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시민의 문화생활, 밴쿠버 미술관
솔직히 털어놓자면 이번 여행에 밴쿠버 미술관을 들릴 생각은 딱히 없었다. 프랑스의 루브르나 뉴욕의 MoMA처럼 반드시 들려야하는 관광지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스타운을 걷는 나의 눈에 <Vancouver Art Gallery - Monet> 가 써진 배너가 포착되었다. 밴쿠버 미술관에서 모네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걸음을 멈췄다.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니만큼 한국에서 열릴 때 한 번쯤은 가봤을 만도 한데 모네 전시회는 여태껏 가본 적이 없었다. 모네의 그림들은 세계 각국을 분주히 오가느라 바빴고, 나 또한 바빠서 번번이 갈 기회를 놓쳤었던 탓이다. 모국에서도 놓쳤던 전시회를 공교롭게도 여행 중에 만나게 되다니. 밴쿠버 미술관에 가서 모네전을 보고 오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그렇게 순식간에 가기로 결정해버린 밴쿠버 미술관은 밴쿠버 시내 한가운데 있어서 멀리 가야 할 필요도 없었다. 왜 시내 한가운데에 있을까 했는데 원래는 법원으로 쓰이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한다. 정의 실현에 쓰이던 건물답게 클래식한 외관에서부터 포스가 뿜어져 나왔다.
한국에서는 유명 작가의 특별전에 가려면 인파를 감당해야 한다. 눈으로는 고흐의 <해바라기>를 감상하며 코로는 누군가가 잔뜩 뿌리고 온 '은은한 꽃향기' 페브리즈 냄새를 맡을 수도, 눈으로는 뭉크의 <절규>를 감상하며 귀로는 엄마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이 터트리는 울음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뒷사람이 기다리지 않도록 적당한 스피드로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여주는 매너는 필수이다.
밴쿠버 미술관은 캐나다 서부에서 가장 큰 미술관인데다가 모네 특별전이니 당연히 북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한적했다. 인구가 적으면 이런 점이 좋구나. 덕분에 '국회의사당', '수련 시리즈', '일본식 다리' 시리즈까지 모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작품들을 다리가 아프도록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작품들은 모네가 살던 집의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완성된 그림들이다. 모네는 수십 년을 같은 집에서 살면서 같은 풍경을 보았을 텐데도 그것을 같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붓끝으로 옮겼다. 그 결과 같은 풍경이지만 다른 느낌인 연작 시리즈 (예를 들어 <일본식 다리>, <수련> 등 )가 탄생했다.
책과 인터넷으로 수없이 접했던 그림들이었는데도 처음 보는 듯 새로웠다. 과감한 붓 터치와 강렬하면서도 멜랑꼴리한 푸른 색채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분명히 사진에서 봤던 그 그림인데 사진이 전달하지 못한 감동을 실물은 전달했다. 이래서 명화라고 하나보다.
무심코 다른 관람객들로 눈길을 돌렸더니 나처럼 유심히 그림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나처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처음으로 제대로 살펴보는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나처럼 모네가 붙잡아 둔 '찰나의 인상'을 느껴보려 노력 중인듯했다.
대부분은 밴쿠버 미술관을 보러 온 관광객이 아니라 모네전을 보러 온 현지인이었다. 이들 사이에 끼어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나도 이곳 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만약 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미술관만 찾아다녔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다. 유명한 갤러리는 유명한 갤러리대로, 조금 덜 유명한 갤러리는 덜 유명한 갤러리대로 느낄 수 있는 그것만의 포인트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밴쿠버 미술관은 한국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미술관보다는 작은 대신에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게다가 밴쿠버 미술관에서 느낀 건 모네의 작품이 주는 감동뿐이 아니었다. 나는 나와 문화적, 공동체적 정서적 결을 전혀 나누지 않은 이곳 주민들과 잠시나마 감동을 공유하며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중에 다른 어디선가 모네의 전시회를 또 보게 된다면 밴쿠버 미술관이 기억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