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엄마의 진로지도 2

by 수아

" 나는 우리 소망이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공부를 하면 좋겠어. 좀 더 크고 넓은 세상에서 언어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글로벌한 인재로 키우고 싶어. 우리 회사에서 스탠포드 나온 직원이 있는데 확실히 달라."


(나의 속마음: 유학?! 아이고... 팔자 좋은 소리 한다. 지금 들어가는 기본적인 교육비만 해도 얼마인데.. 국제학교를 보내야 유학을 가든가 말든가 하지. 우리 형편에 무슨. 스탠포드 직원은 집안에 여유가 좀 있었겠지.)



" 우리나라는 너무 학벌 위주의 사회야. 나는 우리 소망이가 공부는 못하더라도 꼭 창업을 했으면 좋겠어. 앞으로의 시대는 창업의 시대야. 더 이상 취업에 연연하는 인재는 필요 없어. 젊었을 때 꼭 창업을 경험해 보았으면 해."


(나의 속마음: 창업?! 아이고.. 창업 같은 소리 한다. 지금 구구단도 안 되는 애한테 무슨 창업? 창업은 아무나 하나. 검은 티셔츠를 여러 장 사더니 스티브잡스 같은 환상이 있는 건가? 여기가 무슨 실리콘 밸리인 줄 아나.그럴 시간에 애 구구단이랑 한자공부 좀 봐줄 것이지.)



" 난 우리 소망이가 악기 하나, 운동 하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꼭 배웠으면 좋겠어. 평생에 정말 큰 자산이 될 거야. 그깟 공부 좀 덜하더라도 예체능은 꼭 끝까지 시키도록 하자. "


(나의 속마음: 악기? 운동?! 아이고... 지금도 달랑 학원 두 개만 다니는 초등학생인데도 저렇게 바쁘고 힘들어하는데.. 고학년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업에, 수행평가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텐데... 한가한 소리 한다. 저렇게 이상적이어서야 원..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겠구나)



기업에서 인재들을 육성하고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바깥세상(?)에서 변화하는 사회와 인재들을 보고 내게 이런 말들을 자주 해 준다. 베스트셀러의 책에서, 혹은 엄청나게 유명한 일타 강사나 명문대 교수님이 말씀하셨다면 내가 더 귀를 기울였으려나. 어쨌든 지금 봐도 틀린 말이 하나 없는 남편의 말이지만 아이의 수학과제 문제집을 채점하다가 구구단도 아직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던 내겐 너무 멀리 느껴지는 이상적인 말들이다.


우리 집뿐 아니라 많은 가정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지 않을까 싶다. 바깥세상과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성장을 보고 있는 아빠의 눈에는 자녀를 향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을 형성할 가능성이 더 높다. 반면, 엄마는 자녀와 바로 지금 해야 할 여러 현실을 가까이서 마주하다 보니, 지금 눈에 보이는 그 문제들이 더 크고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가정에서 아이의 일상생활과 학업, 사교육과 학교 생활, 교과와 예체능 관리 등은 한국에서는 대부분 엄마의 몫이지 않은가.


당면한 아이의 현실적인 학교생활, 한국의 치열한 입시제도와 경쟁, 주변 학부모들의 사교육 정보들을 주로 듣던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아빠의 조언이 들리지 않다. 오히려 한가한 소리처럼 들린다. 아무리 AI가 어쩌니, 코스피가 저쩌니 해도 엄마들에게는 사교육과 컨설팅, 선행을 잘 조합해서 수능과 내신을 잘 신경 써서 SKY나 의대에 가는 것이 여전히 자녀에게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부모 세대의 커리어는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에서의 모범생- 입시의 성공으로 명문대 진학(혹은 전문직 전공)-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공무원 시험의 합격과 같이 직선형 커리어 개발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특별하게 재능이 있지 않거나 문제가 없다면 좋은 성적과 학벌이 곧 향후 좋은 직업을 보장해 주었다. 따라서 '좋은 성적을 얻어 입시에 성공하고 대학에 가는 것 = 좋은 직장을 얻는 것'과 같은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사회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일단, 기업은 더 이상 대규모의 공개채용을 하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으며, 평준화된 대규모의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현장에서는 신입보다는 경력직이, 과학 기술 및 인공지능의 필요성 확대로 문과보다는 이과형 인재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실정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사회적 현상과 과학 기술의 변화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부모로서 아이들의 진로를 지도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부모 세대의 과거 진로 및 취업의 성공경험이 현세대의 아이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는 원칙들은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게 대두되는 가치들이 있다. 사고력, 창의적, 의사소통능력, 협동심 등의 인간 고유의 고차원적이고 개별적인 능력들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비록 부모가 미래 사회나 과학기술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거시적인 시대적 흐름과 변화를 예상하고 큰 방향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 자녀의 교육의 방향이 무엇을 향해 어디로 흘러가는 지를 알고, 현시점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종류와 진도, 레벨 테스트와 학교 단원 평가 점수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아이가 학업을 통해 쌓아 가는 능력과 성품이 어떤 전문적인 능력들을 계발해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부모도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현상과 특징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의 변화와 기술, 정치, 경제의 뉴스들이 곧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이며 일자리(기회)이기 때문에.


아빠가 보는 장기적이고 더 넓은 시야도 필요하고, 엄마가 아이와 마주하고 있는 매일의 당면한 일상의 과업들도 중요하다. 아이의 적성과 흥미, 가치, 특성을 잘관찰해 보고 서로의 입장을 보완하고 균형점을 찾는 것은 각 가정의 몫인 듯싶다. 각 가정의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자녀를 가장 잘 알 테니 말이다.


자녀의 진로 계획을 세우기 위한 장기적 & 단기적인 안목을 촘촘하게 잘 조율해 갈 때 우리 아이에게 가장 유익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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