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는 현지에서 살아보는 여행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늘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경제학 교수님이 소식을 전했다. 2008년 9월 15일의 수업 시간이었다. 158년 역사의 세계 4위 투자은행이 무너졌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직격탄을 맞았단다. 비우량 등급의 개인에게까지 대출을 남발했는데,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부터 무너져 내렸단다.
거품의 잔치가 종말을 고했다. 탐욕의 대가로 값비싼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세 곳이 파산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태풍은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세계 경제위기의 서막이었다.
경기의 한파는 내가 재학 중이던 일리노이 주립대에도 불어닥쳤다. 그렇지 않아도 매서운 추위로 이름난 곳이었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상당수의 유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남은 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친구들끼리 렌트비가 더 저렴한 아파트를 구하러 다녔다. 각자의 방이 있으면 양반이었다. 거실을 나눠 커튼으로 막을 쳤다. ‘프라이버시’라는 말은 사치였다. 생존이 우선이었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같은 기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에어비앤비가 탄생했다. 초라한 출발이었다. 청운의 꿈을 품은 청년 셋이 뭉쳤다. ‘세상에 영향을 미치겠다’라는 신념으로 직장을 때려치웠다.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로 집결했다. 높은 집세가 발목을 잡았다. 사나이가 칼을 뽑기도 전에 무릎을 꿇을 판이었다. 기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집의 남은 공간을 렌트해볼까?’ 궁지에 몰렸을 때는 즉각적인 실행이 답이다.
때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규모 디자인 콘퍼런스가 열렸다. 호텔은 진작에 예약이 찼다. 세 청년은 에어베드airbed와 아침breakfast을 제공하겠다고 인터넷에 공지했다. 3명이 집을 찾아왔다. 1박에 80달러를 받았다. 어라, 잘하면 이걸로 먹고살 수도 있겠는데?
회사 이름을 ‘에어베드앤브렉퍼스트Airbedandbreakfast’로 정했다. 서비스를 다듬어갔다. 투자자를, 호스트를, 고객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성공은 요원했다. 조롱과 멸시의 끝없는 릴레이.
“그것 말고 다른 아이디어도 있는 거죠?”
“이미 존재하는 서비스네요.”
“아들아, 넌 지금 실직자야.”
“투자하지 않겠습니다.”
수년 뒤 이 모든 말은 ‘헛소리’로 판명됐다.
‘주거공간을 공유하여 모르는 사람을 집에서 재워준다.’
급진적인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정말 멋져. 나도 이용하고 싶어.”
“절대로 우리 동네에는 들어오지 않기를.”
중간은 없었다.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기는 더 어려웠다. 이용자 100명을 모으는 데만 1년의 시간이 걸렸다.
낯선 사람의 집에 머문다는 아이디어가 ‘급진적이지 않게’ 느껴지도록 해야 했다. 호스트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했다. 창업자들은 발로 뛰면서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국가로부터 등급Star을 심사받는 호텔과 달리 에어비앤비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었다. 공동 창업자 조 게비아의 표현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건 ‘본인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해제한 후 옆 사람에게 주는 경험’ 같은 거였다. 고객은 불안했고, 호스트는 조마조마했다. 신뢰도를 높일 방법을 찾았다.
고객의 아이디와 프로필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고객과 호스트가 서로 후기를 남겨 평판을 관리하게 했다. 보험 서비스를 더하여 혹시 발생할지 모를 피해 상황에도 대비했다.
세 창업자는 자신들의 영웅 스티브 잡스가 얘기한 ‘클릭 세 번의 법칙(아이팟으로 노래를 들으려면 세 번 이상 클릭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을 참고했다. 사이트에서 세 번의 클릭만으로 예약을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호스트를 위한 사진 촬영 서비스도 제공했다. 에어비앤비 초창기에는 집 내부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 호스트들이 많았다. 그들이 찍어서 올리는 사진의 퀄리티도 매우 낮았다. 창업자들이 직접 호스트의 집을 돌아다니며 임대 공간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주었다.
에어비앤비의 초기 투자자였던 와이 콤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 대표가 교훈을 주었다.
“‘서비스가 괜찮다’고 여기는 고객이 100만 명 있는 것보다
‘서비스를 사랑하는’ 100명의 고객이 있는 게 훨씬 더 낫다.”
창업자들은 당시 에어비앤비의 서비스를 사랑하는 고객이 몰려 있던 뉴욕으로 떠났다. 모든 호스트의 집을 방문했다(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숙박을 해결하면서 호스트들의 의견을 들었다. 현장의 목소리는 부드럽지 않았다.
“왜 ‘일반 침대’는 안 되고 꼭 ‘에어매트리스’를 설치해야만 하나요?”
“왜 호스트가 반드시 집에 머물면서 손님들에게 아침을 차려주어야 하나요? 회사 이름 때문인가요?”
창업자들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쓸데없는 원칙들이 회사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 에어매트리스 구비, 아침 식사 제공 요건을 삭제했다. 호스트가 집에 머무르지 않고도 집 전체를 빌려줄 수 있다는 옵션도 추가했다. 회사 이름도 ‘에어비앤비’로 바꿨다. 고객의 말을 진심으로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튼은 ‘준비-발사-조준’ 순서로 행동하는 사업가였다. ‘준비-조준-발사’가 아니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영점을 맞췄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바로 론칭했다. 실행하고 나서 조준했다. 그제야 에어비앤비를 찾는 수요가 늘어났다. 에어비앤비가 팔리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를 경험한 고객 대다수는 이 브랜드의 추종자가 됐다. 호텔보다 ‘더 나은’ 경험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규격화된 ‘방’이 아닌 호스트의 체온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따뜻한 환대였다. 현지인이 되는 체험이었다.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유일함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구나. 이것이 진짜구나.
호텔보다 ‘더 나은’ 경험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선악과’였다. 경험하는 자마다 눈이 밝아졌다. 이제 호텔은 시시해 보였다. 도쿄의 힐튼이든, 뉴욕의 메리어트든 거기서 거기인 프랜차이즈였다. 숙소 선택의 기준이 ‘편리함’에서 ‘진정성’으로 넘어왔다. 여행 문화가 바뀌고 있었다. 에어비앤비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세 청년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
베트남에는 20세기 최고의 전략가로 꼽히는 인물이 있다. ‘붉은 나폴레옹’이라 불린 보응우옌잡 장군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격파한 전쟁 영웅이다. 초강대국 미국으로서는 20세기에 겪은 최초이자 유일한 패배였다. 보응우옌잡 장군의 트레이드 마크는 ‘3불不 전략’이었다.
첫째,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둘째, 적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다.
셋째, 적들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는 이 전략으로 미국·프랑스·중국군을 격퇴했다. 머릿수와 화력의 열세를 뒤집어버렸다.에어비앤비가 호텔 업계를 무너뜨린 비결도 3불 전략이었다.
호텔이 만실이 됐을 때를 공략했다(적들이 원하지 않는 시간).
세상의 모든 집이 숙소였다(적들이 원하지 않는 장소).
집집마다 사연과 개성이 있었다(적들이 원하지 않는 방법).
세계 최고의 호텔들이 손써볼 새도 없이 당했다. 불과 1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보응우옌잡 장군이 살아 있다면 분명 이 모습을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리라.
이제는 사방이 적이다. 기업가치가 310억 달러에 이르는 ‘성공한 이단아’의 숙명이다. 귀엽게 봐준 친구가 헤비급 거물이 되어 돌아왔다. 기득권은 칼을 갈았다. 밥그릇을 빼앗긴 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시대의 변화가 버거운 자들의 발악이었다. 에어비앤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호스트들도 호텔과 같은 수준의 안전과 위생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왜 저들은 우리와 똑같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나요?”
특명을 하사받은 정치인들과 로비스트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소기의 성과가 나타났다. 뉴욕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가 불법이 됐다. 묵직한 한 방이었다.
그럼에도 에어비앤비의 성장곡선은 꺾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팔라졌 다. 거인들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반체제 문화의 선봉이 됐다. 다윗으로 포지셔닝됐다. 그에 반해 호텔과 정부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방해하는 골리앗으로 인식됐다.
골리앗들이 놓친 게 있다. 마케팅에서 전쟁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소비자들의 머릿속’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에어비앤비가 점령한 영역이다. 골리앗의 공격으로 전 세계 수억 명의 팬이 단결했다. 다윗의 물맷돌이 되어 골리앗을 향해 날아들었다.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말은 골리앗들에게 내리꽂는 비수였다.
“대세가 된 아이디어는 결코 죽일 수 없다.”
2019년 초, 세계 1등 호텔 체인 메리어트가 공유숙박 사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2라운드가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 카리브 연안 등에서 최고급 주택 2,000곳을 임대한다고 했다. ‘홈스 앤드 빌라 바이 메리어트 인터내셔널Homes & Villas by Marriott International’이라는 브랜드가 출범했다. 메리어트는 에어비앤비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중저가 시장은 버렸다. 돈 많은 이들을 위한 ‘럭셔리 에어비앤비’가 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에어비앤비는 쫄지 않았다. 브라이언 체스키는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공유숙박 사업의 매력을 보여주는) 엄청난 증거다. 우리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지금까지 에어비앤비에 도전장을 내민 호텔이 메리어트가 처음은 아니었다. 2016년, 프랑스 호텔 기업 아르코가 호화주택 전문 공유숙박 업체 원파인스테이를 인수했다. 2017년에는 하얏트호텔이 공유숙박 업체 오아시스에 3,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두 회사 모두 재미를 보지 못했다. 원파인스테이는 아직도 적자 상태다. 하얏트는 오아시스의 지분을 정리했다.
에어비앤비로서는 충분히 예상했던 시나리오다. 한 수 앞서서 대비책을 세워놓았다. 에어비앤비의 다음 공략지는 호텔이다. 호텔 업계에 날리는 역공이다. 2019년 3월, 호텔 예약 앱 호텔투나잇을 4억 6,3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최근에는 인도의 최대 호텔 기업 오요룸스 지분을 2억 달러에 사들였다. 상업용 건물 일부를 숙박용으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낯선 사람의 집에 머물기를 꺼리는 여행자까지도 고객으로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에어비앤비의 세계는 갈수록 확장된다. 공유숙박 분야의 ‘챔피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호텔 분야에 ‘도전자’로 나섰다. 이렇게 에어비앤비는 계속 다윗으로 남는다. 다시 한번 골리앗을 잡으러 간다.
▶ 존재의 이유가 뚜렷하다
▶ 고유의 문화가 존재한다
▶ 차별화와 공감의 귀재다
▶ 강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 오직 고객과 시장만 바라본다
하루에도 수백개씩 쏟아지는 브랜드와 셀럽들의 대홍수 속에서도
자신만의 필살기로 업계 1등이 되고 시장의 판세를 바꾼 25개 초일류 브랜드에서 배운다!
-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읽어보기 > http://bit.ly/2kNg6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