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고(縊苦)

목을 매는 고통

by 서예주




왜정 때 다친 발목에는
언젠가부터 쥐가 살고 있다
얇은 붕대를 고양이 꼬리처럼 둘러매
꾹꾹 짓누르면 쥐는 조금 얌전해졌다

그의 집은 계단만 있는 5층,
계단 난간의 뽀얀 먼지들은
싸리비 같은 그의 손에 의해서만
쓸려내려갔다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찾아간 곳은 손녀가 근무하는 병원
손녀 출근길에 함께 나섰지만 그 아이는
1층 현관 앞에서 바쁜 마음에 떠밀려
말줄임표처럼 사라져 버렸다

"관절을 파먹는 쥐 좀 제대로 잡아줘요!"

벌써 여러 번이나 의사를 탓했더니
칼을 쓰지 않고 쥐를 어떻게 잡냐며
더 독한 쥐약을 쓰는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소견서를 내민다
칼을 쓴다는 건 어떤 목적이든
치러야 할 값이 크다




다시 계단 앞에 서서 위를 바라본다
내려다보기 좋은 5층
이 높이가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은 없었다

구석진 방
바래버린 세월이 짙게 베인 벽에
솜처럼 젖은 몸을 기댄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유독 멀다
서향의 창엔 해도 늦게서야 얼굴을 내민다

한 번 닫힌 방문은 제 손이 아니면 열리지 않는다
저녁이 다 되도록
아무도 말을 짓지 않는다
뜸 들이는 냄새도 나지 않는다
숙성된 혼잣말이 치즈처럼 굴러 떨어지면
어느새 까맣게 모여든
쥐들의 갉아먹는 소리만이 어지럽다

문득 오래된 사진첩에서 그리운 소리가 들린다
꿈을 꾸듯 발목을 감쌌던 붕대를 푼다


계단 난간에 먼지가 소복이 쌓여갔다







* 이 글은 예전 제게 물리치료를 받으시던 어떤 할아버지의 사연을 재구성해서 쓴 손바닥 소설이자 긴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