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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세계에도 비선실세가 있었다?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 신화

우라노스와 가이아(앉아 있는 여자)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까지 삼 대에 걸쳐 세계를 제패하는 신들을 내키는 대로 갈아치웠던 숨은 실세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가이아(로마신화=테라, 테루스와 동일). 가이아는 제일 먼저 자신의 아들이었던 우라노스를 남편으로 삼아 세계의 지배자 자리에 앉혔다.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이어서 크로노스에게 명해 남편인 우라노스를 거세시키고 크로노스를 왕좌에 앉혔다. 그리고 갓 태어난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를 뒤에서 도와 티탄 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적절한 원조를 제공해 제우스를 신들의 왕으로 만들었다.


자식들을 삼키는 크로노스. 좌: Painting by Joe Rowell / 우:  Painting by Peter Paul Rubens

그때까지 세상은 지배자인 남성도 가이아 여신의 뜻을 거스르면 자리를 보존할 수 없는 구조로 돌아갔다. 쉽게 말해 실제로 세계를 쥐락펴락한 일종의 비선 실세가 가이아였던 셈이다. 


티타노마키아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와 티탄 일족과의 10년 전쟁인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 티탄들과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티탄들을 타르타로스라 불리는 지하의 깊숙하고 깜깜한 곳에 가두고, 올림포스 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왕좌에 앉았다. 


그러나 티탄들을 타르타로스에 유폐한 제우스의 처사에 가이아의 기분이 언짢아졌다. 티탄들 역시 가이아가 배 아파 낳은 소중한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가이아는 예전에 우라노스와 크로노스에게 했듯 제우스의 손에 쥐여주었던 세계의 지배자의 지위를 도로 빼앗을 계략을 세웠다. 가이아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무서운 괴물 자식들을 줄줄이 낳아 제우스와 맞서 싸우게 했다.


The Gigantomachia, Musée du Louvre

가이아는 기간테스(Gigantes)라는 거인들을 제일 먼저 낳았다. 기간테스들의 아버지는 우라노스였다.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했을 때 솟구친 피는 대지로 스며들었고, 그 피로 잉태했던 가이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야금야금 여러 아이를 낳았다. 기간테스도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피로 수태한 자식들이다.


기간테스는 거대한 몸과 괴력을 지닌 거인으로 두 다리는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기간테스는 가이아의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불붙은 초목과 산처럼 거대한 바위를 하늘을 향해 내던지면서 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하지만 기간간테스들은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가이아는 단념하지 않고 최후의 수단으로 암흑을 다스리는 신 타르타로스와 결탁해 티폰(Typhon)이라는 섬뜩한 괴물을 낳았다. 티폰은 똑바로 서면 머리가 하늘에 닿고, 양팔을 벌리면 한쪽 손은 세계의 동쪽 끝에, 다른 한 손은 서쪽 끝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다. 상반신은 얼추 인간의 꼴을 갖추고 있었지만 어깨에서는 백 마리나 되는 뱀의 머리가 꿈틀거리고 있었고, 허리부터 아래는 똬리를 튼 구렁이의 형상으로 온몸에 깃털이 돋아나 있었다.


티폰의 등장으로 제우스를 제외한 신들은 이집트로 줄행랑을 쳤다. 이집트로 피신한 신들은 티폰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다양한 동물로 둔갑해 몸을 숨겼다. 이후 이집트에서는 동물 형상을 한 신들을 섬기게 되었다고 한다.


제우스는 홀로 이 괴물과 맞서 싸우다가 팔다리 힘줄이 잘려 버렸다. 티폰은 저항할 수 없게 된 제우스를 오늘날 터키 남동부에 위치한 트리키아 지방까지 끌고 가 바위굴에 가두고는 델피네(Delphyne)라는 상반신만 인간 여자의 모습을 한 용에게 지키게 했다.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제우스였지만 도둑질 재능을 타고난 헤르메스라는 아들을 둔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헤르메스는 아들인 판과 손을 잡고 제우스를 바위굴에서 구출했다. 헤르메스 부자는 제우스를 감시하던 용을 속여 곰 가죽으로 감싸 숨겨두었던 힘줄을 제우스에게 들려주었고 제우스는 원래의 힘을 회복했다.


판과 헤르메스

기운을 차린 제우스는 하늘로 올라가 방심한 티폰에게 번개를 내리쳤다. 티폰은 화들짝 놀라 꽁무니를 빼려 했지만, 제우스는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어 번개를 마구 퍼부으며 바짝 추격했다. 티폰을 궁지에 몬 제우스는 시칠리아 섬 동쪽 끝에 있던 에트나 산을 던졌고, 티폰은 산 아래에 납작 깔리고 말았다.


The giant Typhon buried under Mt. Aetna for stealing Zeus's thunderbolts.  French, 18th century

 티폰은 산에 깔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지만 죽지 않고 여전히 불을 내뿜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탈리아에 있는 에트나 산은 지금도 이따금 불과 용암을 내뿜으며 아래에 깔린 티폰의 건재를 과시한다고 한다.


에트나산

가이아의 비장의 병기였던 가공할 괴물 티폰을 제압한 제우스는 할아버지 우라노스나 아버지 크로노스와 다른 신세대 신이었다. 제우스는 스스로의 힘으로 가이아조차 섣불리 교체할 수 없는 신들의 왕임을 증명했다.


제우스의 승리로 가이아는 실세 자리에서 물러나 제우스에게 실권을 물려주고 뒷방마님 자리로 만족해야 했다. 가이아는 제우스에게서 왕좌를 빼앗을 수 없음을 깨닫고는 제우스의 전능한 힘을 인정하였고, 권력 투쟁에서 깨끗이 손을 털기로 했다. 이후 제우스는 진정한 올림포스 신들의 왕이 되어 영원히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태양계 5-6-7번 행성인 '목성-토성-천왕성'은 '쥬피터-새턴-우라노스'이며 그리스식으로 표기하면 '제우스-크로노스-우라노스' 이다

확고한 세계의 지배자 지위를 구축한 제우스는 더 이상 적수가 될 수 없는 티탄들을 타르타로스에서 풀어주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의 끝에 행복의 섬이라는 낙원이 있고, 그곳에서 제우스의 총애를 받았던 영웅들이 사후의 삶을 살며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화해한 후에 그를 이 섬에 사는 영웅들의 왕의 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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