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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pr 05. 2016

분노를 뒤편에 달고,

 카페 마감을 끝내면 밤 12시다. 마감 1시간 전쯤, 영학이가 내가 일하는 카페로 마중을 온다. 그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내 보기엔 폰을 읽는다).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간다.

 우리 집과 카페는 빠른 걸음으로 5분 거리다. 그리고 그 사이의 풍경이랄 것은 하나의 다른 별 같다. 그 풍경들 속에서 나는 내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롯데마트를 지나서 우리 오피스텔 입구에 들어서기까지 온갖 술집들이 온갖 간판을 달고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술집을 채우고도 모자라 길거리를 가득 메운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나같이 빛이 난다. 인형같은 얼굴들과 그들의 향수 냄새, 담배 냄새, 술 냄새, 고기 냄새. 팬티를 입지 않는다는 가슴 빵빵한 언니가 복사된 전단지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머리를 때리는 클럽 음악과 뒤섞여 알 수 없는 음들이 끊임없이 귀를 뚫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영학이가 말한다.

'저 거리를 지나올 때마다 내가 아주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 다들 너무 잘났고 나는 기껏해야 이렇게 츄리닝 차림이니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난 내가 차라리 못난 모습인 게 좋아.'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시대에서 영학이와 나는 상당히 뒤떨어진, 순위의 저 아래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의 경쟁력이 있는지 따져물었을 때도 어디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대구에 갔다.

아빠는 앞으로의 내 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곧장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1등이 되지 않으면 안돼, 네가 뭐라도 되긴 되야지,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아직 몰라서 그래, 이제 방황은 그만 해라, 짓밟히지 않으려면 어디서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한다 가영아, 등등등.' 일장 연설을 언제나처럼 하셨다. 내 대답이 필요할까 싶어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럼 자본주의에서 살지 말지 뭐, 아빠는 아빠 배 채우는 것 밖에 관심가질 줄 모르지? 아빠가 안 밟히면 그만이지? 그게 얼마나 야만적인 건지 인식할 줄도 모르지?' 대꾸하고 말았다. 똥꼬가 참을 수 없게 간지러워서였다. 의미없는 고성들이 오가다 아빠는 나를 빨갱이라고 칭하며 담배를 물러 베란다에 나갔다. 그런 썩어빠진 생각으로 살 것 같으면 앞으로 집에 오지 마라. '네.' 나는 인사 없이 집을 나왔다. 


 '호주 갔다와서 너한테 남은 게 뭐야.' 오랜만에 본 친구는 물었다. 친구가 진짜 궁금해서 물은 걸 안다. 그렇지만 진짜 뭐가 남아야 되는 건가? 뭐를 위해 뭐가 남아야 되는 거지? 뭐가 남았다고 내가 말할 수 있어야 하나? 답답했다. 

 벚꽃 구경을 마치고 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신다. 대화가 이어졌고, 친구는 얼마 전 서울에 다녀온 것에 대해 말했다. 미술관을 찾아가기 위해 한남동에 갔다고 했다. 그 곳에서 더 힐이라는 아파트를 보게 되었는데, 와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 빈부격차란 걸 절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도 언젠가 그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 언니가 살게 되었을 때 느끼는 특별함 때문이야? 그래서 언니도 거기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까? 특별한 곳에 사는 우월감?'

'우월감, 일 수도 있겠다.'

'언니 나는 그런 우월감 좀 같잖다.'


 친구에게는 집이라는 자기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단지 컸던 것일 수도 있고 나 또한 내 배를 채우는 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내 집을 가지는 일이 막상 살다보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불쾌함을 느낀다. 부를 축적해가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부를 기하급수적으로 증식시키는 것에 대하여, 그들이 자본을 착취하는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고 화를 터트리는 대신, 노력하는 우리들에 대하여. 

 국가를 움켜잡고 사회를 주무르는 권력들이 권력없는 것들은 위도 쳐다보지 못하게, 서로가 옆만 보며 싸우는 무의미한 각축전을 더욱 더 조장할 때, 나와 너는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꽤 멋진 대학에 가서 꽤 멋진 대기업을 다니거나 공무원쯤 하면서, 나와 걸맞는 짝을 찾아 꽤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면, 세상에 태어나 해야하는 임무를 얼마쯤 이룬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잘난 사람이 되어 내 친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원칙인 것처럼.

 

 '인식하지 않는 것이 죄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되새긴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쓸모있을 것인가? 나만 짓밟히지 않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찌되도 좋은가? 우월한 집에 살 때 나는 우월한 인간이 될  수 있나?

 삐까뻔쩍한 옷과 차와 집을 입는다고 하여 우리는 우월해서도 쓸모있어져서도 안되는 존재들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소유와 경험을 너머, 무엇을 느끼고 인식하며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있고, 나는 (학교가 아닌, 기업이 아닌, 국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쓸모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어려울까? 어렵다고 포기해야하는 걸까?). 

 내가 죽는 순간을 자주 상상한다. 내가 죽는 순간, 나는 나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하고 만족하며 눈 감을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인간이라면 더 빨리 죽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죽는 순간, 내게 조금 덜 부끄러웠으면 좋겠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더 가지기 위하여 나 아닌 사람을 착취하는 것, 나만 잘 사는 것, 나 아닌 사람은 어찌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 잘못된 것에 편승하여 기생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또한 내가 머리로 인식한 것을 몸도 감당했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뭔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이 전부다. 

  

 벚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영학이랑 운천 저수지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저수지 주위로 흰 벚꽃, 분홍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이 산책로로 딱이다. 저녁에는 주변에서 닭꼬치도 팔고 바베큐도 굽던데.

 못난이 둘이서 사부작 걸어야겠다.

분노를 뒤편에 달고, 그렇지만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스티븐 킹) 

좋은 하루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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