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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저승에서 데려오려던 천재 뮤지션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신화

무사이 자매의 맏언니 칼리오페는 오이아그로스(Oeagrus)와 결혼했다. 오이아그로스는 트라키아의 왕이자, 그 지방을 흐르는 강의 신이기도 했다. 둘 사이에 오르페우스(Orpheus)라는 천재 음악가가 탄생했다. 

오르페우스를 가르치는 칼리오페, Auguste Alexandre Hirsch  (1833–1912)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오르페우스는 인간이 연주할 수 있는 최초의 하프를 발명했다. 또 본래 일곱 줄이었던 하프의 현을 자신의 어머니와 숙모인 무사이 여신의 수에 맞추어 아홉 줄로 늘려 하프를 개량했다. 


당시 그리스 동북쪽에 있던 트라키아라는 나라에는 난폭한 야만인들이 살았다. 오르페우스가 하프를 타며 연주에 맞추어 즉흥시를 읊자 야만스러운 트라키아인들도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해 싸움을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을 듣는 님프들, 1853 by Charles Jalabert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인간에게만 감동을 준 것이 아니었다. 새와 짐승들도 오르페우스 주위에 모여들어 노래와 연주에 귀를 기울였고, 풀과 나무까지 절묘한 연주에 맞추어 흔들흔들 움직이며 오르페우스 주위로 줄기와 가지를 뻗고 나부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Eurydike)라는 아리따운 님프와 결혼했는데, 아내를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덧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아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에우리디케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 


비탄에 잠긴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되살려 지상으로 데려오겠다고 마음먹고, 하프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홀로 저승길에 올랐다. 그러나 제아무리 오르페우스라고 해도 산 사람은 망자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지엄한 세상의 이치를 거역할 수 없는 법. 저승으로 들어가려는 오르페우스의 앞길을 문지기 개가 가로막았다. 


저승의 입구는 케르베로스(Cerberus)라는 머리 셋 달린 개가 지키고 있었다. 케르베로스는 몸에서 뱀이 자라나 꿈틀거리는 무시무시한 파수꾼으로, 산 자는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망자는 탈출하지 못하도록 여섯 개나 되는 눈을 번뜩이며 감시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케르베로스도 오르페우스의 노래와 연주에 홀려 임무를 잊고 그를 들여보내 주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마물들도 모두 감미로운 선율에 취해 오르페우스의 앞길을 막아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르페우스는 이렇게 저승의 왕 하데스와 그의 왕비 페르세포네 앞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서 다시 하프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헤어진 슬픔을 애절하게 노래했다. 그는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갈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간곡히 애원했다. 

Serangeli Gioacchino. Italian. 1768-1852

무정한 저승의 지배자도 오르페우스의 연주와 애원에 마음이 움직였고, 간곡히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지켜야 했다. 
“아내를 무사히 데려가고 싶다면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해요. 지상에 이를 때까지 아내의 앞에서 걷고, 절대 뒤에 있는 아내를 돌아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 금기를 깨면 에우리디케는 저승에 남고, 당신은 혼자서 지상으로 돌아가야 한답니다.”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오르페우스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페르세포네가 시키는 대로 에우리디케에게 뒤를 따르게 하고, 자신은 앞장서서 씩씩하게 지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에우리디케는 황천에 있는 동안 발자국 소리 하나 나지않는 망령의 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르페우스가 아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기척을 느끼려고 귀를 쫑긋 세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상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하면서도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정말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윽고 불안으로 가슴이 터질 듯한 오르페우스는 결국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에우리디케는 착실하게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에게 모습을 보인 에우리디케는 절망에 빠져 허공에 손을 내밀며 영원한 이별을 고하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슴 아프게 이별한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홀로 돌아왔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르페우스의 잘생긴 외모와 출중한 노래 실력은 트라키아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야속한 오르페우스는 여자들의 마음을 무시했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인 법, 오르페우스를 사랑했던 만큼 미움도 컸다. 사랑은 증오로 변했고, 오르페우스에게 거절당해 상처 입은 여인네들이 몰려들어 오르페우스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는 시신을 하프와 함께 강에 던져 넣었다.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하프는 바다로 흘러가 파도를 타고 레스보스(Lesbos) 섬으로 표류했고, 섬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정성껏 장사 지내주었다. 이후 무덤에서 리라 소리와 노래가 흘러나왔고 아름다운 선율 덕분에 레스보스 섬은 여류시인 사포 등 뛰어난 시인을 배출하는 예술의 섬으로 거듭났다.

참고로, 오르페우스는 저승에서 돌아온 후 비밀 의식과 계율을 정해 그 의식과 계율을 지키며 생활하는 사람에게 오로지 자신만 아는 사후 세계의 비밀을 전수해주었다고 한다. 그 가르침은 오르페우스교라 불리는 종교로 발전했고, 훗날 철학자인 플라톤 등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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