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괜히 봐서

엄마의 SNS

by 수아

아후, 드디어 끝났다. 내 이야기도, 아는 사람의 이야기도 아닌, 생판 모르는 선남선녀의 소설 같은 연애 스토리에 마음 졸이면서 한 회씩 애타게 기다리면서 보았던 드라마가 드디어 끝이 났다. 초반에 너무 재미있게 봤던 터라 기대가 컸는데 후반부에 이르면서 비로소 스토리 라인이나 전개성이 좀 약하고 황당한 느낌이 들어 실망감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주와 여주 캐릭터의 케미와 코믹, 연기가 대단해서 모처럼 정말 깊게 빠져든 드라마였다. (이쯤 되면 이 드라마의 열혈팬들은 무슨 드라마였는지 감을 잡으셨으리라 싶다.)


어쨌든 아이의 학기 말쯤에 빠졌던 이 드라마 때문에 본방을 사수하느라 밤늦게 아이가 숙제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놓쳐버렸고, 집안일과 글쓰기도 밀어둔 채 드라마에 흠뻑 빠져서 살았던 것 같다. 드라마가 방영하는 날에는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이후 시청자들의 댓글에 함께 울고 웃으며 '좋아요'를 누르며 함께 공감했다.


이해는 간다만, 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굳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다. 작년에도 다른 드라마에 빠져서 다시 헤어 나오고 다시 정상적인 일상을 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다시는 드라마를 보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하지만, 유튜브와 숏츠의 알고리즘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의 일부분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한 번의 클릭으로 관심이 가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드라마에 쉽게 빠져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알고리즘의 노예'인 것인가?




물론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웃기도 하고, 남녀 주인공의 애틋함에 빠져보면서 감정도 풍부해지고 하는 것은 좋다만.. '다시는 드라마를 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드라마가 내게 주는 뿌듯함과 기쁨보다는 후회가 더 큰가 보다. 괜스레 시간을 낭비한 것 같고, 비현실적인 외모와 조건을 가진 허구의 여주와 남주 사이에서 쓸데없는 고민과 마음을 졸이면서 작가와 PD의 기획에 말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 내 삶 속에서의 문제와 집중해야 할 일들도 많은데 왜 내가 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삶까지 걱정하고 있었나 라는 생각도 든다. 재미도 있고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가 잘못은 아닌데 왜 나는 그런 마음이 들까? 아마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통제하고 관리된 삶 속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즐기기보다는 드라마에 의해서 내 삶이 끌려다닌 것만 같아서 그게 후회가 되고 싫은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그게 내 마음의 본심임을 깨닫게 되었다.)


드라마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 휘둘리는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유튜브는 놀랄 만큼 유익하고 질 좋은 정보들이 많지만, 내가 찾아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해야 할 일들과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서 도피처로 택했을 때 나중에는 후회만 남는다. 특히나 알고리즘에 의해 유튜브와 검색창, 심지어 쇼핑 사이트까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내게 유혹을 해 오는 온라인 상황 속에서는 나 스스로 주체적로 결정하고 주도권을 내가 먼저 이끌어 가는 일이 어렵다. 그렇게 빠져들고 나서는 애꿎은 드라마만 원망하고 있는 나처럼, 나를 유혹했던 그 대상에 괜한 화풀이를 하게 된다.


지금은 열어보지도 않는 인스타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비록 게으른 탓에 내 인스타를 꾸미고 관련된 사진이나 자료를 올리며 관리하지는 못했지만, 계정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의 유명한 육아 인플루언서들을 팔로우했었다. 처음 아이를 낳고 관련된 육아 및 교육, 살림 정보,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좋은 공구들이 많아서 열심히 팔로우하면서 인스타에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어느새 나 자신을 살펴보니 내가 필요한 것 이상의 물건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내가 팔로워 하는 사람들의 설득과 시각적인 유혹에 이끌려 결국엔 인스타를 마칠 즈음에는 무언가를 구매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물건들을 공구로 샀기 때문에 상대적인 가격이 저렴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싸게 많은 물건을 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물건은 차라리 사지 않는 편이 훨씬 우리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분명 인스타는 좋은 정보와 구매 창구이며, 그를 통해 얻는 정보와 소통은 비난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나는 인스타라는 도구가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스타에 이끌려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인식이 들고 난 작년부터는 수년간의 인스타 생활을 청산하고 공구만큼 싸게 사지 못하더라도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필요한 때에 산다. 이제 인스타를 특별한 목적이 가지고 꼭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먼저 클릭해서 열어보지는 않는다.




화려하고 멋진 드라마와 인스타를 보고 난 후 내가 씁쓸함을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 내가 사는 이 현생의 삶이 초라하고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물론 가슴 따뜻하며 현재의 내 삶을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드라마와 인스타 내용도 많으니 오해는 마시길!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여주와 남주의 완벽한 외모와 성품, 역량을 비롯하여 고난이 왔지만 드라마틱한 해결과 도움, 이미 완벽하게 설정된 상황과 배경이 지금의 내 삶을 더욱 성실하고 꿋꿋이 살아가기보다는 은근한 요행과 헛된 기대를 하게 되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인스타도 마찬가지다. 잡지책에나 나올법한 세련된 인테리어와 자녀교육에도 부족함 없는 인플루언서 엄마들의 모습에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벅찬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수고와 태도를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두렵고 부러운 나머지 공구하는 물건 구매함으로써 그 모습을 따라 하려고 하지는 않았나 반성해 본다. 휴가철만 되면 화려한 해외여행, 기념일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에 멋지고 근사한 파티 등을 하는 인스타에 가득찬 모습들을 보면 지금의 평범하고 소소한 내 삶이 상대적으로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다. 그들의 배경과 나의 환경을 비교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인스타에는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아마도 시각 위주의 강조가 있는 도구이다 보니 그런가 싶다. 내가 팔로워 하는 모든 인플루언서들이 화려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님에도 수십 명의 인플루언서들 중 몇 명만 그렇게 보여도 내가 느껴지는 심정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상대적 비교로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보다 주체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당분간은 인스타를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더 유익하다고 결론을 냈다.




기껏 열심히 재미있게 잘 봐놓고는 드라마도, 인스타도, 유튜브도 험담(?)을 실컷 한 것 같아 민망하고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여전히 이것들은 나에게 조심스럽고 주의해야 할 요주의 인물처럼 보인다. 내가 분명하게 이것들과 선을 긋고 능동적으로 주도하고 활용할 수 있으면 좋은데, 나는 여전히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SNS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흥미거리들과 비슷한 알고리즘, 팔로워들의 설득에 주관 없이 넘어가 버리는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좀 더 컨트롤할 수 있고, 나의 주관에 따라 선별해서 취하고, 내 기준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면 이보다 효과적이고 유용한 도구가 없을 텐데 아직은 내가 그 수준이 되지 못해서 아직은 딱히 방법을 몰라 현재로서는 피하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어쨌든 그토록 재미있고 열렬하게 봤던 드라마도 끝났고, 인스타도 거의 일 년간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금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가져오고 싶다. 내가 내 상황과 필요에 맞게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허구의 대상과 혹은 저 멀리 나와는 다른 높은 곳에 사는 것처럼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사는 나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들이 가장 소중하고 특별하게 나만의 드라마처럼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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