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팔아서 아이와 뮤지컬 보기

엄마의 문화생활

by 수아

아이가 1학년 때 가을 무렵, 우연히 기회가 되어 가족 모두 미국 뉴욕을 가게 되었다. 미리 생각하거나 계획했던 일도 아니었는데 갑작스레 가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기뻤다. 2주간 최대한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세계적으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만만치 않은 결심이었다. 마일리지 조합과 기타 등등의 여러 가지 묘안을 짜내어 항공비, 식비, 숙박비, 교통비, 최소한의 관광비 등을 할인쿠폰을 사용해서 엄청나게 머리를 굴리며 알아보았다. 어찌어찌하게 최대한 많은 비용이 들지 않고 여행하고 구경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끝까지 도무지 넘지 못하는 벽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비용!이었다.


그래도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왔는데 뮤지컬 한 편쯤은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이해하고 수긍이 갈 만한 생각이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평소에 뮤지컬에 커다란 관심도 열정도 없었던 남편은 봐도 좋지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태도였다. 보면 좋지만 굳이 무리해서까지 꼭 봐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앞으로 기회는 많이 있을 거라고 했다. (과연? 있을까?) 아! 어찌나 아쉽고 답답하던지. 뮤지컬 비용 말고도 이래저래 큰 비용이 들어갈 예정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을까라고 이해해 보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아이는 아직 태어나서 뮤지컬을 본 적이 없으니 봐도 좋고 안 봐도 그만이다는 상태였고. 나만 아쉬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태였다.


블로그와 카페를 찾아보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임박한 공연에 한해서는 헐값에 판매하는 표들이 있다고는 했는데,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던 나는 그 표를 영어로 찾아볼 엄두도 나지 않았고 만약 전석 매진이어서 표가 없다면 못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날짜마다 예약사항과 지인과의 약속 등이 있어서 아무 때나 표가 난다고 해서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모험을 할 여력과 용기가 없었다. 비싼 가격표에 언감생심 앞자리는 꿈도 꾸지 않지만, 너무 뒷자리여도 아이가 잘 보이려나 라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결국 로또와 같다는 당일 임박 할인 티켓은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끼리 언제 다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오겠는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뮤지컬 공연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이곳에서 한 편의 공연도 못 보고 가야 한다니 너무 슬픈 일이다.


정말 방법이 없으려나?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아껴두었던 그렇지만 막상 애를 낳고는 잘 쓰지 않게 되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한 나의 미니 명품백을 팔기로 결심했다.(솔직히 지금은 한번 더 생각해 볼걸 그랬나 싶다. 막상 없으니 너무 갖고 싶은 마음이 들고 매장 가격이 1.5배 이상은 올랐기 때문에) 중고가로 팔면, 우리 3인 가족의 뮤지컬 비용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 남는다면 여행비에 보태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남편은 다시 사주지 않을 테니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팔라고 했다. 계속 쓸건대 급한 마음에 팔지 말라고 조언했다.


평소에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인데 가끔 여행이나 경험에 있어서 과감하게 돈을 쓰는 내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있다. 특히 평생에 다시 없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면 지르는 경향(?)이 있다. 생각대로 상태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게 내놓아서 가방은 금방 팔렸다. 그 가방을 판 돈으로 무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두 개나 보았다. 아주 앞자리는 아니었고 중간 정도의 자리였다.


처음 보았던 뮤지컬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이언 킹'이었다. 솔직히 나는 결혼 전에 이 뮤지컬을 내한 공연을 했을 때 본 적이 있었다. 실감나는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노래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다. 역시나 아이는 정말 좋아했고 멋지다고 엄지 척을 해 주었다. 적당한 가격의 자리에서 보려고 하니 좌석이 약간 뒤쪽이었고 의자 배열의 경사가 정말 가파르게 되어 있어서 약간 무섭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기 마지막 날 밤에 보았던 두 번째 공연은 '알라딘'이었다. 솔직히 알라딘 공연에 대해서는 이전에 내가 들은 바도 경험해 본 바도 없었지만 엄마인 내가 디즈니를 좋아한다. 게다가 알라딘은 한국 공연을 한 적이 없어서 이곳이 아니면 평생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그 절박한 의식(?)이 작동했다. (그러나 그 다음 해 한국 국내 공연이 확정되어 진행된 바 있다. 역시 이 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했던 남편의 말이 맞는 건가 싶기도) 영어로 진행된 빠른 대사들로 알아듣지 못한 내용이 더 많았지만, 역시나 화려한 무대의 볼거리들과 지니의 열정적인 연기, 알라딘과 재스민의 사랑이야기와 영화같은 연출로 인상적인 장면들과 노래들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파란만장하게 그렇게 명품백까지 팔아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우리 세 명은 두 편의 뮤지컬을 봤다. 뿌듯했고 감동적이었다.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두 편 봤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한 개만 볼 걸 그랬나? 아님 어차피 한국서 공연도 할 거고 아이는 아직 어리니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을 텐데 내가 너무 오버했나?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여행은 끝났고 한국에 돌아온 우리는 일상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뮤지컬은 재밌고 좋았다고 의례적인 감탄을 했던 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런데 엄마인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일이 아이의 마음 속에 생겼던 걸까?


방과 후 영어 뮤지컬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싶다고 했던 아이는 다짜고짜 뮤지컬 공연 학원을 보내달라고 난리였다. 대강 알아보다가 생각보다 꽤 비싼 학원비에 비싸서 안된다고 말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는 진심이고 열정적이었다. 엄마의 노트북을 빌려서 초록색 창에 근처 뮤지컬 학원을 알아보는가 하면, 치과를 갔다가 같은 건물 위층에 뮤지컬 학원이 있는 걸 알고는 다짜고짜 나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하는 것이다. 학원이 열려있으면 방문만 해 보자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낯선 선생님께 먼저 말을 걸진 않는 아이가 그 학원을 가보자고 손을 끌었고 결국 학원 문을 열고 가서 구경을 하고 상담도 했다.


이런 상황을 남편에게 나누자, 남편은 아이가 그토록 원하니 비싼 학원비로 인해 계속은 안되고 딱 세 달 정도, 즉 한 편의 공연을 할 정도만 학원을 보내보자고 했다. 아이는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다. 매주 금요일 한 번씩 저녁마다 3시간씩의 학원 수업이 꽤 힘들 만 한데 아이는 너무나도 즐겁게 다녔다. 한 번은 나의 게으름으로 10분 정도 지각을 했는데 뒷 좌석에서 어찌나 아쉽고 서럽게 우는지 미안해서 혼났다.


그만큼 아이는 열정적이었고 마지막 학원 공연에서도 생각보다 그 이상의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공연의 주연급도 아니었지만 정말 자랑스럽고 성실하게 그 역할을 잘 감당해서 남편도 나도 놀랐다. 내 아이지만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명품백을 팔았어야 했는지 아닌지 뭐가 옳은 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둘 다 어떤 선택이든 쉽게 가질 수도 없고 포기하기엔 아까운 선택지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아쉬움과 미련이 있지만 또 다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애써 가슴 아프게 다른 한 개를 포기했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오히려 후회가 될 수도 있다. 결국은 나의 선택이고, 가치이고, 믿음인 것 같다. 한 개를 얻고 다른 한 개를 포기하는 것이다. 잠시이든 영원이든.


한 가지 알게 된 깨달음은 아이의 경험의 폭을 확장시켜 주려고 노력했던 엄마의 노력이 어떤 형태로든 아이의 삶 속에서 흥미, 재능 등 이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뮤지컬 공연을 보았던 경험들이 뮤지컬에 대한 관심과 흥미로 이어졌고, 결국 어린 나이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대 공연까지 해 냈으니 말이다.


나는 틈만 나면, 방학이든 휴일이든 내 여건과 건강, 재정,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다양하고 의미 있는 경험들을 해 주려고 노력한다.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공부 이외의 다양한 비교과 활동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관심을 가지고 아이가 잘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 모든 삶의 경험과 시도들이 언제, 어디서든 아이의 내면과 성장에 큰 자산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번 학기에도 학교에서 진행되는 방과 후 영어 뮤지컬을 신청했고, 열정과 기대와는 다르게 아직까지 한 번도 주연급 역할을 맡아본 적은 없다.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 역할을 열심히 하기 위해 대사를 외우고 노력한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못하는 그 역할을 아이는 최선을 다하고, 그 역할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 정도면 명품백 팔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멜빵바지와 체크무늬 남방, 밀짚모자를 준비해야 하니 미리 쿠팡에서 주문해 놓으라는 잔소리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