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이방인>
사장은 내게 삶에 변화를 주는 데 큰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모든 삶이 어쨌든 나름의 가치를 지니는 법이며, 따라서 여기서의 삶도 내게는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 본문 중에서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으로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 여자 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코미디 영화를 본다.
며칠 뒤 일요일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알게 된 친구의 별장에 초대되어 갔다가 해변에서 우연히 한 아랍인을 마주치고 별다른 이유 없이 그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왜 죽였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그는 단순히 〈햇빛 때문〉이었다고 대답한다.
한여름 해변의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모든 재판 절차와 일상의 모든 것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심지어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가운데 다만 재판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란다.
반면에 검사는 뫼르소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여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진술을 바탕으로 그를 비도덕적 인간으로 몰아간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자신이 처형되는 날 많은 군중이 몰려들어 증오의 함성을 질러 주기를 기대하며 소설은 끝난다.
- 열린책들 세계문학-172 『이방인』 책소개 中
뫼르소는 문자 그대로 단 1그램의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인물입니다.
뫼르소는 마리를 좋아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아직 그녀와 '사랑'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부풀려 말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 그것은 당연한 것일 뿐이니까요.
이 책의 전반부에는 뫼르소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해요.
애인(혹은 정부)을 사랑하지만 사소한 다툼에도 발끈하고 때리는 레몽,
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개를 아끼고 보살피지만 쉬지 않고 개를 욕하며 때리는 살라마노 영감.
둘은 각자의 대상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그 대상을 함부로 대하고 학대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학적인 행동을 하면서 나는 그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기 기만을 하죠. 시쳇말로 쿨한 척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둘 다 엄청난 '츤데레'.
어느날 레몽은 정부가 바람을 피자 엉뚱한 핑계를 대며 그때까지보다 가장 심하게 그녀를 때리고 맙니다.
살라마노 영감은 항상 자신의 개에게 욕을 하고 동물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개를 대하지만 막상 그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는 안절부절 못하죠. 심지어 자신의 방에서 소리죽여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 다 그 와중에서도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합니다.
그런가하면 레몽은 항상 타인에게 '남자다움'을 확인받으려고 합니다. 중요한 결정들을 하기 앞서 남자답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항상 뫼르소에게 묻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남의 시선이 더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는 독자 자신입니다.
이제 2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뫼르소는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한 사람을 총으로 쏴죽입니다.
심문 과정에서 그는 항상 곰곰히 생각하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 논리 그대로를 말합니다. 그로서는 최선의 변호를 하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그런 100%에 가까운 솔직함의 정도는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타스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들의 의사소통은 80%의 진실과 20%의 거짓이 효과적이니까요.
사건과 관계 없는 일로 인간성을 평가받고 결국 진실과 상관 없이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받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사소한 거짓말과 연기로 자신의 신념을 꺾기보다는 의연하게 죽음을 선택하죠.
저자 알베르 카뮈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지는 위험을 겪게 된 어떤 젊은이가 술책을 쓰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음으로써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라고 <이방인>을 요약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아무런 영웅적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내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로부터 배운 사실은 저 자신이 다만 인간에 대해 유죄라는 점뿐입니다.
제가 유죄인 이상 저는 그 값을 치를 것이고, 그리고 아무도 제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 본문 중에서
+ 덧.
이 책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은 역자 해설이었습니다. 『이방인』 본문은 엄청나게 몰입해서 봤지만 열 페이지 남짓되는 역자 해설은 당최 진도가 나가질 않았어요. 읽으면서 '너무 현학적으로 써놨군'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위대한 소설에 어울리는 해설을 달기 위한 번역가의 고심이 드러나는 부분이었기에 덮어놓고 번역가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저 역시 이 소설이 주는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제 깜냥이 너무나도 부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고전'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소설은 이렇게 직접 읽어야만 알 수 있는 감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