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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Mar 21. 2016

내 할머니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할머니 시신 주위를 둘러섰다.  할머니 이마와 가슴을 짚었다. 할머니께 차례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엄마,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이제.'

 막내 이모가 흐느껴운다. 담담했는데, 눈물이 터졌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그가 보고 싶을 때 더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 할머니를 만져볼 수 없다는 것이구나. 할머니 이마, 할머니 볼, 할머니 코, 할머니 입술의 감촉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얼마나 사랑스러우셨던 분인지, 내 기억 속의 우리 할머니는.

 후회한다. 할머니 곁에 오래 있어드리지 못했던 것을. 언제 오냐, 네가 보고 싶다 가영아, 하셨는데 나는 할머니를 먼저 챙기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억척스럽고 답답하기도 했다. 멋 낼 줄은 전혀 모르셨지만 멋진 것을 멋지다고 느끼셨던 분이다. 유머를 아셨다.

 할머니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을 떠올린다.

 언젠가 할머니가 내게 용돈과 함께 봉투에다 짧은 편지를 써서 보내신 적 있다. 우리 할머니는 글을 읽으실 줄은 아셨지만 쓰는 것에 서툰 분이셨다. '가영아 커서 돈 마니 벌면 할머니 용돈 좀 마니 주거라' 삐뚤삐뚤한 글자들을 힘주어 쓰셨다. 꾸밈없는 할머니의 말과 마음이 좋았다. 이미 나는 컸는데 할머니 살아계실 때 용돈 한 번을 못 드렸다.

 할머니댁에 놀러가서 밥을 먹다 기겁했던 날. 내 밥은 희고 할머니밥은 뭐가 그렇게 누런지 신기하다 싶어 할머니밥은 뭘 넣었어?한 숟갈 먹어보려는데 밥이 너무 굳고 식어 숟가락으로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속상해서 왜 이런 밥을 먹어 할머니! 하고 화를 내는데도 우리 할머니는 버리기 아깝다며 꾸역꾸역 그 밥을 드셨다. 자신을 돌보는데 왜 그렇게 인색하셨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아프고 나서도 꼭 드시고 싶으셨던 게 '인스턴트 커피'였다. 의사가 되도록 액체류를 삼가라고 해서 물도 조금씩 나눠드렸던 때에 할머니는 내게 줄곧 커피 한 잔만 도거, 하셨다. 그럼 나는 할머니 식사 다 하시고 나면 드릴게요, 할머니 오늘은 조금만 참아요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요, 하 드물게 한 잔씩 타 드렸다. 얼마나 드시고 싶으셨으면 커피를 드릴 때마다 힘없던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

 내가 어릴 적엔 할머니가 종종 우리 집에 며칠씩 와서 지내셨다. 한 번은 과외선생님께서 오셔서 수업을 하는데, 우리 할머니는 궁금한 게 어찌나 많으셨던지, 처자는 결혼은 안해요? 나이가 몇이요? 어디 살아요? 식의 질문으로 과외 선생님 얼굴을 뻘겋게 만들기도 했다. 어느 사람을 대하든 다정하셨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기억.

 할머니 집에 놀러갔다가 무슨 일인지 할머니랑 단둘이서 밤산책을 나선 적 있다. 아마 엄마가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난 날이라서 엄마를 기다리며 둘이서 걸어나 보자 했던 것 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에 하늘은 푸르게 검었고, 달도 별도 어쩌면 저렇게 예쁘게 떠 있나 싶었다.

 '할머니 이렇게 걸으니까 너무 좋다. 저기 봐봐. 달이랑 별이 엄청 가까이 있는 것 같아.'

할머니가 하늘을 올려다보셨다.  

'아름답다. 빛이난다.'

좋아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아름다운 걸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참 좋았다. 할머니와 나는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스운 질문을 하면서 할머니한테 귀염도 떨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손녀 중에 누가 제일 좋아? 가영이가 좋다, 하셨다. 눈치가 빠르셨다. 딸 중에 누가 제일 좋냐고 물으면 다 좋다, 하셨다. 그래도 삼촌이 제일 좋지? 은근슬쩍 운을 떼면 그래, 지명이가 제일 좋다!, 하셨다.  그 날 할머니와 함께 밤을 걸으며 할머니와 내가 연결되었다고 느꼈다. 아, 이 순간을 오랫동안 잊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할머니는 작년 12월 말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왼쪽 숨뇌에 문제가 생겨서 오른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셨다. 거동이 힘들었고 말씀도 어눌하셨다. 소변줄을 달고 기저귀를 차야했다.

 나는 할머니 곁에서 며칠 밤을 지냈다. 손녀에게 소변보러가자는 말이 뭐 그리 어려우셨는지, 소변줄을 달기 전에는,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우는 새 혼자 움직이시다 넘어지신 적이 있다. 일어서질 못하니 기어가려 하셨는데 그것마저 할머니에겐 힘든 일이였다. 밤마다 잠을 설치셨다. 오른 팔다리가 굳은 탓에 마음대로 자세를 바꾸 못하셨다. 밤중에 헐떡이는 소리에 놀라깨면 할머니는 그제서야 날 좀 도와도거, 하시며 자세를 바꿔달라 부탁하셨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런 날마다 환자복은 땀에 젖어 축축했다. 말씀하는 것도 좋아하시는 분인데 병실에서는 말씀도 아끼셨고, 두 눈에 힘이 없으셨던지 할머니 눈에 힘 좀 주세요, 부탁해야 번쩍, 떠주셨다. '할머니 혓바닥도 깨끗이 닦아야 해요. 몇 번 더 닦아주세요. 할머니 다리 조금만 더 올려보세요. 여기까지만 올려보세요. 할머니 이거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지 나아요. 조금 더 드셔야해요. 할머니 표정이 너무 굳었어요. 한 번 웃어주세요. 얼른요. ' 내가 부탁할 때마다 우리 할머니는 짜증 한 번 안내고 내 말을 다 따라주셨다. 몸이 아픈 탓에 예민하셨을 수도 있는데, 우리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마음 결이 고왔을까. 할머니는 내게 고마움을 자주 표하셨다.

 할머니 병실을 떠날 때, 할머니가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내가 가지 않았으면 했는지, 다 알면서 나는 '할머니 또 올게요' 하고서, 다시 가지 않았으면서, 할머니와 헤어졌다. 부끄럽다 내 자신이.

 

   

 할머니가 빚어낸 분위기 아래서 나는 자라났다.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우리 엄마나 삼촌, 이모들은 유쾌하고 기분 좋기 쉬운 사람들이다. 엄마 형제들이 언성 높여 싸우는 것은  매우 드물거나 가벼웠다(남희 이모 말에 의하면 어릴 적엔 그렇게 많이 싸웠다고 했다). 식구들이 할머니댁에 모이는 날에는 모두가 즐거웠다. 웃고 웃었다.

 나의 밝음, 나의 호들갑스러움, 나의 따뜻함(따뜻함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가정할 때)은 할머니로부터 파생된 거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할머니는 계신 듯 안 계신 듯 배경처럼 나의 일부분을 빚었다.

 화장된 할머니 위로 한 움큼의 흙을 흩뿌리며 말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나는 할머니가 내 할머니라서 너무나 감사하다. 덕분에 지금의 이런 나로서 살아볼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삼촌은 자식으로서 할머니께 너무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한다. 나는 손녀로서 할머니께 너무 큰 은혜를 입었다. 삼촌은 내게 할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삶을 살자고 말한다. 나는 할머니에게 부끄러운 손녀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나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것이 너무 죄스럽다.


 할머니, 못생긴 우리 할머니,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정말 미안한 우리 할머니, 감사한 내 할머니.

자식들이 다 모였을 때 눈 감고 싶다고 하셨는데, 할머니 소원대로 이모들 삼촌, 엄마가 다 모여 할머니 맥박이 사그라드는 걸 지켜봤대요. 날씨도 너무너무 좋았고요. 3일 내내 화창하고 따뜻했네요. 우리 엄마는 딸기를 먹는데 할머니 생각이 나서 먹질 못했대요(할머니가 병원에서 밥 대신 딸기를 찾았다면서요).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가장 효심 부족한 딸이였는데, 저한테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가 더 좋다고 말해놓고서는 이제와서 착한 딸인 척 해요. 이모들은 할머니 살아계실 때도 그렇게 착한 딸이였잖아요. 매번 감동해요. 할머니를 사랑하는, 그리워하는 이모들 마음을 저도 느끼거든요. 삼촌은 걱정 마세요. 할머니도 아시겠지만 우리 삼촌 잘난 것 없어도 멋진 사람이잖아요. 저는 우리 엄마 자식이기도 하지만, 삼촌 자식이기도 해요. 삼촌도 지금까지 저를 키워주셨으니까요. 그러니까 자식도 못봤다느니, 그런 걱정 더는 마시라고요. 인생의 동반자라고까지 칭하는 여자친구도 있는 걸 보면, 결혼은 안하더라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할머니, 할머니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습니다. 다른 건 바라지 않아요. 지금 제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이 마음이 변하지 않은 채로 오래도록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어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가영이 왔나, 할머니의 그 말투와 목소리를 제가 잊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할머니, 우리 가족들이 여럿이라 다행이에요. 누군가 혹여 오만하게 할머니를 져버리려할 때, 그러지 말자고 해줄 수 있는 나머지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우리 가족들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어요.


할머니

편히 가세요.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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