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제 잠시 멈춰도 괜찮아
밤새 내린 비와 함께 봄의 대지는 다시 깨어나 자신을 피울 아침을 기다린다. 가볍게 느낄만한 보슬비와 코끝을 흔드는 새벽 공기는 생각까지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고요와 명상을 준다. 그 절제된 새벽 시간에 나는 말없이 집을 나서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다 넘겨버리려고 그분을 찾는다. 다시 돌아서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우리의 봄날 오늘!!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고뇌하고 번민하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몴이 각기 다른 아픔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 아픔의 차이를 명쾌하게 말할 수 있을까…어떤 이들이 더 아프고, 덜 아프고는 정답을 내릴 수가 없다. 다만, 스스로의 방법으로 치유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힘을 기르는 수밖에…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육체적인 건강이나, 정신적인 건강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감지하였다면 늦었으나 늦지 않았고, 빨리 감지했으나 가볍게 소홀해지는 교만이 자리 잡는다. 스스로 “아직은 이 정도쯤이야”라고… 그러다가 결코 방관할 수 없는 자신에 얽힌 것들을 놓기도 전에 우리는 절망이라 명명하며 낙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픔에 대해서는 누구나 익숙하지가 않다.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배고픔의 본능적인 역사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체 우리 곁에 자리 잡고, 필요로 한다. 필요하다고 아우성치며 내 몸에서 원한다는데 무엇을 못주랴~~ 하지만 배고픔을 빠른 시간에 채울 수 있는 먹거리로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렇다고 밥, 김치, 반찬 등은 헛헛한 배고픔을 딱히 채워줄 수는 있지만 암만해도 우리의 생각은 좀 더 차원이 다른 배고픔의 따른 또 다른 이기심이 죽지 않은 듯싶다. 그러므로 좀 더 심플하고, 좀 더 특별하고, 좀 더 위로가 되는… 이쯤 되면 배고픔에 허겁지겁 채움보다는 위로의 밥상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위로가 될 수 있는 먹거리 중에서도 “달걀’이라는 친숙한 어감에 대해서 따져보기로 한다. 어쩌면 유년시절 때부터 주욱 그렇게 우리와 함께 성장한 계란은 말이 필요치가 않다. 완전식품이라는 왕관을 쓰고도 조용히 한 발짝 물러 나듯이 자리 잡고는 언제든 손을 내민다면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마치 사람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그러하듯 새로운 것보다는 편안함이… 설렘보다는 친숙함이… 늘 손 내밀면 근사하게 잡아 끄는 힘이 약할지라도 최소한 내가 필요로 할 때 옆에 있다는 든든함이 있는 살갑고, 따뜻한 존재다.
노른자 힌자를 잘 섞은 뒤 새우젓으로 간하여 만든 계란찜.
사각 팬을 달군뒤 은은한 불로 얇게 말아가며 두툼하게 말은 계란말이.
버터 한 조각 치~~ 익하고 떨군 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스크램블.
시간을 많이 요하지만 그 먹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상징인 수란.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기를 보충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을 충족해주는 구운 계란.
삶은 계란을 으께어서 삶은 감자와 마요네즈를 섞는 샐러드.
그리고 아직도 열거할 수밖에 없는 편안함과 느슨함, 친숙함이 주는 계란의 스토리는 끝이 없다.
밥도 싫다!
라면은 건강 때문에 꺼려진다!
하지만 무언가는 먹어야겠다!
또한 지금 당장 무언가로 헛헛한 배고픔을 채워야겠다! 는 누군가들을 위해서는 바로 냉장고로 달려가서 일단 계란의 숫자를 파악한 뒤, 그 양에 따른 결정을 해보자. 계란이 네다섯 개가 있다면 스크램블처럼 스팸을 잘게 썰고, 팽이버섯 넣고, 간간하게 간 맞춤을 위한 베이컨까지 넣어서 폼나지는 않지만 라이스가 빠진 오믈렛을 만들어보자. 부드럽게 퍼지는 버터향과 편안함이 주는 신뢰를 먹고, 또다시 꺾인 무릎 세워보는 것을 어떨까. 그리고 이제 잠시 멈춰서 느슨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지…그리고는 이제 ,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라고 토닥여 주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