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거리를 두는 게 답일까?
무작정 거리를 두는 게 답일까?
인간관계는 공부나 악기 연주와 다르다. 공부나 악기 연주는 연습하면 할수록 더디더라도 조금씩 실력이 나아진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 애를 써도 엇나가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다.
2인3각 경기와 비슷하달까. 혼자 열심히 뛰어봤자 상대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나는 열심히 뛰는데 상대는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화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끈을 풀고 혼자 뛰거나 파트너를 바꾸고 싶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파트너랑 뛰면 호흡이 잘 맞을까?
나 역시 자라면서 인간관계는 늘 어려웠다. 노력할수록 꼬여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 했지만 받았고,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주고 말았다. 그 시절 내가 혼란 속에서 간신히 매달린 해법은 ‘상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 거리!
그러나 솔직히 말하건대 ‘상처받지 않을 거리’에서 나는 자유롭기보다 외로웠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나서야 그 ‘거리 두기’가 사실 회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담실을 찾은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 고통은 어디에서 왔을까? 초기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민이다”라고까지 했다. 정말 그렇다. 문제는 그렇게 고통스럽다고 하면서도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설사 벗어나더라도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비슷한 관계방식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즐거움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데 왜 인간관계에서만큼은 고통을 놓아주지 못할까? 서로의 행복을 바란다는데 왜 정작 누구도 행복하지 않고 서로 고통만 주고받을까?
자신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상사에게 오히려 더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회사원, 학생이 화를 내면 어쩔 줄 몰라 울어버리는 교사, 매번 마지막이라면서 결국 노후자금까지 다 털어가며 자식의 카드빚을 해결해주는 부모, 누군가 이성적인 관심을 보이면 질겁하고 차단부터 하는 여성, 배우자의 외도를 애써 모른 체하는 남편, 대학생 딸에게 구타당하면서도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엄마, 자신과 다른 의견을 얘기했다는 것만으로 화를 못 참는 상사, 연인이 떠나지 못하도록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바람피우는 애인과 헤어지고 또 바람기 있는 애인을 만나는 사람…….
이해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상식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병에 걸렸거나 사회적인 기능을 못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일상생활에서 사리판단 잘하는 보통 이상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인간관계만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과 행동을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관계의 틀’ 때문이다.
일정한 모양의 빵을 계속 구워내는 빵틀처럼 인간관계에는 틀이 있다. 이 틀로 말미암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비슷한 관계방식을 되풀이한다. 문제는 그 기본 틀이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기본 틀은 ‘아이-어른’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어른-어른’의 관계에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어른’의 관계틀을 ‘어른-어른’의 관계틀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관계 손상을 겪은 사람들의 기본 틀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과 신념 그리고 애착 갈망 등이 그 기본 틀을 붙들어매고 있는 데다가, 그 틀 덕택에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관계틀이라고 하더라도 성인관계에 적용하면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아이 때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도 있고, 화가 나면 토라져 말을 안 하거나, 원하는 게 있으면 떼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의 관계는 다르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고,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이야기하고 갈등을 풀어야 하며, ‘나’만 중요하다고 우길 수 없다.
나를 책임지면서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 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일 어른인 당신의 인간관계가 계속 힘들다면 반드시 관계의 틀을 살펴봐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관계방식으로 오늘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겪는 관계의 어려움은 상대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신의 관계방식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과거의 관계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문제는 반복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바운더리boundary’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의 문제와 해법에 접근하고 있다. 내담자가 과거의 관계틀을 이해하고, 어른의 관계틀로 바꾸는 데 바운더리 개념이 무척 효과적인 도구임을 숱한 상담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운더리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내 관계의 울타리인 것이다. 자아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바운더리라는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바운더리의 핵심 기능은 보호와 교류다.
바운더리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나’와 ‘나 아닌 것’을 혼동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잉보호를 하는 등 상호교류에서 어려움을 보인다.
그에 비해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굳이 거리를 두려고 애쓰지도 않고 자신을 속이거나 희생하며 인간관계를 맺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을 돌보면서도 친밀해질 수 있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은 내보낼 수 있다. 바운더리의 보호와 교류 기능이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관계가 어렵고 힘들다면,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보자. 자신을 돌보면서 상대와 친해지고, 자신 만큼이나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갈등을 피하기보다 풀어갈 줄 알고, 상대를 염두에 두되 원치 않는 것은 거절하고 원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바운더리를 제대로 세운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도, 폐쇄적인 것도 아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늘 거리르 두겠다는 결심과도 다르다. 바운더리가 건강하면 관계는 내 편이 된다. 관계에 따르는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자기표현이 가능한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진짜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어른인 당신의 인간관계가 계속해서 힘들다면 지금,『관계를 읽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읽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