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하나 바꿨을 뿐인데.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한 사람, 천재 프로그래머, IT 시대를 연 개척자, 세계 최대의 기부재단 설립자. 이와 같은 수식어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바로 빌 게이츠Bill Gates이다.
하지만 실상 빌 게이츠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아직도 빌 게이츠가 프로그램을 개발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빌 게이츠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자유재’를 ‘경제재’로 바꾸어 돈을 번 인물이다.
경제학에서는 자원의 희소성을 기준으로 재화를 자유재와 경제재로 구분한다.
자유재는 희소성에 제한을 받지 않는 재화를 의미한다. 해당 재화의 부존량이 너무 많아서 누구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경제재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비해 부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당 재화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즉,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경제재이다.
지금은 당연히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예전에는 자유재로 취급되었다. 단순히 수학적 논리체계로 구성된 컴퓨터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구매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친구 폴 앨런과 알테어Altair(세계 최초의 개인용 조립식 컴퓨터인 )에 탑재할 베이직BASIC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했지만 큰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고 복제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테어를 개발한 회사마저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결국 빌 게이츠는 1976년 2월, 그 유명한 ‘컴퓨터 애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Open Letter to Hobbyists’를 통해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재화임을 역설했다.
당시 이 편지는 여러 컴퓨터 관련 매체에 게재되었는데 편지 내용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베이직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거의 60일 동안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일했으며 개발이 완료된 후에도 프로그램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1년여의 시간이 더 걸렸다고 한다. 그는 노동 시간 대비 얻은 수익을 계산해보면 시간당 2달러도 안 되는 임금 수준이라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우리가 좋은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빌 게이츠의 노력이 시발점이 되어 당시까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었던 ‘수학적 논리체계’가 드디어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어엿한 제품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물론 이 당시에는 빌 게이츠 이외에도 전설적인 프로그래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기술적 역량을 바탕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선시키는 데 관심을 둔 반면 빌 게이츠는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데 관심을 보인 것이다.
빌 게이츠의 공개편지 이후 프로그램 불법복제가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그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커다란 기회를 얻게 된다. 1981년 당시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IBM으로부터 개인용 컴퓨터에 탑재할 운영체제를 개발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오늘날의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MS-DOS는 이렇게 탄생했다.
일부 컴퓨터 전문가들은 MS-DOS를 두고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빌 게이츠와 같은 대학 출신인 몬트 데이비도프Monte Davidoff가 이전에 개발한 Q-BASIC을 차용한 것일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빌 게이츠가 개발한 MS-DOS의 경우 이전에 개발된 Q-BASIC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노력에 의해 고객들이 돈을 주고 지불할 만큼 새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어찌 보면 컴퓨터공학자들이나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다른 프로그래머가 다져놓은 기틀 위에서 단순히 개선하는 역할만 하고 돈은 혼자 다 벌어간 빌 게이츠의 모습이 얄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가 없이 사고팔던 자유재를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경제재로 바꾼 그의 사업 수완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이를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경제학의 쓸모 X 인문학의 사유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고 사리분별을 해가면서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경제학은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이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지식에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가면 좋겠다." - 저자 박정호 박사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읽어보기 > http://gilbut.co/c/20021165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