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나만의 생각
겨울의 한창인 2월 그것도 밤 11시가 넘어서 폴란드에 처음 도착해서 든 생각은 '아, 여긴 유배지구나.' 였다.위인전에서만 듣던 유배지가 바로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휑하다 못해 적막한 폴란드의 밤 거리를 보자마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스쳤다. 늘 가로등이 밤을 밝게 비춰주던 서울의 불 빛에 익숙했던 내 눈에 폴란드는 가로등 조차도 없는 어둠 사이로 보이는 공산주의의 잔재로 남은 낡디 낡은 건물들은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는 부럽다 하고, 누구는 팔자가 늘어졌다 말하기도 하지만, 만나는 의사마다 각기 다른 진단을 내리는 경우는 부지기수에 언어장벽(폴란드에서는 영어가 아닌 폴란드어를 씁니다) 으로 한바탕 의사소통 쇼(?)를 거치고 나면 저녁이 되면 완전히 방전 상태가 되기 일쑤이다. 시베리아와 맞먹는 위도 50도가 넘는 곳이라 육체적으로도 이 곳 저 곳에 순환장애가 와서 아침에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 덕에 난생 처음 짐에 가서 근력운동을 체계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아이 일에 치여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나를 잡아보고자 음악도 다시 듣고, 글도 쓰며 생존에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거라고 자부하던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기도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는 과정에서 주는 또 다른 기쁨을 누려보기도 했다.
폴란드는 내게 유배지 뿐 아니라 훈련지이자 휴양지가 되었다.
귀국을 4개월 남짓 남겨놓은 지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울로 돌아가면 이 곳에서의 생활을 사무치게 그리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작년에 잠시 한국에 나와 있으면서 폴란드로 다시 갈 것이 분명했음에도 내가 진짜 폴란드에서 살았나 싶을 정도로 이 곳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고 나니 폴란드의 하루 하루를 더욱 꽉꽉 담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서의 생활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오로지 이 순간 뿐이며, 사는 것은 끝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 매일 만나는 세상을 늘 에스프레소 처럼 진하게 누리고 살아나갈 것이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