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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기드문소년 Dec 09. 2015

작가 서민의 글쓰기 특강을 듣다

강의를 듣자마자 바로 쓴 따끈따끈한 후기


 


일주일 전 산학연계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모교 인문대 건물을 방문했다가 포스터 하나를 봤다.

수많은 대자보와 현란한 광고지의 홍수 속에서 심플하다 못해 정갈한 느낌마저 드는 샛노랑 A4 용지!

비 내리는 오후, 횡단보도 위 수많은 인파 속에서 빨간 우산을 든 이상형의 소녀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 이런걸까. 그냥 포스터를 지나칠래야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담고 있는 컨텐츠 역시 간단명료하다!

‘서민적 글쓰기’라는 제목 하나만을 바탕체 20포인트로 중간에 ‘뙇’ 놓고, 그 아래에 역시 바탕체로 부연 설명과 장소, 일시만을 적어 놓은 것이 끝이다. ‘필요한 만큼은 보여 줬다’며 더 이상의 내용공개를 거부하는 이 미칠듯한 심플함. 포스터의 교과서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포스터의 기본원칙(만)을 잘 지켰다. 왠지 하늘에서 스티브 잡스가 이 포스터를 본다면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 같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주최측의 패기에 지릴 수 밖에 없었고, 나는 12월 8일 저녁 시간대를 온전히 비워두고야 말았다. 그리고 방금 서민 교수님의 글쓰기 특강을 듣고 왔다. (『서민적 글쓰기』는 얼마 전 출간된 서민 교수님의 저서 제목이다.)


그 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충 권위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분이시다. 현재 국내에서 기생충학(너무 생소한 학문이라 그런지 MS워드2013에서 오탈자라고 빨간 줄을 그어버린다. 멍청한 소프트웨어 같으니라고.)을 다루는 교수가 약 50여명, 그리고 그 휘하 대학원생들이 150여명 정도 된다고 하니, 그를 200분의 1의 사나이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허나 그는 자신의 유명세가 학문적 업적 때문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겸손함도 갖추신 분이다. 대신 본인의 유명세는 엄청난 글쓰기 실력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뻔뻔함도 가지고 있다. 어떨 땐 겸손하게, 어떨 땐 뻔뻔하게, 이렇게 밀고 당김의 완급조절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서민 교수님을 ‘중년매력남’으로 칭해도 손색이 없을 것만 같다.


다만 문제는 그 분의 외모다. 이건 『서민적 글쓰기』의 책 표지에도 적혀있다.

“너무 못생겨서 죽어라 공부했다. 인정받고 싶어서 유머도, 글쓰기도 공부하듯 파고들었다. 훈련하면 누구나 나만큼은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 역시, 분명히 주제는 글쓰기 특강인데, 강의 시작 후 초반 20분 동안은 본인의 외모 셀프디스와 주변 지인 분들에 대한 외모 품평회가 이어졌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자리에 앉았었던지라 나갈까 말까를 재고 있던 사이에, 드디어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단점을 먼저 말하고 장점을 말하면 그 장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법이라고. 본인의 셀프디스는 글쓰기 강의를 위한 초석이었구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충 권위자는 다르다. 좌중을 휘어잡을 줄 아는 저 언변! ‘글을 잘 쓰면 말도 잘하게 되는구나’라고 연습장에 끄적인다.



‘작가님’께서는 우리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편안한 어투로 대화하듯이 말씀해주셨다. 솔직히 나는 ‘글을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쓰기 노하우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많았는데, 글쓰기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잽싸게 적기, 솔직하고 쉽게 쓰기, 목표를 세우기 등 실질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작가님께서는 잘못 써진 글의 예시를 보여주고는, 본인이라면 이렇게 썼을 것이라면서 본인의 스타일로 고친 글들을 몇 가지 보여주셨는데, 이 글들을 보는 것 역시 강의의 꿀잼 중 하나였다.


특이했던 점은 작가님께서 최근 내신 책인 『서민적 글쓰기』에 대해서 별 말이 없었다는 거였다. 사실 강의를 듣기 전에 나는 오늘 강연이 글쓰기 강의를 빙자한 책 홍보회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글쓰기 강의에 충실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 증정 받은 책에 사인을 받았는데 너무 정성 들여 멘트를 써주셔서 깜짝 놀랐다. 사실 저자들에게 사인을 받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공들여 받은 사인은 처음이었다. 서민 작가님의 정성과 인품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강의실을 나서며 ‘결국 글쓰기는 노오오오력이다라고 생각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답이다. 이다지도 게으른 나를 나무라면서 사무실로 돌어와 글을 쓴다. 오늘 강연에서 들었던 것, 다짐했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남긴다.


10년 뒤에는 서민 교수님의 괴작 <마태우스>를 능가하는 소설을 내놓는 게 소원이라고 했는데 저렇게 써주셨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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