느끼고 감동하고 이야기 나눴던 시간들을 떠올릴 때, 나는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행복하다. 더 바랄 게 없고 이대로 충분히 좋아서 입을 다물고 눈이 웃는다.


 이니스페일 바나나 농장에서 만나,

호주를 반바퀴 돌고,

멜번에 살았다 퍼스에 살았다,

뉴질랜드 남섬을 한 바퀴 돌고,

발리도 가보고,

네팔과 태국을 거쳐,

이제는 광주.

 광주에 정착한지 벌써 두달이 지났다.


 나는 바리스타 일을 구했고 오빠는 모밀과 초밥을 파는 곳에서 주방 일을 시작했다. 시간은 잘도 가고 다행히 월급도 꼬박꼬박 입금되어 먹고 사는데에는 지장이 없다. 

  대신 나는 불새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자주 사로잡힌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필리버스터 관련 편을 보는데, 은수미 의원의 말이 인상적이였다. 태양을 향해 나는 불새가 되어본 적이 있다고, 그것은 굉장했고, 어쩌면 불새가 되어본 일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여전히 불새라고 느꼈다.)

 태양을 향해 나는 불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태양을 향한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고, 불새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양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불새는 태양을 향해 날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것에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 때(불새가 되어), 더없이 용감하게 사랑하고 싶다(태양을 향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영학이를 만나는 동안에 내 마음을 먼저 보이는 것에 매번 머뭇거렸다. 내 마음을 그에게 온전히 내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며칠 전 침대에 누워 잠깐 얘기를 나누던 중, 영학이가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어.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에도 힘들어하는 너를 보면서, 그래, 남인 나를 신뢰한다는 게 쉽지 않을거야.' 

  지금까지 영학이가 그런 생각으로 나를 기다려준 덕분에, 나는 매번 머뭇거리면서도 그에게 어떤 마음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만나고 나서 나는 조금씩 새로운 나와도 다시 만난다. 

 

 불새가 되고 싶다는 말은  엘리샤 키스의 girl on fire을 따라 부르는 것이고, 한비야가 말한 빨간 불씨를 생각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불씨를 생각하며 나의 이야기를 이어 쓰고 싶다. 고백과 반성으로, 더 보고 느끼며, 조금씩 더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부끄럽지만, 용감하고 싶다(그럴 수 있을까). 사랑하겠다. 그를 더 잘 사랑하기 위해 애쓰듯, 내가 마주하는 접촉면들을 더 잘 들여다보고 보살피겠다.  쓰러질 때마다 이렇게 다짐하겠다.    


 내가 불새를 꿈꿀 때 내 옆의 그는 지금 무슨 꿈을 꿀까.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김영학에게 바치는 글이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