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와 나: 이 순간을 사는 법

지금 이 순간

by 써니윤

감사할수록 더 가지게 되는 것,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난생처음으로 주꾸미를 샀다. 식사는 거의 마지못해 해치우듯이 '해결' 하는 나이기에 손질할 시간이 필요한 식재로는 거의 사지 않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음식 다운 음식을 해 먹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꾸미를 손질하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차라리 이 시간에 쉬든지 일을 하는 것이 생산적이 아닐까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휴가에서도 30분 단위로 시간표를 작성할 정도로 계획 강박이 있다. 오죽하면 식구들은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나를 헉헉 거리며 따라오다가 "그런데 우리 왜 쉬러 와서 뛰어다녀야 해?"라고 반문했을까.



뒤돌아 보면 행복과 충만함을 느꼈던 순간은 계획이 아니었다. 짜릿함, 설렘, 눈물이 나도록 강렬한 전율은 계획표가 아닌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나를 던져 넣었을 때였다. 잊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급히 뛰어나가던 중에 만난 부활절 종소리의 황홀함, 예정에 없던 드뷔시의 달빛을 앙코르곡으로 들었을 때의 벅참처럼 말이다. 피에타를 보고 눈물이 쏟아진 것은 그 순간 작품의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아우라에 내 모든 감정과 오감이 온전히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주꾸미를 바라보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재료가 건강과 행복한 시간으로 보답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행복한 일은 늘 예정 없이 찾아왔기에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졌다. 30분째 씻고 있는 주꾸미가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줄 것 같았다. 이제는 주꾸미를 씻고 있는 이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멋진 일을 불러올 것이니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주꾸미를 입에 넣으며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맛있다는 말과 함께 연거푸 그릇을 다시 채워 먹는 식구들을 보며 캐리비안의 휴양지 못지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쏟아지는 햇살의 따스함을 즐길지 아니면 그 햇살을 등지고 있을지는 나의 선택이다. 이 순간은 다시 재현될 수 없기에 살아갈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제와 다른 오늘 또 다른 벅찬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한계는 없다. 이 순간을 더 느끼고 감사할수록 더 끌어당겨오니까.




'말의 힘' 을 믿기에 나를 세우는 말, 더욱 풍요로워지는 말을 나눕니다. 성장하는 과정을 나눔으로 상생하며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