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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기드문소년 Nov 16. 2015

다름의 인정

때로는 귀찮고 짜증나지만 우리가 발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파리에서 백여 명이 죽었다.

콘서트장 안에 들이닥친 테러범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신을 믿는지, 국적이 무엇인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대답이 마음에 안들면 총을 쐈다.

눈 앞에서 총구가 흔들리는 와중에 무슨 말이든 해야만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광화문에서는 시위가 있었다.

시위대는 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여 버스를 폭파시키려 했고, 경찰은 쓰러진 사람에게,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사람에게 물대포를 뿌려댔다.

인터넷에서도 좌와 우가 대립하고, 현실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


최근 들어서 이런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계속되는 다툼과 언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말았다.

솔직히 이념 다툼을 하는 것도, 소모적인 언쟁을 벌이는 것도 싫다. 감정 싸움으로 치닫기 십상인 의견 개진에 에너지를 쏟는 것도 정말이지 무진장 피곤한 일이다.

설사 논쟁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상처뿐일 영광을 위해 그렇게까지 내 감정을 다치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들어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귀찮고, 두렵고, 싫다.




하지만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미덕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들은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지향점을 도출해 낼 수 있었고, 이것은 민주주의가 발전해 온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였다.


유전적 다양성은 어떤 생물종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환경이 급변했을 때, 한 생물종의 유전적 특질이 다양하면 할수록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수가 많아지고, 그 생물종의 높은 생존률 역시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생각에 갇히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 생각이 진리가 아닐수도 있고, 만약 진리일 경우에는 그것이 진리임을 환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상들이 존재함으로써 인간은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더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고, 진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는 위대한 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는 이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탄압하고, 틀어막고, 생각의 싹을 잘라내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정교과서, 일베, 키보드 워리어 등이다.

그 중 어떤 것은 국가에 의해, 어떤 것은 대중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하여 폭력을 가한다는 본질적인 속성은 똑같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소모적인 논쟁과 감정 싸움에 지쳤다고 해도, 그래서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해도,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면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만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살고 있는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소리 높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민주 시민은 투표권 이외에도 훨씬 더 많고 폭넓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 셈이 된다.

자신의 권리도 행사하고,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이 좋은 행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무어있을까?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발전적인 토론의 활성화를 위한 자세이다. (물론 나는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추구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나는 타인의 주장을 비난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매력적인 제안과 논리적인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설득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좌절되었다고 해서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또한 나는 타인의 발언을 강제로 막을 수 없다.

무턱대고 남의 발언을 문제삼아 비난할 수도 있다.(그 근거를 대는 편이 좀 더 바람직하긴 하겠지만...) 하지만 절대로 물리적 혹은 비물리적인 폭력을 가해서는 안된다. 이를테면 욕설은 분명한 폭력이다.




만약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입을 여는 것만큼 귀도 열어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버스를 폭파시키려는 시도도, 물대포를 쏘는 일도, 극장에서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는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바람직한 사회상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로 일치되어 으쌰으쌰 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엄청나게 다른 의견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토론과 설득이라는 과정을 거쳐 발전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민주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인 사회는 민주주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통 파시즘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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