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대학원 한 번 가볼까?

엄마의 가방끈

by 수아

결혼을 하고 한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당연히 생길 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정말 당황스럽고 답답했다. 일 년, 이년, 삼 년... 한 번의 유산과 함께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시술을 준비하면서 병원을 다녔지만 생명을 갖는다는 것은 내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언제 확실히 아이를 가질 수 있을 지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그렇다고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다가 관심 분야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전공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열심히 문을 두드린 결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 다시금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똑똑한 젊은 학생들을 따라가느라 힘이 들긴 했지만, 보다 넓은 시야를 보게 되었고 그래도 이전보다는 좀 더 전문성을 쌓았겠지라는 위안을 삼았다. 학벌도 그전보다는 좋은 학교를 갖게 되었으니 무언가 경쟁우위를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착각도 했다.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도중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고 한동안 이모님을 써 가며 수료까지는 했지만, 나의 역량과 의지의 부족으로 학위를 받지는 못했다.


석사과정은 정말 재미있고 신나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교육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 맡게 된 부서는 청소년, 대학, 교사팀 교육이었다. 국영수 학습 교육이 아니니 참가자 본인이 마음만 열고 참여하면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는데 교육의 효과는 매우 달랐다. 어떤 참가자는 많은 걸 얻어가고 삶의 변화의 기점이 되기도 했고, 또 다른 참가자들은 비싼 교육비만 내고 그저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엄마한테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의 경우 일부러 마음 문을 꽁꽁 닫고는 반항심에 웃지고, 말하지도, 얼굴 표정을 바꾸지도 않은 채 참여만 하다가 간 경우도 있었다. 몇 년을 살펴보다 보니 교육장 안으로 들어오기 이전 엄마와 자녀의 대화하는 분위기만 봐도 저 아이가 마음을 열고 참여하겠구나, 아니겠구나가 대충 감이 왔고 거의 대부분이 맞았다. 그럼 결국은 교육장소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교육 효과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육의 효과를 결정하는 것인가? 아이의 마음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회사의 지원을 받아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석사)을 상담심리전공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일을 하고 저녁에 강의를 들으려니 정말 졸음이 쏟아졌다. 가뜩이나 잠도 많고 체력이 약한데 PPT 틀어놓고 불까지 끄면 정말 주체할 수 없이 잠이 왔다. 그런데 신기하게 너무 재밌었다!!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나를 이해해 가는 과정들이 흥미로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역동들이 흥미로웠다. 생각해 보면 그때 가장 즐겁게 공부를 했다 싶다. 내가 평소에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원하는 과목들을 맘껏 수업을 들으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 중에는 실제로 대학 졸업 직후 대학원을 온 경우도 있지만, 그 구성원은 다양했다. 변호사, 주부, 회사원, 사업가 등등 정말 다양한 직종과 연령대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왔었다.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들이 힘들고 어렵긴 하지만 재미있다고 하셨다. 상담가로서의 직업을 택하는 것은 당시 너무나 기회비용이 크게 느껴져서 그쪽으로 업을 삼지는 않았지만 정말 매력적이고 고차원적인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담 쪽 공부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자신과 타인을 더 깊게 이해하고 다가가고 싶은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제는 다른 이야기. 힘든 형편에서도 양가 어른들 도움 없이 결혼 전후 대학원 과정을 박사까지 수료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 내심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런데 결혼 후 10년쯤 지났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일 수 있지만, 우리 상황에서 정말 꼭 필요하고 가고 싶은 집이 있었는데 늘 그런 곳은 우리 형편에서 대출을 포함해서 몇 천만 원이 부족했다. 아 딱 몇 천만 원만 더 있었더라면.. (물론 그전에 내가 더 잘 돈을 모아서 그 돈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논외로 하겠다) 매번 이사를 갈 때마다 그 몇천만 원이 아쉬웠다.


그때 요리조리 우리 집 자산의 수입과 비용을 따져보면서 처음으로 대학원에 든 등록금이 꽤 상당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아무리 회사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석사와 박사과정을 지나면서 몇 천만 원의등록금을 냈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학자금 대출로 인해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웬만한 중형차 한 대 값이었는데 나는 너무나 나이브(naive; 세상물정을 모르다, 순수하다, 천진난만하다)하게 공부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현타가 왔었다. 대학원 공부를 순전한 나의 학문적 호기심과 열정을 따라 쭈욱 간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기회비용을 좀 더 고려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특히 결혼한 여성의 경우, 임신과 출산 등의 육아주기와 대학원의 과정(석사, 박사, 수료, 논문학기, 실습 등)에 대한 고려가 좀 더 세밀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어린 자녀의 양육이 시작되면서 엄마의 역할이 대학원생의 역할보다 압도적으로 우선순위로 놓일 때, 학업을 쉬어야 하거나 중단될 위기가 있다는 점들을 미리 고려해야 했다.


양가 가정에서의 지원(아이 돌봄 및 양육, 재정적 지원)이 가능하거나, 학위 이후 직업이나 진로가 비교적 확실한 경우(자격 취득 및 특수 전문 분야), 혹은 학부와 전혀 다른 전공이나 공부가 필요한 경우에는 또 다른 케이스이겠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이후, 새롭게 취업을 하고자 하는 주부들이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대학원 진학'이다. 좀 더 학력 혹은 학벌을 업그레이드한다면 나에게 새로운 취업의 기회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리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맥락, 전공의 특성과 전망, 개인의 능력치, 주변의 지지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최선의 답이 각기 다르다.



신중하게 고려해 보고 따져보고 첫 발을 내딛길 바라는 마음에. 만약 치열한 고민 끝에 그 발을 내밀게 되었다면 최선을 다해 즐기고 경험하고 성장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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