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의 의사소통(feat. 아티스트 웨이)

by 수아

내게 유난히 잘해주는 같은 동네 언니가 있었다. 요리와 살림, 재테크, 자녀교육에 있어서 똑소리 나게 잘하는 언니여서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잘 해내는 언니의 모습이 닮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돼서 너무 힘들고 버거울 때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고 신경을 써 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언니를 만나고 나서 집에 오면 마치 직장에서 어려운 상사를 만나고 집에 퇴근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언니와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긴장도 되고 만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고 섬겨주는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이 어려울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정말 고마운 사람이지만 만났을 때 대화의 대부분은 "~ 해라."라는 조언과 정보탐색, 나와 타인에 대한 판단과 비난 등이 대다수였다. 대화하는 시간들이 내게는 마치 혼나는 느낌이었다. 상호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언니의 일방적인 충고와 정보 제공이 주를 이루었고 내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는 더 어려웠다. 언니가 만나자는 연락을 하면 반갑고 좋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생기는 가장 큰 실수는 내 경험과 생각이 맞다고 여기는 태도와 말투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수용하는데 제일 방해가 되는 요소는 '내가 맞다'라는 생각인 것 같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주의하는 부분이 상대방이 어리거나 혹은 나보다 경험이 부족해 보인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맞다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다.


청하지 않은 충고만큼 대화를
빠르게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
부탁하지 않은 가르침에는 오만함이 숨어있다.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하다. 잘 듣는 일은
오만함이 아닌 존중을 토대로 한다.
청하지 않은 충고는 상대의 귀를 닫아버린다. 이건 폭력의 일종이다.
(- 아티스트 웨이 책 중에서 - )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를 먼저 낳았고 아이도 셋이나 키우는 아는 엄마가 있다. 외동아이를 키우는 나에 비해 여자, 남자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다양한 육아경험을 해본 터라 늘 많은 정보와 조언을 준다. 처음에는 나에게 마음과 신경을 써 주는 것이 마냥 고맙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육아용품이나 교육 등에 대해 내가 알아보거나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 이거 내가 해 봤는데 다 쓸모없어. 결국 엄마가 붙들고 해야 돼. 괜히 쓸데없이 사지 마!" 기껏 열심히 알아보던 나는 머쓱해져서 속으로 그런가 하며 마음을 접었다. 그래 저 엄마가 나보다 경험이 많을 테니 그 말이 맞겠지. 처음에는 영어 교재로 시작된 잔소리가 점점 확대돼서 내가 아이를 위해 고르고 선택하는 모든 영역(책, 쇼핑, 간식까지도)까지도 간섭이 심해지면서 마음이 점점 어려워졌다. 어느 날인가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이거 내가 사고 싶은데? 내가 결정하고 싶은데? 그 집 아이에게는 안 맞았겠지만 내 아이에게는 맞을 수도 있지 않나? 설사 내 선택이 옳지 않거나 후회하더라도 지금은 해 보고 싶은데? 시도해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데?


내가 느끼기에는 이미 자기가 해 보고 싶은 모든 것을 해 보았고 더 이상의 미련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내린 결론을 강요하는 것으로만 느껴졌다. 내가 비록 그 사람보다 경험이 적어 미숙할지 몰라도 내 아이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나중에 후회를 한다 하더라도 해 보고 후회하는 것과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이지 않은가. 나에게도 시행착오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엄마의 말이 꼭 맞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는 성격도 재능도 다르고 부모도 집안 환경도 다르지 않은가?


여기서 반전은 그 집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이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면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중심과 가치관에 따라 흘려들을 것은 흘려듣고 참고할 것은 참고할 만한 거름 장치를 마음속에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 자체를 비난하지도 말고 무조건 따르지도 말고. 내 주관과 가치관에 따라 걸러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은 우리의 판단을 훨씬 더 명료하게만든다. 온전히 들음으로써
무엇에 집중하지 않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듣기란 우리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기도, 그래서 듣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더 키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 아티스트 웨이 책 중에서 - )

누군가를 1:1로 만나게 되면 나는 최대한 그 사람에게 집중한다. 핸드폰도 정말 급한 연락이 아니면 잘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1:1 만남이 길거나 횟수가 잦아지면 그것이 내겐 또 부담스러웠다.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니까.


'잘 들어주는 것(경청)'의 중요성과 그 영향력에 대해서머릿속으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솔직한 내 심정은 버거웠다. 엄청난 에너지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을 때 관계에대한 부담이 컸다. 이런 고민 중에 책 속에서 지혜로운 팁을 발견했다. 경청의 대상은 '상대방'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해당한다는 사실이 내게 큰 해방감과 위로를 주었다.


내가 가진 틀과 기준으로 들이대기보다는 좀 더 자유하게, 편안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해도 괜찮은 거였다. 나도, 상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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