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진로지도 1
계절마다 몰아치는 각종 청구서와 비용들에 정신이 없다. 봄 학기만 신학기 비용이 드는 줄 알았더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며, 신발, 학용품 등 아이를 키우면서 이것저것 제법 필요한 것들이 많다. 아끼면 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아끼는 것도 쉽지 않고, 필요한 것을 아예 사지 않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아이는 모처럼 다니고 싶은 댄스학원이 생겼다면서 보내달라고 하는데 알아보니 학원비가 만만치 않아서 고민스럽다.
이와 중에 내년 봄이 되면 전세 기간이 끝난다. 적어도 두세 달 전부터는 새로 이사 갈 집도 알아봐야 하고 이사짐 센터에 연락해서 견적을 받아야 하고 에어컨에, 불박이장 설치에(이하생략) 한도 끝도 없다. 그 모든 것보다 가장 큰 걱정은 바로 돈. 왜 나는 남들 다 한다는 신축 아파트 분양조차 받지 못해서 이 고생을 하는 걸까. 집마다 사정과 상황이 다르기 마련이고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끼면 될 텐데 자꾸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신세 한탄하는 소리를 하게 된다.
이렇게 돈에 치이고, 또 아이를 낳고 나서 커리어가 안정적인 경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니 엄마인 나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게 된다. 아... 나도 공부를 좀더 열심히 할 걸...
내가 만일..
더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갔더라면,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을 했더라면, 전문직을 얻었더라면...
지금의 이 모든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지 않고 지금보다는 나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끊임없는 만약에(if 가정법: 현재와 반대되는 불가능한 가정이나 상상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 문장이 내 마음속에 맴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속에, 그리고 변변한 수입도 직함도 없다는 경력 단절에 대한 자괴감에 빠질 때면 지난 나의 과거와 학창 시절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더 자주 밀려오게 된다. 그러면서 결심하게 된다. 내 아이는 나와 다른 삶을 살게 해야지! 엄마가 더 강하게 혹은 자주 그 마음을 먹게 될수록 아이의 삶에 대한 엄마의 개입은 더 커진다. 나의 자식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해야지! 꼭 이렇다 할 전문직을 얻어서 보란 듯이 여유롭고 돈 걱정 없으면서 인정받으면서 살게 해야지!
이런 생각이 들수록 엄마의 마음은 조급해진다.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다려줄 여유 따위는 없다. 당장 오늘 해야 할 학습 분량과 학원의 레벨 테스트, 성적 결과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오롯이 결정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엄마의 후회와 자책감, 아이의 미래를 엄마가 먼저 준비해 주려는 조급함이 앞설 때 자녀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세워가기는 힘들다. 아이의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살피면서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개입을 사려 깊게 해 줄 여유와 힘이 부족해진다. 내가 후회하고 있는 그 지점과 해결 방안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닐 수 있음에도.
아이를 위해서라고 했던 엄마의 열심이 아이에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의 학습을 지도할 때에도지나친 조급함, 결과 중심적 태도, 비교 의식 등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엄마의 삶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미련과 후회,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족, 과거의 성취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등의 찌꺼기가 마음속 저편에 남아있어 그러한 것들이 아이를 양육하고 아이의 진로를 지도할 때 오히려 부정적인 개입을 하게 되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건강하게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살피기 위해서는 엄마의 마음에 있는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포장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안되더라도 최소한의 인식은 해야 한다. 그게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으니까. 자녀와 나는 다른 인생이며, 자녀는 나와는 다른 가능성과 개성을 지닌 또 다른 존재라는 점 말이다. 이것이 자녀의 진로와 특성을 파악하고 가장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첫 출발점이다. 엄마가 바라보는 자신이, 삶이, 시선이 건강하고 바를 때 아이를 바르게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아직 미숙한 아이의 학업과 자기관리를 보다 철저히 관리해 주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설령 엄마의 욕심이나 지난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의한 것일지라도 이 모든 엄마의 욕심과 극성이 결국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엄마로서 아이를 잘 지도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준점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고 상대적이라서 누군가가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그 기준점은 엄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이 불안한가? 이 길(학원을 보내는 것을 비롯한 모든 사교육들, 수입 대비 과다한 교육 지출비 등)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불안감 때문에 지불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자녀 교육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그 가치에 따라 내 에너지와 자산을 배분하여 나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가?
불안하고 조급해서 다양한 교육정보에 대한 양이 내 아이의 성향과 대화, 소통, 관찰의 시간보다 더 크다면 잠깐 모두 멈추고 엄마의 내면을 보다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돈과 시간, 에너지가 잘못 쓰이고 있다면 너무 안타깝고 아까우니 말이다.
반대로,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와 상관없이 자녀 양육에 대한 내 마음에 굳건한 믿음과 신뢰가 있는가? 교육 철학이 있고 점수와 상관없이 내가 가진 큰 그림과 방향성이 있는가? 남들이 뭐라해도 굳건한 나만이 아는 아이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런 경우는 교육의 초점이 자녀에게 맞추어진다.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태인지, 큰 방향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살펴보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첫째, 아이의 진로 지도의 시작은 엄마의 마음과 욕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존중에서 시작된다. 이 과정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아이와의 소통이 잘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녀와의 친밀한 관계유지와 소통을 위해 많은 관심과 시간을 꼭 기울이자.
둘째, 엄마의 내면을 건강하게 살피고 인식하여 엄마의 미해결된 욕구와 부정적인 자책감이 아이의 진로 결정에 흘러가지 않도록 늘 주의하자. 뻔한 이야기 같지만 현재의 삶에 대한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자. 지금 내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발견하고 인식할 때 깜짝 놀라게 된다. 또한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엄마라고 토닥여주며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자. 이렇게 고민하는 엄마가 얼마나 된다고. 이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얼마나 열정적인 엄마인가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셋째, 남이 정해주는 진로의 방향이 아니라 내 아이와 가장 적합할 진로의사결정을 내릴 힘과 기준을 내가 먼저 찾아가자. 책이든, 교육이든, 선배맘의 만남이든 간에. 계속 찾아보고 노력하고 정보를 모아보자.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을 보다 빠르게 가기 위함이 아닌, 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fit) 길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 아이가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모든 엄마들의 진정한 속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