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컬처쇼크

프랑스 엄마 vs 한국 엄마

by 써니윤

이론과 실제가 다른 것은 연애 뿐이 아니다. 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한내게는 육아가 딱 그렇다.


아이를 정신없이 재촉해서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나면, 마치 이미 늦은 오후라도 된 것 처럼 진이 쭉 빠지고 만다. 안 그래도 도시락에 간식에 가방에 챙길 것이 많은 아침 시간에 아이가 내 생각만큼 빠릿빠릿 움직여 주지 않으면 울화통이 터지게 된다.


아이 학교에 매일 등교와 하교를 시켜주는 것은 이 곳 폴란드 생활에서 나에게 일종의 임무이다.도시락에 간식까지 싸서 4km 정도 거리를 운전해서 이동해야 하는 아침에 아이를 내내 잔소리를 해 가며 채근해 가는 걸로 시간을 쓰고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면 '휴' 소리가 저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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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어김없이 아이와 한바탕을 하고 정신줄이 반 쯤 나간채로 학교를 나오는 길이었다. 아침부터 하도 용을 써서 벌써부터 기력이 빠져 하는 통에 그 때 막 등교하는 프랑스 엄마 E를 만났다. 이미 등교시간을 10분이상 넘긴 시간이라 그 엄마도 분명히 마음이 급할 것이라는 생각에 "어서 들어가야지," 라는 말을 건네자, 그 엄마의 반응은 이랬다.


"내가 늦은게 아니야. 얘가 늦었지."


아, 그렇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맞지. 이 학교는 내 학교가 아니지. 아이 학교구나.


그러고 나서 E의 얼굴을 보니 급한 기색이 한톨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돌도 안된 아기까지 포함하여 아이를 무려 4명을 줄줄이 데리고 학교에 오는데도 여유 만만한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동일시 하고 있었다. 아이가 늦는 것이 내가 늦는 것 마냥. 아이의 시험이 내 시험인 것 처럼 여겼던 경험들이 내 머리를 주욱 스쳐갔다. 그래서 내 계획대로 내 목표대로 아이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그리 짜증이 나고 울화통이 터졌었나보다 싶었다.


아차 싶었다. 아이를 소유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배웠거늘. 그렇게 심리학 이론서를 읽으면서 자식을 자기 것인 마냥 여기는 경우의 부작용이 나와는 당연히 상관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거늘.


아이의 행동이 느려터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아이 자체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그 아이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당위성에 아이를 끼워맞추고 있었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면서 그 기준에는 아이가 없었다. 결국 나를 위해 그리 한 것이었다.


행동을 아이 본인에게 맡길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다만 행동에 대한 결과를 일러주는 서로 독립된 인격으로 나도, 아이도 성장해 갈 수 있는 묘안은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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