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가 함께한 에버랜드의 추억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막 옮기고 난 후, 맞벌이로 몸과 마음이 지치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마다 졸리고 피곤해하는 아이를 일찍부터 깨워서 소리를 치면서 간신히 데리고 등원을 1등, 하원은 꼴등으로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아침에 늑장을 부리는 아이를 준비에, 내 출근 준비에 늘 시간이 촉박하고 아슬아슬해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말랐다. 아이는 밤마다 내일 엄마 회사 안 가면 안 되냐고 울었고, 남편도 일이 가장 많았던 시기라서 오롯이 독박육아를 하며 직장을 다녀야 하는 나는 피곤해서 잠들어 버리거나, 남편의 퇴근 후에는 서운함과 고된 일정으로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며 싸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께서 혹시 아이를 당분간이라도 좀 일찍 하원시키시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을 주셨다. 아이가 잘 지내기는 하지만,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마음이 무너지듯 아팠다. 그렇게 마음을 써 주시는 유치원 선생님은 감사했지만, 누구 하나 주변에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던 나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만 가던 그때, 모처럼 일이 좀 덜한 주간이 왔을 때 과감히 반차를 즉흥적으로 썼다. 기념일도 아니었고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아이를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유치원에 가서 점심 직후 아이를 하원시켰다. 매번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던 아이는 엄마가 일찍 와서 자기를 하원시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좋은데, 하원 후 에버랜드에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기뻐하고 들떠 있던 아이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정말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급작스러운 반차를 쓰고 단둘이 갔다. 그동안 비싸서 절대 안 사줬던 캐릭터 풍선도 하나 쥐어주고, 얼굴에 작고 귀여운 그림을 그려주는 페이스페인팅도 했다. 알록달록 무지개색이 가득한 솜사탕도 하나 사줬다. 세상을 모두 얻은 것 같은 얼굴을 하며 기뻐했던 아이의 모습에 내 마음도 어찌나 좋던지. 힘들고 어렵던 시절, 그렇게 우리 모녀에게 큰 기쁨과 위로를 주었던 그곳이 고맙고 좋았다.
남들 다 다니던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아이가 1학년이었던 시절, 우리는 가장 많은 추억을 쌓았다. 이사 온 지 별로 되지도 않아서 근처 학원을 잘 모르기도 했고,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바도 없어서 게으르고 철없던 엄마는 1학년 방과 후를 오직 놀기만 했었다. 결국 2학기가 되어서 내가 너무 아이를 방치하는 가 싶어 찔리는 마음에 아이도 다니고 싶어 하는 미술 학원을 하나 다니게 하긴 했다. 지나고 보니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그 시절, 나와 아이는 가장 편하고 즐겁게 이곳저곳을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알아주는 학군지도 아니고, 교통과 상업시설이 편리한 지역도 아니지만 우리 집 근방의 가장 큰 복지(?)는 에버랜드가 차로 15분 내외로 걸리는 지역이라고 엄마들끼리 종종 우스갯소리로 말을 한다. 나를 포함해, 이 동네 엄마들은 아이와 에버랜드의 연간 이용권을 끊어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거리도 가깝고, 횟수 제한도 없어서 몇 번만 가도 연간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에버랜드를 가는 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인 부담이 덜하고, 오늘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감도 없다. 줄이 짧으면 타고, 아님 말고. 날씨가 좋으면 즉흥적으로 하교 후에 아이를 태우고 에버랜드를 가고, 퇴근 후 가족끼리 산책 겸 에버랜드를 거닐기도 한다. 오전에 비가 왔다가 오후에 비가 그치면 아이들을 태우고 갈 수도 있다.(비가 오는 날은 운행을 멈추는 놀이기구와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이 많은 것은 단점이나, 대신 방문객의 수가 훨씬 적어서 놀이기구들을 많이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놀이기구도 안 타면서 에버랜드를 좋아하는 모녀!
아이랑 나는 에버랜드 가는 것을 참 좋아라 하는데, 반전은 둘 다 놀이기구를 즐겨 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둘 다 겁도 많고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둘 다 잘 못해서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잘 못 탄다. 한 번 갈 때 1개도 탈까 말까 한 수준이다. (너무 심한가?) 우리는 에버랜드에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분위기를 즐기러 간다. 어딘가 놀러 온 것 같고, 약간은 들뜨고 설레면서 사람의 기분을 업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굳이 안 사도 되는 기념품 가게에서 인형 구경을 하고 , 인형 머리띠를 하면서 팝콘통을 들고 걷는 그 기분이 좋다. 포시즌스 정원에 가서 계절마다 다른 장식과 꽃구경을 하는 것도 재미가 있고, 걷기가 힘들어서 무작정 스카이 리프트 같은 것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목적지 없이 내려가서 구경을 하기도 한다. 바람을 맞으며 큰 나무 높이에서 내려오는 리프트 기구는 언제 타더라도 시원하고 편안하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동물들을 만나거나 보게 되면 아이와 나는 정말 반가워한다. 언제나 위엄 있는 한국 호랑이, 이국적인 플라밍고의 떼 지어 있는 멋진 모습들, 다양한 뱀들과 원숭이도 우리가 좋아하는 동물들이다. 푸바오 같은 판다들은 정말 귀엽고 인기가 많은 동물인데 최근에는 줄이 너무 길어져서 잘 보러 가지 못한다.
에버랜드를 가면 아이에게 간식 찬스 1번, 기념품 찬스 1번을 준다. 비싸지 않은 범위 내에서 간식 1개를 고를 수 있고, 기념품 역시 딱 한 개만 나가기 전에 살 수 있다. 개당 5천 원을 권장하고, 만원을 넘을 경우에는 탈락이다. 아이는 아주 신중하게 자신이 정말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한 개씩만 고른다. 그 신중한 한 개의 선택을 위해서 그 한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꾹 참고 고른다. 여름에는 슬러시, 봄가을엔 팝콘과 핫도그, 사탕가게, 초코 츄러스 등 맛있는 간식들을 우리는 좋아한다. 아이는 기념품은 작은 머리띠와 말랑이, 캐릭터 열쇠고리 등을 제일 자주 골랐다. 그게 뭐라고 세상 신중하게 고른다.
# 장마철 폭우 속 에버랜드 가 보셨나요?
한 번은 아이 친구들이랑 다 같이 에버랜드를 가기로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유례없는 폭우가 내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비가 많이 왔으면 아예 가지 않았을 텐데, 금방 그칠 줄 알았던 폭우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우비에 장우산에 장화까지 신었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젖었다. 대부분의 놀이기구는 운행하기가 곤란한 상태였고, 아이들도 기념품 가게 안에서만 하염없이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왜 내가 비 오는 날 겁도 없이 에버랜드에 왔을까 후회 막심한 날이었는데, 고인 물속에 맨발 슬리퍼로 첨벙 대는 아이는 그날이 가장 재밌었다고 한다. 어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이 아이들에겐 가장 재미있는 날이 될 수도 있나 보다.
# 동화 속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반딧불 체험!
에버랜드에서 체험했던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반딧불 체험이다. 에버랜드 입장권 외에 별도로 추가 비용을 내야 해서 망설였다가 특정 시즌에만 운영하는 상품이기도 하고 도시에 사는 아이가 이런 경험을 해 보기 어려울 것 같아 신청을 했다. 결과는 대만족! 캄캄해서 걷기도 힘든 공간 안에서 초록색 빛으로 가득 찬 반듯 불이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엄마인 나도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정말 멋지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건 직접 체험해 봐야지 말로는 더 이상 설명이 안된다.
# 아이가 직접 참가한 문라이트 퍼레이드!
아이와 함께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는 밤에 진행되는 퍼레이드에 참가한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1초 컷이라 불릴 정도로 예약이 치열하다. 나 역시 한 번도 예약에 성공한 적이 없는데, 재작년에 참가가 가능했던 이유는 당일 취소표가 나왔고, 집이 가깝고 하교 이후 다른 일정이 없었던 우리는 즉흥적으로 그 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지금은 주말에만 예약이 가능하며, 취소표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이와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에버랜드 주차장에서 만세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퍼레이드 참가 당첨자는 당일 퍼레이드 시간보다 몇 시간 전에 도착해서 간단한 메이크업과 가족사진도 찍어주시고, 불빛이 들어오는 옷도 입혀 주신다. 퍼레이드 앞열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퍼레이드 역할 담당 배우들이 공연을 이끌어가고 뒤에 기차 안에 거북이, 토끼, 이솝 할아버지와 함께 기차를 타고 아이와 나(보호자 1명), 이렇게 두 명만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내성적이라고만 여겼던 아이는 굉장히 좋아하면서 마치 연예인 같은 포즈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그 모든 퍼레이드 과정을 즐겼다. 나는 웃는 표정을 짓느라 얼굴에 경련이 날 정도였고, 생각보다 긴 퍼레이드 시간이 쑥스럽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신기했던 것은 그 기차 안에서 관객들을 보면 생각보다 자세히 보여서 놀랐고, 퍼레이드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 날의 경험은 아이가 커서도 절대로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아이 학교 학부모님 중에 엄마와 자녀들이 에버랜드에 가면 늦게라도 퇴근해서 꼭 함께 하시는 아버님이 계셨다.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을 법도 한데, 매번 늦게라도 오셔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쩜 그렇게 하실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본인도 어린 시절부터 에버랜드 근처에 살아서 부모님 혹은 친구들과 자주 왔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여기를 좋아했고, 자신의 아이들도 자신과 함께 그런 좋은 추억을 쌓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온다고 하셨다.
그 아버님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커서 어린 시절을 떠 올렸을 때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따뜻하게 아이의 마음속에 있었으면.
이곳을 생각할 때마다 추억이 떠올라서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으면.
엄마와 함께 했던 이 순간들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이가 삶을 살아갈 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그토록 좋아하던 에버랜드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예전처럼 자주는 못 가게 된다. 학교 수업도 늦게 끝나고 과제의 양도 많아지면서 점점 가는 횟수가 줄어들어 아쉽다. 더 커버리기 전에, 더 바빠지기 전에. 아마도 이 시간들이 앞으로는 점점 더 적어질 것 같은 아쉬움들 때문인가 싶다. 여전히 날씨가 좋은 날이면(아니,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도) 한 번이라도 더 갈 수 있을 때 아이와 자주 다녀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