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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ent Sohyeon Aug 23. 2024

이게 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문화생활이에요

우란문화재단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전시에서


성수 연무장길에는 작은 자작나무 숲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숲 뒤 유리문 안쪽에서 저는 자작나무의 녹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흰 나무 기둥을 쳐다보기엔 너무 더웠거든요. 그 날은 이곳 우란문화재단의 전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가 오픈한지 셋째 날이었습니다. 전시 초반은 아직 홍보 중인 기간이라 관람객분이 그리 많은 시기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오늘 정기 도슨트 타임에 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늘은 정기 타임이 아니어도 오시는 관람객이 원하시면 함께 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답니다. 드디어 유리문이 열리며 한 여성 분이 들어오셨어요. 지킴이 선생님이 관람객 분께 인사를 하며 리플렛을 건내고 전시실 구조와 안내사항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전 그 분을 바라보며 '혹시 잘못알고 들어오신 건 아닐까?'라고 순간 생각했습니다.


자작나무의 흰 기둥과 녹음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한 여름 날 속 미술관, 우란문화재단


단정하게 빗어 묶은 포니테일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집에서 더운 날 실내복으로 입고 있는 이른 바 "냉장고 바지"를 입고 계셨어요. 흰 반팔에 분홍 등산용 망사 조끼를 입고 등에는 작은 배낭을 매고 있는 차림이셨죠. 입고 있는 옷으로 사람의 인금 나름을 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미술관, 혹은 갤러리 나들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차림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관람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 오해였음을 알아챘습니다. (순간에 본 옷차림으로 누군가를 판단한 저의 경망스런 불찰이란 죄송한 마음이 훅 올라온......)리플렛을 읽으시며 천천히 전시장을 아주 오랜시간 집중하면서 진중하게 작품들을 바라보셨어요. 진지한 감상자의 눈빛 그 자체셨습니다. 한 30분 쯤 지났을까요? 저에게 천천히 다가오셨습니다.


"혹시 이번 전시에선 도슨트는 안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디오 도슨트와 현장 도슨트 모두 이용하실 수 있는데요, 현장 도슨트는 12시, 2시, 4시 이렇게 진행하지만 오늘은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도슨트 진행하려고 합니다. 실은 제가 도슨트거든요."

"그럼 지금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 전시장 입구에서 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렇게 그 분만을 위한 아주 프라이빗한 도슨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사실 이렇게 관람객 한 두 분과 진행하는 도슨트 타임을 참 좋아합니다. 형식으로 진행되어야하는 순서에서 벗어나서 좀 더 다양하게 대화를 나누며 작품에 대한 관람객 분들의 생각과 감상도 들을 수 있고, 또 개인적인 이야기도 공유하게 되면서 때로는 그 감상이 나오게 된 사적인 배경도 주고 받으며 '이게 진짜 도슨팅이지'(이와 관련된 생각은 언젠가 글을 통해 나눠 보고자 합니다)라는 재미와 희열을 느끼게 되거든요. 먼저 입구에서 전 전시의 기획의도와 간단한 공간 설명을 드리기 위해 가벼운 스몰토크를 시작하려고 했어요. 사실 가장 만만한 주제가 "날씨"와  "이 공간에 대한 경험"이잖아요. 그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보았습니다.


"혹시 우란문화재단 전시 와 보신 적 있으실까요?"

"네, 저 이곳에 우란문화재단을 생겼을 때 부터 문을 연 전시는 다 본 것 같아요."

"와, 사실 저는 이번 전시까지 합해서 겨우 세 개 보았어요. 저보다 이 곳 경험으로 훨씬 선배신걸요."

"여기 전시 재밌었어요. 전통문화라 해야 할지 공예라 해야할지, 그런 부분과 현대 작품을 같이 주제로 엮어서 전시하시더라고요. 이번에는 어떤 전통적 요소가 있나요?"

"벌써 들켰네요. 네 이번에도 전통의 미감을 역시 함께 하는데요, 기와를 만나보게 되실거에요."

"기와라... 네, 아까 혼자 볼 때 보고 왔어요. 이번에는 여기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돌도 보이고. 산수가 담겨 있어서 마음이 참 편안하더라고요. 작가들의 세대도 다양하고요. 오랜 풍경도 보고 요새 풍경도 보고. 오랜 작가가 표현했던 풍경도 보고, 젋은 작가가 표현하는 요즘 풍경도 보고. 그런 전시인가봐요."

"네, 거기에 하나만 더 더하고 싶어요. 바로 관람객 분이 꿈꾸는 이상향의 풍경도 하나 마음에 그려가셨으면 좋겠어요."

"하하, 맞아요. 저도 모르게 그려지더라고요."


대화 속에 기획의도, 주제, 공간 설명, 전시의 방향. 모두가 정리되어 버렸습니다.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아직 정기 도슨트 시간이 다가오려면 멀었고. 전 이 분과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도슨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롯이 이 분과 '대화'만으로 주고 받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답니다. "그럼 첫 번째 작품으로 이동하실께요."라는 말로 우선 관람객분을 소정 변관식과 청전 이상범의 작품 <하경 산수> 앞으로 모셨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입을 열기 전 먼저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왼쪽은 소정 변관식의 <하경산수>, 오른쪽은 청전 이상범의 <하경산수>다. 여름 날의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제목이 같다.


"예전에 현대화랑에서도 이 두 분을 비교 하면서 전시를 했었어요. 전 그 전까지 산수화 같은 건 제대로 본 적 없어서 그 그림이 그 그림이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두 명을 비교하니 딱 알겠더라고요. 아, 산수화도 화가의 개성이라는 게 이렇게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림이구나......하면서요."

"현대화랑에서 했던 전시 다녀오셨군요, 수 전시실에 그 때 도록도 구비되어 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보시면 반가우시겠어요. 네, 이 두 분은 동년배 화가세요. 2살 차이이고 스승도 같았고, 함께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참 그리는 방식부터 다가오는 느낌까지 다르죠."

"그러니까요. 전 변관식이 형인줄 알았어요. 그림이 이상범 그림보다 뭔가 좀더 나쁜말로는 고리타분해보이기도 하고, 더 전통 같기도 하고, 무게가 있어서요. 그런데 동생 이죠?"

"네, 동생이 맞아요. 말씀 듣고 보니 저도 그런 느낌이 드네요. 이 두 분은 그림에서 나타나는 것 만큼 삶에 대한 태도도 다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의 표현도, 느낌도 다르게 다가올 수 있고요."

"맞아요. 그때 현대 전시에서 보고나서 검색해보니까 변관식이란 화가는 속세를 좀 떠나 사는 고집있는 사람이었고, 이상범은 요샛말로 인싸,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필요하면 목소리도 내고 현실에 타협도 하고 그런 사람."


대화로써 마무리 되어 가는 도슨팅에 변관식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도포의 노인, 이상범 작품의 공기 원근법 등의 이야기만 조금 더 전해 드리고 다음 작품, 그 다음 작품으로 이어가는데. 와...... 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경험하신 전시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또 지역 미술관까지 얼마나 활동 범위까지 다양한지. 또 그 작품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얼마나 깊이 있게 보고 많은 생각을 하셨는지. 그리고 본 이후에는 작가의 히스토리를 다 연구하신듯 했어요. 그때부터는 이제 저는 도슨트에서 관람객으로 관람객이 도슨트가 되는 아주 신비로운(?) 현상이 시작되었어요. 예를 들어 보자면....... 아래와 같았지요.


원춘호 <와 #8>  눈과 비 바람 등을 맞고 견디며 집을 지키는 기와에서  작가는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한다.


사진작가 원춘호의 <와>시리즈를 보면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제 친정이 대구에요. 엄마 보러 대구 갔다가 대덕문화의전당에 가서 이 작품 봤어요. 그 때도 기와 작품 전시였는데, 참 기와가 따뜻하다. 저 높은 사람들만 사는 궁궐은 차가울줄 알았는데 참 따뜻하다. 하면서 봤어요."

(아마도 《천년 瓦》전시에 다녀오신 듯 하다)


핀란드 작가 피아 만니코의 <산 바라보기>. 산을 바라보는 듯한 설치 작업이지만 실은 사람의 손 그림자를 그린 것이다.


피아 만니코 작가의 작품을 만나셨을 땐,


"이 작품 사람 몸으로 산을 표현한 것도 아마 있을걸요? ACC에서 봤을 때는 두 작품 봤었는데, 여기는 하나만 있네요. (그 작품은 <산 바라보기  1>이었습니다. 인체의 그림자로 산을 표현했었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어찌 이기겠어요. 축대를 아무리 쌓고 댐을 아무리 쌓으면 뭐해요. 하늘이 노하면 다 소용없는 것을."

"대구에 이어 광주도 방문하셨군요. 저는 어떤 블로거의 사진으로 봤어요. 이렇게 설치 작품의 그림자를 함께 보는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네요. 설치를 보면 산을 보는 거 같은데, 그림자를 보면 꼭 물을 보는 것 같네요."


권세진 작가의 <바다를 구성하는 1482개의 드로잉> 10cm X 10cm 의 그림조각 1482개가 만들어가는 바다의 윤슬이다


이번 전시 가장 큰 작품이었던 권세진 작가의 작품 앞에서 나눈 대화에는 타 작가의 이야기도 함께 했습니다.


"이 작가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와...... 전 방의걸 작가의 윤슬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같은 먹으로 이렇게 다른 매력의 윤슬도 만나네요."

"방의걸 작가 전시 다녀오셨군요, 예술의전당에서 최근에 했었는데 그 전시 다녀오셨을까요? "

"네, 방의걸 작가의 윤슬은 추상적이고 정신적인데. 이 윤슬은 사실적이면서도 일면 추상적이네요. 참 매력있어요. 재미있어요."

"동향 작가세요. 제가 아는 대구 출신 작가 분이, 동년배 중 대구 경북이 낳은 최고의 아웃풋을 이 권세진 작가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러게요. 바다가 없는 도시에 살던 사람이라 더 바다에 매력을 느꼈나봐요. 정말 아름답고 압도되네요."

"그리는 방식이 참 독특해요. 사진을 찍어와서 그리드를 쭉 나눈 다음에 한지를 10cm X 10cm 사이즈로 잘라서 한 칸 한 칸 그려나간대요. 그 다음에 마치 직소퍼즐 맞추듯 다시 칸에 맞춰 배접해 완성한다고 해요. "


김보용 작가의 <텔레-워크>, <텔레-비전> '멀리 보기'에 대한 작가의 개념이 담긴 영상∙설치 작업이다.


가장 저를 놀라게 했던 인사이트는 김보용 작가의 작품 앞에서 였습니다. 사실 전 이번 전시를 공부하기 전에는 이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습니다. 제가 몰랐던 작가를 이 분이 알고 계신 것이 놀라웠던 것이 아니라 다원예술까지 즐기시는 건가 싶은, 스펙트럼이 엄청 넓은 감상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이 작가, 퍼포먼스 작가 아니었나요? 저 굉장히 오래전에 이 텔레워크 봤었어요. 언젠지도 가물가물한데, 무슨 페스티벌이었는데...... 정말 독특했어요."

"세상에. 이 작가분도 아세요? 맞아요 꽤 오래전이이에요. 2013년이었으니까 11년 전 작품이었는데 그때 기록영상을 편집해서 여기에 다시 가져왔어요."

"그 때는 실시간으로 멀리 보는 거였는데. 지금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멀리 보네요."


그렇게 한참을 함께 대화하며 전시장을 돌며 다행히(?) 처음 만나보신다는 이혁 작가와 서지우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그 감상을 나눈 다음, 그 쯤에서 진심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그런데 혹시 다른 미술관 학예사실까요? 혹은 이론 전문가실까요? 제가 오늘 도슨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슨트를 들은 것 같습니다. 정말 다양한 관점을 듣고 배웠어요. "

"아, 아니에요. 전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많이 공부한 사람 아니에요."

"어쩜 이렇게 모르는 작가도 없으시고, 안가본 전시도 없으시고. 저는 이걸 업으로 한다고 하면서 참 공부와 감상에 게으른가봐요. 너무나 귀감이 되십니다."


그 뒤에 이어진 관람객분의 말씀은, 정말 긴 말씀이었는데요. 토씨 하나 분명히 틀렸을 거고요. 순서도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 말씀을 하던 순간 순간을 정말 생생히 기억합니다. 너무나 울림 있는 말씀이었거든요.


사실 이건 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문화생활이에요.


제가 늘 기억하는 말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공부를 참 잘했어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학교를 중간에 그만뒀어요. 그 때 담임선생님이 음악선생님이었어요. 절 참 아껴주셨는데 저에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어떤 예술은 꼭 하나 즐겨라. 넌 영리한 아이니까 꼭 그렇게 살아라. 네 삶이 달라질거야." 그랬어요. 그래서 시간을 쪼개고 벌이를 모아서라도 선생님 말씀대로 살아야지 했는데 음악이나 공연이나 이런걸 감상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에요. 그런데 미술 전시는 무료가 참 많더라고요. 그래서 틈 나는대로 무료인 미술 전시는 뭐든 가까이 있으면 보러 갔어요. 일이 없는 날에는 꼭 삼청동이든 인사동이든 어디든 갔어요. 전 처음 다닐 땐 무료인건 별로여서 무료인가 보다, 저 비싼 전시는 어떤걸까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미술 전시는 너무나 가치있는 전시도 무료에요. 단지 외국에서 큰 돈으로 빌려온 전시가 비싼 거더라고요. 그렇게 40년을 봤나봐요. 전 사실 이젠 어린시절 만큼 어렵지 않아요. 살만해요. 그런데 여전히 인이 박혀 그런가. 돈 쓰는 걸 잘 못해요. 딸이 맨날 저 입고 다니는거 이게 뭐냐해요. 근데 어떡해요. 뭐 하나 사는 것도 아깝다 보니 만원 넘는 전시는 못들어가겠어요. 이것도 이제 고쳐야죠. 잘 안되는게 문제지만. 그런데 말이에요. 전 그때 선생님 말을 잘 들은게 제가 너무 좋아요. 내일은 죽어야지 하다가도 '다음 주에 열린다는 그 전시는 보고와서 죽어야지.' 한 적도 있고. 아무리 힘든 일을 겪게 되도 그 순간순간을 위로해주는 작품을 만나게 되고. 내가 남들은 무시하는 일을 할지언정 나는 좋아하는게 분명히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긍심 같은 것도 있었고요. 선생님이 말했던 취향이라는게 뭔지 그게 내 안에 있어서 그런지 내가 바르게 설 수 있어요.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 때 혼을 다해서 그런가봐요. 혼을 나눠줘서 이렇게 사람을 살리나 봐요."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전시장 로비에서 전시 관련 자료들을 읽으시다가 돌아가신 그 분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시인 이상과 김환기 화백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고 김향안(본명:변동림) 여사는 그의 저서 『미술관 일기』에 이런 한 문장을 적으셨어요.

"감상은 습관과 훈련이다. 늘 봐오고 좋은 것을 감상하면 자연히 안목이 생긴다. 이름을 가지고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분은 어린시절 선생님이 말씀하신 예술 하나를 즐기고자 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비록 반강제적이었을지라도 즐기는 하나의 장르를 미술로 잡았으며, 40여년의 시간을 습관처럼 감상하시며 자신도 모르게 훈련되셨겠죠. 볼 것이 많고 즐길거리가 많아진 요즘입니다. 너무나 넘치는 풍요로운 문화 속에 자신의 안목이나 취향 없이 그저 소비하는 무취향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작금의 이곳 서울에서 자신의 세월을 견디며 취향을 간직하셨던 그 관람객 분은. 제가 만난 최고의 감상자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리플렛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기간 2024년 6월 26일 - 2024년 9월 26일

시간 월-토요일 11시-19시, 일요일 및 공휴일(8/15, 9/16-18) 휴관

장소 우란1경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전시는 우란문화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와 오늘의 풍경을 조망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친숙한 옛말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달라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10’은 숫자가 가득 차고 끝나는 느낌이 있지만 동시에 새롭게 시작되고, 변화하는 지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강산’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생활 터전을 상징하며, 동아시아 회화사에서는 주로 자아를 성찰하는 대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과거 문인들은 부와 명예 같은 세속적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산중 은거를 택하여 산속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좇았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산수화로 남겨져 감상 되어왔고, 오늘날 우리는 산수화를 보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심상과 그들이 가졌던 세상을 향한 이상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수’를 다룬 그림은 객관적인 자연풍경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고, 삶의 풍경을 조각하는 하나의 조형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자연과 도시가 뒤섞인 풍경 속에 살고 있고, 미디어와 같은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풍경을 감상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고자 하는 것이 여전히 정신적 자유일까요? 풍경이 변한만큼,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변했을까요? 시간이 흘러 강과 산이 여러 번 바뀐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의 풍경과 오늘은 어떠한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풍경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전시에서는 삶의 풍경과 예리하게 조응하는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근대 산수화의 대표 화가인 이상범과 변관식. 산세를 은유하는 한국 전통 기와지붕을 지켜내고 있는 국가무형유산 이근복 번와장, 김창대 제와장. 사진으로 기와의 미를 담아내는 원춘호 작가. 산수의 생동감을 도자로 담아내는 도예가 정재효, 황종례.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풍경의 심상을 담아내는 권세진, 김보용, 서지우, 이혁, 피아 만니코 작가. 이들이 바라본 풍경과 그 시선에 배어 있는 심상을 감상해보면 과거의 산수와 우리가 경험하는 산수를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산’과 ‘수’라는 이름으로 나눠진 우란1경 공간에 머무는 시간 동안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풍경을 멀리 혹은 가까이, 차분히 또는 찰나의 시간으로 음미하며,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상을 발견해 보길 바랍니다.




-우란문화재단-


 성수 연무장길에는 아담한 규모에 내실이 꽉 찬,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우란문화재단의 우란1경 전시장입니다. '산'전시실과 '수'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그 사이의 로비에서도 다양한 작품과 전시 관련 아카이브를 체험하실 수 있답니다.


적벽돌 공장과 창고 건물이 힙한 카페가 되고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되는 곳. 가죽 장인 어르신들과 개성 뚜렷한 젋은이들이 함께 걷는 인도와 차도 구분도 거의 없는 곳. 명품과 신생브랜드가 함께 이리저리 팝업 스토어를 열고 정리하며 하루종일 먼지가 이는 이곳에서 잠시의 여유를 느끼며 미술을 즐기고 싶으신 모든 분들을 위해 열려 있는 곳입니다.


다른 전시장과는 달리 월요일에 문을 열고 일요일 하루 닫습니다. 우란2경에서는 실험적이고 재기 넘치는 공연장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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