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독서지도
그 무엇보다도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나는 부모로서 물려줄 수 있는 대단한 재산도, 인맥도, 권력도 없지만 책 속에는 이 모든 것이 있지 않은가?
이 아이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분명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두껍고 어려워 보인다고 혹은 지루해 보인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는 보물들을 발견하고 누리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엄마로서 내가 바로 이 한 가지, 책의 재미를 알고 붙잡고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이런 거창한 나의 포부와 마음과는 달리 현실에서 그 과정은 지루하고 귀찮고 더뎠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정확한 수치와 결과물이 곧장 나오지 않는 영역이기에 외로운 싸움이기도 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책을 읽는다고 꼭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닐 텐데... 책 안 읽고도 성공한 사람 많더라. 지금 학년에 영어, 수학에 좀 더 포커싱해야 하지 않나? 집에 있는 책도 잘만 읽더니만 왜 굳이 이러고 있나.. 짧은 도서관에서의 반납과 대여 과정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오고 간다.
특히나 아이의 독서를 책 그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고 엄마의 욕심(?)이 더해지면 꼭 삐그덕 거리게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국어에 도움이 되겠지? 배경지식도 늘 테니까 사회, 과학, 역사 공부할 때도 당연히 도움이 될 거야. 문해력이 대세이니 글쓰기나 문제 이해력에서도 전 과목에 도움이 되리라.
이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아이가 책을 열심히 읽으면 엄마의 기대는 날로 날로 더 커지면서 설레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가 현재 읽고 있는 책 보다 더 어려운 책을 어느새 슬그머니 내밀게 된다.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책들, 학습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은 더 빛나고 멋지게 보이고 단순한 흥미나 만화책들은 공공의 적(?)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읽기를 강요하는 엄마와 자기가 편하고 좋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아이와의 갈등은 시작된다.
독서가 분명 학습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왜 안 그러겠는가? 공부란 결국 글로 하는 것이고, 글을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핵심인데. 또한 위에서 언급하듯, 독서를 통해 얻은 정보들이 배경지식이 되고 학습의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누구든지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학교 내 학습 성적의 향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더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학습의 내용을 공부하고 숙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책을 많이 읽지 않더라도 해당 교과의 내용만이라도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당연히 그 학기의 해당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얻게 된다.
잉? 그럼 독서가 어쩌면 공부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아니면 굉장히 더딜 수도 있다는 것인가? 갑자기 그동안 책을 앞세워 학습의 성과를 내심 바라왔던 엄마의 기대가 와르르 깨질 때의 실망감이란. 때로는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버리고 편견을 바로 잡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독서의 영역은 순전히 독자(아이)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독자가 그 책을 기꺼이 즐거워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껴야 계속 계속 읽게 된다. 잃고 싶은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은 엄마가 해 줄 수 있겠다. 엄마인 나는 독서의 영역에 있어서도 엄마 위주의 욕심과 주도권을 내려놓고 아이를 위한 관찰자, 보조자임을 다시금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아이의 독서를 위한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잘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 아이의 일정표에서 고정 스케줄 많이 덜어내기!
아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이의 삶 속에서 여유롭게 책을 잡고 뒹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이다. 1학년 기간 동안 학원을 정하지 못해서 학교만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아이는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여유롭게 뒹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 아이들은 책을 펴서 마음껏 볼 수 있다.
# 삶의 모든 일정(event)들을 책과 연결 지어 보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몇 번의 국내외 여행의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여행지의 관련된 책을 아이 수준에 맞게 골라서 사거나 대여를 했다. (실제로 반은 성공적이었고, 반은 실패했다. 그래도 어쨌든 반은 건졌다.) 그러면 가기 전에 아이는 그 여행지에 대해 책을 통해 미리 가보았고, 실제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은 더 커졌다.
비단 여행뿐 아니라, 영화나 뮤지컬 등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주제와 콘텐츠들을 책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면 그 열정이 사그라들기 전에 관련된 책을 얼른 내밀었다.
# 기.승.전. 서점(도서관)!
마땅한 스케줄이 없을 때, 그러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아이와 함께 나는 서점에 간다. 그리고 어딘가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갔을 때도 꼭 마지막 코스를 서점으로 잡곤 한다. 따뜻한 조명과 정돈된 책들, 공간에서 풍기는 새책 냄새는 잘 왔다는 환영 인사 같은 느낌마저 든다. 아이는 마음껏 자기가 보고 싶은 책들을 보고, 나는 그런 아이를 위해 책을 골라주기도 하고 내가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기념일도 아니지만 인심 쓰듯 평소에 사주고 싶었던 책들을 이유 없이 선물하기도 한다. 뛸 듯이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아이와 실험 중(?)인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나의 바람과 열정은 여전하다. 다른 모든 학습의 영역을 포기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붙들고 싶은 한 가지이다.
인생에서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 자신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갔으면.
힘들고 혼란스러울때, 유혹에 빠질 때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줄 '책'을 만났으면.
수 많은 선택지 속에서 지혜롭고 다정한 상담자인 '책'을 얻었으면.
마지막으로 지금도 아이를 위해 큰 가방을 짊어지고 홀로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의 책을 찾고 무겁게 지고 오는 엄마들의 수고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엄마의 이 모든 노력들이 얼마나 고마운 수고였는지를 알겠지요?
몰라줘도 어쩔 수는 없지만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